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사이먼 커티스
주연 : 미셸 윌리엄스, 에디 레드메인, 케네스 브래너, 엠마 왓슨
나에게 마릴린 먼로의 추억은 없다.
저는 스스로 영화광이라 자처합니다. 하지만 제게 영화란, 제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 이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전의 영화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몇몇 걸작이라 소문난 영화들만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감상을 했을 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흑백 영화 시절의 전설적인 영화들, 혹은 배우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마릴린 먼로 역시 마찬가지인데, 제가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50년대를 주름잡았던 섹스 심벌이며, 1962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던 비운의 여배우라는 점과, [7년만의 외출]이라는 영화에서 지하철 환풍구에 치마를 날리는 모습이 전부입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라는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알려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이 영화를 통해 마릴린 먼로가 완벽하게 환생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미셸 윌리암스와 제가 좋아하는 감독겸 배우인 케네스 브래너, 그리고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가을의 전설], [카멜롯의 전설]등의 영화로 여신 칭호를 받았던 줄리아 오몬드를 확인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릴린 먼로에게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어느새 제 눈에는 케네스 브래너도, 줄리아 오몬드도,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로 출연했던 엠마 왓슨의 성인 연기도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마릴린 먼로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섹스 심벌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인한 애정 결핍증으로 불안한 내면을 가진 마릴린 먼로. 영화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콜린(에디 레드메인)이 자연스럽게 마릴린 먼로에게 빠져 들듯이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저 역시도 그렇게 마릴린 먼로의 매력에 빠져 들도록 유도합니다.
특히 마릴린 먼로와 콜린의 윈저성과 콜린이 다녔던 기숙 학교인 이튼 스쿨에서의 데이트 장면은 마치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햅번의 데이트를 연상시킬 만큼 달콤했습니다.(고전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로마의 휴일]만큼은 어린 시절 TV를 통해 여러번 봤습니다.)
콜린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와의 달콤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할 시한부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과연 콜린과 같은 상황에서 마릴린 먼로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요? 마릴린 먼로에게 별 관심이 없던 저도 이렇게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을...
로렌스 올리비에 VS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마릴린 먼로의 매력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와 사이먼 커티스의 연출력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이 영화의 매력을 하나 짚으라고 한다면 저는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래너)와 마릴린 먼로의 신경전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20세기 영국 최고의 연극 배우이며 세익스피어 해석의 대가로 잘 알려진 배우이자 감독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헨리 5세], [맥베스], [오셀로], [리차드 3세], [리어 왕] 등 주로 세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 혹은 영화입니다. 그런 전통 연기자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의 만남은 그렇기에 처음부터 삐거덕거립니다.
마릴린 먼로의 변덕에 짜증을 부리며 그녀를 못마땅하는 로렌스 올리비에. 하지만 그는 결국 콜린에게 고백합니다. 마릴린과 공연하며 자신을 탈바꿈하고 싶었다고... 결국 그도 마릴린의 매력과 재능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그의 아내 비비안 리(줄리아 오몬드)도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릴린 먼로의 관계를 경계하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후예로 잘 알려진 케네스 브래너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로렌스 올리비에를 연기하며, 영국 전통 연기자로서의 자부심과 마릴린 먼로의 변덕에 적극적으로 쓴소리를 내뱉으면서도 그녀를 동경하는 복합적인 모습을 지닌 로렌스 올리비에를 완벽하게 선보였습니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사랑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참 독특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영화는 관객을 콜린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에게 빠져드는 23살 콜린의 위태로운 사랑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마릴린 먼로는 결코 콜린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에겐 이미 매력적인 여자친구 루시(엠마 왓슨)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마릴린 먼로를 외면하고 루시에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입니다. 세계적 스타이지만 애정 결핍과 불안한 내면으로 불행한 그녀를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어지고, 지켜주고 싶어집니다. 이건 머리로 계산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슴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면서 결국 콜린이 상처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나도 모르게 콜린과 마릴린 먼로의 위태로운 사랑의 달콤함에 푹 빠져버린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흔을 앞둔 제게 20대의 풋사랑을 경험하게 하다니... 이런 특별한 경험을 내게 안겨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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