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퍼펙트 센스] - 다른 감각이 사라질수록 완벽해지는 사랑이라는 감각.

쭈니-1 2012. 2. 4. 10:59

 

 

감독 : 데이빗 맥킨지

주연 : 이완 맥그리거, 에바 그린

 

 

추위를 느끼는 내 감각들로 인하여 나는 무기력해진다.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모든 것이 귀찮고, 밥을 먹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그냥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제겐 요즘이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강추위가 몰아닥친 2월부터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디센던트]의 시사회는 참가했고, 그 억지로 [디센던트]의 영화 이야기까지 쓰긴 했는데, 그 이후에는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원래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금요일 저녁에 볼 계획이었는데, 춥다는 이유로 그 계획도 취소하고, 집에 일찍 들어온 금요일 저녁에는 귀찮아서 저녁 식사하는 것도 포기하고, 그렇게 저는 축 늘어진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때아닌 귀차니즘이 저를 덮친 것은 2월의 한파 때문일 것입니다. 1월부터 감기 기운 때문에 고생했고, 나이 마흔을 앞두며 추위에 더욱 약해졌기에(20대까지는 내복을 입어 본 적이 없는 접니다.) 너무나도 가혹하게 매서운 2월의 한파는 저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죠.

그래도 황금같은 금요일 밤을 추위라는 녀석에 패배해서 그냥 넘기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에 그 동안 보고 싶었지만 미뤄뒀던 [퍼펙트 센스]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 내 상황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는 세상

 

[퍼펙트 센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전세계 인류의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후각이 사라집니다.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후각을 잃고도 그냥 삶을 살아갑니다. 그 다음엔 미각이 사라집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상황. 그래도 사람들은 시각을 미각 삼아 살아갑니다. 그런데 청각, 시각마저 사라지며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듭니다.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남은 촉각마저 사라진다면 과연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듣지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람들.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퍼펙트 센스]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감각이 사라진 세상의 혼란과 공포가 아닙니다. 갑자기 시각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본성을 그리고 있는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라던가,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를 다룬 [컨테이젼]을 비롯한 수 많은 영화들관느 달리 [퍼펙트 센스]는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가운데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 마이클(이완 맥그리거)과 수잔(에바 그린)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세상에 인류가 멸망하게 생긴 이 극박한 순간에 데이빗 맥킨지 감독은 겨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만을 포착한 것이죠.

 

처음엔 무서웠다.

 

데이빗 맥킨지 감독이 마이클과 수잔의 사랑이 그리건 말건, 저는 감각이 사라지는 세상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은 극도의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후각이 사라지기 전에는 극도의 슬픔을 느낍니다.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떠난 사람들, 잃어버린 물건들을 떠올리며 남녀노소할 것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미각이 사라지기 전에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혼자 남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청각이 사라지기 전에는 극도의 증오를 느낍니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 속의 분노를 맘껏 표출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마지막 시각이 사라지기 전에는 극도의 기쁨을 느낍니다. 서로 싸우고 증오하던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서로를 부등켜앉습니다. 마이클과 수잔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입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퍼펙트 센스]는 다른 영화들처럼 알수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혼란을 그리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기쁨, 환희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퍼펙트 센스]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죠.

 

마이클과 수잔의 사랑이 의미하는 것.

 

우리는 다섯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감각들을 통해 우리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아세요? 우리들의 감각은 가끔 스스로가 원하는 것만을 느끼게 함으로서 편견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만 그로인하여 우리는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전쟁을 벌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데이빗 매킨지 감독은 [퍼펙트 센스]를 통해 그러한 인간들의 감각을 하나씩 지워버립니다. 처음엔 적응하며 살아가던 사람들도 다른 감각들이 점차 사라지자 두려워합니다. 마이클과 수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리사인 마이클과 전염병 연구소에 다니는 수잔도 처음엔 사라지는 감각들에 적응하다가 결국 두려움과 혼란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로인하여 진정한 사랑에 빠집니다. 각자 과거의 상처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감각이 사라지며 자신들이 잊고 있던 사랑에 대한 갈구를 되찾은 것이죠. 그렇기에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비록 두 사람의 시각은 사라지지만 그 어떤 멜로 영화의 한 장면보다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오감이 모두 발휘되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사랑의 언어를 듣고, 그 사람과 식사를 함께 하고, 그 사람과 몸의 감촉을 느끼고...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감각들로 인하여 사랑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감각을 지우고, 모든 편견을 지울때 더욱 완벽해지는 사랑이라는감각... 그것이 데이빗 맥킨지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퍼펙트 센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