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파브로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 해리슨 포드, 올리비아 와일드, 샘 록웰
2011년 내가 놓친 단 하나의 SF
저는 영화 장르 중에서 SF 영화를 특히 사랑합니다. 미래 사회에 대한, 혹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영화 속에 실현시켜 놓은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고는 합니다. 영화를 통해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에 SF 영화는 딱 알맞은 장르인 셈입니다.
당연히 저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SF 영화들은 모두 챙겨 봅니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B급 SF 영화는 가끔 극장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할리우드의 대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급 SF 영화는 웬만해선 극장에서 놓치는 법이 없죠.
그런 제가 2011년에 놓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SF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카우보이 & 에이리언]이라는 영화입니다. 지난 2011년 8월 11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아이언맨]을 연출한 존 파브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다니엘 크레이그와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그야말로 제게는 놓칠 수 없는 기대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카우보이 & 에이리언]을 보려는 계획만 열심히 세웠을 뿐, 막상 영화 보기에는 실패했습니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저는 여름 휴가 기간이라 같은 날 개봉한 [최종병기 활], [블라인드], [개구쟁이 스머프]를 모두 극장에서 챙겨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국내 흥행 실패로 극장에서 예상보다 일찍 내려오는 바람에 관람 시기를 놓쳐 버렸습니다.
2011년의 망작... 그 이유는?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2011년 7월 29일 미국에서 개봉하여 개봉 첫주 1위를 차지하며 최종적으로 1억 달러가 조금 넘는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6천3백만 달러.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 3억2천6백만 달러는 벌어 들여야 하는 영화입니다. 제작사로서는 미국 뿐만 아닌 전 세계 흥행을 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의 흥행은 고박 7천4백만 달러였고, 결국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월드와이드 흥행 성적 1억7천4백만 달러 흥행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SF 영화는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사랑받는 장르이기 때문에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의 부진한 흥행 결과는 의외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우리나라 개봉 당시에는 [최종병기 활]과 [블라인드]가 쌍끌이 흥행을 벌이는 바람에 [카우보이 & 에이리언]이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속절없이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관객이 이 영화를 외면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서부 영화와 SF 영화의 묘한 결합
뒤늦은 관람이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카우보이 & 에이리언]을 본 저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왜 이 영화를 외면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서부 시대에 등장한 에이리언이라는 이 영화의 독특한 설정이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먹히지 않은 것입니다.
서부극... 한때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장르입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흙먼지나는 영웅담은 가장 미국적인 영화 장르로 평가받은 적도 있지만 요즘은 미국에서조차 아주 가끔 간간히 제작되곤 하는 폐기처분한 장르입니다.
존 파브로 감독은 이 케케묵은 사부극이라는 장르를 SF라는 새로운 장르를 넣어 부활시키려 합니다. 이로서 과거 장르인 서부 영화와 미래 장르인 SF 영화의 묘한 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서부극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미국 관객에게는 이러한 퓨젼 장르가 먹혔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만 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중 전체 30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부극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국 외 관객들입니다. 그들에게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퓨젼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데 어렸을 적 TV에서 존 웨인 주연의 서부극을 간간히 보곤 했지만 이 영화의 서부극은 SF가 충돌을 일으킬 뿐, 전혀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에이리언의 최첨단 무기와 서부 사나이들의 장총의 대결
분명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아이디어를 기발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 금을 노리고 지구를 침략한 에이리언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인간을 납치하는 에이리언에 맞서 거친 서부의 사나이들은 장총을 들고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외계인에 맞서 싸웁니다.
솔직히 아이디어는 기발했지만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입니다. 현재의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도 무기력하게 에이리언에게 당하는 영화들에 이미 익숙한 관객들에게 에이리언에게 상처나 줄 수 있을지 궁금한 장총 하나로 대항하다니...
존 파브로 감독이 카우보이와 에이리언의 대등한 대결을 위해서 에이리언의 무기를 우연히 손에 넣은 제이크(다니엘 크레이그)를 등장시키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역부족을 채우기 위해 여러 억지 섞인 설정들이 마구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정체 불명의 여인 엘라(올리비아 와일드)의 희생, 선뜻 자신의 적인 달러하이드(해리슨 포드)와 손을 잡은 아파치족 추장의 결정, 노상 강도단을 자신의 편으로 편입시킨 제이크의 설득. 이 영화는 카우보이들이 에이리언과 대등한 대결을 펼치게 하기 위해서 자세한 설명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카우보이의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그러면서 낯 뜨거운 감동도 잊지 않으려고 하니...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래도 존 파브로 감독의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서부 영화와 SF 영화의 결합... 엇비슷한 SF 영화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아이디어는 분명 좋았지만 그러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시나리오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억지 섞인 전개 속에 자멸하고 만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도 깨달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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