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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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반대를 모두 무릅쓰고 김태규와 최지혜는 결혼했다.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남자는 라디오 방송국 PD, 여자는 대사라곤 '찍' 한마디밖에 없는 단역 성우. 일 때문에, 사랑 때문에, 산같이 쌓인 빨래와 설겆이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정열 때문에 바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김태규와 최지혜의 결혼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그것은 욕실 진열대에서 생리대가 굴러 다니게 되는 모습을 남자가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남자의 노랗게 된 팬티가 얼마나 빨기 어려운 것인지 여자가 실감하는 일이기도 하며, 여자의 헤어드라이기 소리에 남자는 단잠에서 허무하게 깨어나 바쁜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연애시절 밤새 얘기해도 재미가 넘쳤던 사랑의 대화는 이제 채 1분을 못넘기고 궤도없이 떠도는 별처럼 맥이 끊겨버리게 되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혼은 그들이 미혼시절 가졌던 성에 관한 환상을 하나 둘 깨뜨리게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환상, 상대방에 대한 오해는 이제 잠자리에서부터 싸움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은 사랑을, 섹스를, 그리고 결혼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무지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정확히 알고 바로 사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 둘은 별거를, 그리고 이혼까지 가는 파경을 맞게 되고 혼자 남게되어 자유롭다고 처음엔 생각하게 되지만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에 빠져 태규는 새로 시작하자고 지혜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지혜의 거절은 태규를 더욱더 절망에 빠뜨리고 결국 태규는 지혜가 MC를 보는 라디오 방송에 짧은 엽서를 보낸 후 홀연히 사라진다.
그 엽서에 감동을 받은 지혜. 그녀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태규를 사랑했는지 깨닫고 그와 다시 재회한다. 그들은 결국 결혼이란 좋은 배우자를 찾는게 아니라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가는 길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난해 4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빅히트를 쳤던 이 영화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결혼을 주제로한 영화가 너무 많았다. 이 영화의 기본 내용은 두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하고, 서로 증오하여 이혼하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다른 영화와 크게 차이날 것은 없지만 무언가 모르게 다른 느낌을, 다른 인상을 준다.
영화 처음 부분에 벌어진 최민수와 심혜진의 안 웃고는 못베길 해프닝은 날 즐겁게 했고, 서글픈 음악과 함께 두사람이 서로 헤어져 외로워하는 장면은 날 슬프게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난 후 내 동생이 혼잣말로 지껄인 것처럼 결혼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2012년 오늘의 이야기
지금은 40만명이라면 개봉 첫 주말에 달성하는 영화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92년 당시만 해도 40만명 관객 동원이라면 굉장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만큼 [결혼 이야기]는 92년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한 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개봉 후 많은 충무로 영화인들이 젊은 영화기획사 신씨네를 주목했고, 영화에서 기획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신씨네는 곧바로 최진실과 최민수를 캐스팅한 [미스터 맘마]를 기획, 제작하며 2연타석 홈런을 치기도 했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기획그룹 신씨네 외에도 주목해야할 영화인들이 많은데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원장인 김의석은 [결혼 이야기]로 감독에 데뷔했으며, [결혼 이야기]의 각본을 맡았던 박헌수는 94년 한국 판타지의 첫 장을 열었던(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구미호]로 감독에 데뷔했고, 최근에는 김혜선의 노출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완벽한 파트너]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이야기]의 조감독이었던 정병각은 96년 신인 여배우 이혜은을 캐스팅하여 뚱뚱한 여자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코르셋]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혼 이야기]는 심혜진과 최민수에게도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결혼 이야기]의 흥행 성공으로 변우민, 심혜진 주연의 [결혼 이야기 2]가 94년에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흥행에 대실패를 거두며 전편의 명성에 먹칠을 하기만 했던 기억도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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