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앙투와네트 베우머
주연 : 바리 아츠마, 페드야 휴엣, 헤이스 나버르
네덜란드 스릴러는 어떨까?
얼마전 [세넨툰치]라는 스위스의 꽤 매력적인 스릴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에 웬만하면 만족을 못하는 편인데 이 낯선 스릴러는 제게 꽤 만족감을 전해줬습니다. 그러한 [세넨툰치] 덕분에 유럽 스릴러에 대한 제 오랜 편견이 깨졌습니다.
[로프트]는 네덜란드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역시 낯선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넨툰치] 덕분에 유럽 스릴러에 대한 편견이 깨진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낯선 스릴러를 선택했고, [로프트]는 그런 제 기대에 맞게 스릴러 영화로서의 안정적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오픈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춘다.
영화는 한 남자가 고층의 건물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먼저 보여준 셈입니다. 하지만 영특한 이 영화는 그 떨어져 죽은 남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침대에 수갑이 채워진채 처참하게 죽어있는 한 여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용의자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과 경찰에게 조사를 받는 모습이 교차되어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꽤 도전적입니다. 한 여성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 관객에게 '난 감출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오픈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픈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리고 영화가 진행되며 살짝 살짝 공개되는 형식입니다. 이를테면 살해당한 여성의 얼굴은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 관객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니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저는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의 시체, 다섯명의 용의자.
이제 이 영화는 범인을 맞춰보라고 관객에게 게임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용의자라고 할 수 있는 다섯 친구들의 회상 장면을 중간 중간에 끼어 놓으며 관객에게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 단서라는 것이 범인을 맞추겠다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저와 같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썽쟁이 톰(히코 켄자리)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런 함정에 빠진다면 스릴러 영화의 초보겠죠. 그는 미끼입니다. 최소한 저는 후반부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도 다섯 친구들 외에도 친구들의 부인들, 그리고 부패 정치인과 그러한 부패 정치인과 손을 잡은 건설사 대표인 톰의 장인들까지 혐의를 두게 만듭니다. 후반부가 되면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범인을 잡겠다며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제 머리를 아프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결국 살해당한 여성의 정체가 밝혀지며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애초부터 유력한 용의자였던 매티아스(바리 아츠마)에게 다시 혐의로 모아집니다. 이쯤되면 범인을 잡겠다던 저도 '그래 그냥 네가 범인해라.'라고 인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영리한 감독의 범인 돌려막기. (스포 포함)
저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영리한 감독은 저처럼 스릴러 영화의 범인을 맞춰보겠다고 달려드는 관객을 위해서 함정을 이중 삼중으로 깔아 놓았습니다. 애초부터 편안하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을텐데, 저는 여기 저기 용의자들이 튀어 나오는 상황에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이죠.
사실 첫번째 반전이 끝났을때 저는 어렴풋이 제가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라(살리 함슨)가 수면제 과용으로 자살한 상태라면 아무리 톰이 칼로 손목을 그었다고 해도 그렇게 피가 침대를 홍건히 적실 정도로 나왔을리가 없으니까요.
살해된 여성의 정체가 좀 더 일찍 밝혀졌다면, 아니 영화의 첫 장면에서 고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이가 롭(헤이스 나버르)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면 저는 롭과 매티아스 그리고 사라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통해 감독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모든 것을 오픈한 척하면서 중요한 것은 오픈하지 않고, 용의자들을 시시각각으로 제 앞에 내세움으로서 저를 혼란에 빠뜨린 앙투와네트 베우머 감독... 그래, 당신이 승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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