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짜임새보다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첩보물

쭈니-1 2012. 2. 10. 11:43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주연 : 게리 올드만, 콜린 퍼스, 톰 하디, 베네딕 컴버배치

 

 

007 제임스 본드의 추억

 

우리에게 첩보영화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이제는 섹시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 세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었지만 사실 제임스 본드의 고향은 미국이 아닌 영국입니다. 영국의 추리작가 이언 플레밍이 1953년 [카지노 로열]을 발표함으로서 제임스 본드는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제게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첩보, 액션, 스릴러의 재미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되어 있는 마냥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제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89년에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극장비를 마련해서 처음으로 [007 리빙 데이 라이트]를 극장에서 본 후 넋을 잃고 환호했던 기억도 납니다.

[007 리빙 데이 라이트]를 본 후 초보 영화광이었던 저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섭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리즈의 1편인 [007 살인번호]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던 제게 [007 살인번호]는 충격적으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지루했고, 무미건조했습니다. 결국 저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관람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15편인 [007 리빙 데이 라이트]부터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산 첩보 스릴러 영화이다.

 

제가 갑자기 [007 제임스 본드]에 대한 20년도 넘은 추억을 갑자기 떠올린 이유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007 살인번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안납니다. 단지 '재미없었다'라는 영화에 대한 느낌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고나니 [007 살인번호]도 딱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할리우드 첩보액션영화에 익숙해진 저와 같은 관객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을 떠나서 영화의 짜임새, 스릴 등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영국 정보국인 MI6 내부에 숨어있는 소련의 첩자를 찾아나서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배경 자체가 첩보 스릴러영화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냉전시대를 담고 있으며, '007 제임스 본드'가 활약하던 MI6의 내부 첩자를 잡아내는 내용이라 얼핏 봐서는 화려한 액션과 숨막히는 스릴이 가미된 오락 영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그러한 액션 스릴러에 대한 영화적 재미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채 70년대 냉전 시대에 대한 스산한 분위기로 영화를 완성해 놓았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인 셈입니다.

 

 

 

이 영화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 감안해야 할 것들

 

사실 스스로 '할리우드 키드'라고 생각하는 제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화려한 액션이 없고, 숨막히는 스릴이 없다는 것까지는 처음부터 각오했던 것입니다. 이미 이 영화는 일반 할리우드 첩보 스릴러와는 다르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감독이 [렛 미 인]의 토마스 알프레드슨임도 감안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짜임새부분입니다.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이 조직내 침투해 있는 소련의 스파이를 찾는 과정이 치밀하게 그려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제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무표정한 조지를 쫓아가며 그의 기억과 현재와 혼합되어 있으며,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고 있는 냉정시대의 첩보 전쟁 사이에서 미국과 소련에게 이용만 당하는 영국의 당시 입장, 그리고 조지와 내부 첩자일지도 모를 빌(콜린 퍼스), 퍼시(토비 존스) 등 동료들과의 관계를 조용히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조지가 어떻게 스파이의 정체를 알아내는지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기대한다면 영화의 후분에 조지가 스파이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에서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긴 원작을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로 압축하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의 짜임새에 애초부터 관심이 전혀 없었던 영화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

 

첩보 스릴러영화에서 화려한 액션과 긴장감이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최근 본 [언피니시드]도 그러한 영화적 재미가 부족했음에도 저를 영화 속에 풍덩 빠뜨리기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스토리의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조직내 침투한 적의 스파이를 찾는 영화에서 스파이를 찾는 과정에 별 관심을 두지 않다니...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재미없다'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에는 게리 올드만를 중심으로한 명품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한 몫을 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재미는 영화의 스산한 분위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미 [렛 미 인]을 통해 북유럽의 스산한 분위기와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을 접목시켜 호평을 앋은 바 있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냉전시대의 분위기와 한때 최강국이었지만 이젠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영국의 상황을 무표정한 MI6의 늙은 퇴물 요원 조지 스마일리에 대입시켜 영화를 보는 저를 압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짐(마크 스트롱)의 마지막 눈물 한줄기는  명품 로맨틱코미디의 명가로 잘 알려진 워킹타이틀이 제작한 영화답게 스산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동성애적 애잔한 분위기마저 자아냅니다. 짜임새보다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첩보물이라니... 이건 분명 두번 다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임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