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가슴 배구단] - 결과가 멋져도 동기가 음흉하잖아!

쭈니-1 2012. 1. 26. 10:08

 

 

감독 : 하스미 에이이치로

주연 : 아야세 하루카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내용아니니?

 

[가슴 배구단]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미국의 [아메리칸 파이], 독일의 [팬티 속의 개미], 우리나라의 [몽정기]와 같은 사춘기 소년들의 성장담을 담은 섹스 코미디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나니 이와는 전혀 다른 영화들이 새롭게 제 기억 속을 어지럽게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바로 [으랏차차 스모부], [워터 보이즈], [스윙걸즈]입니다.

제가 언급한 위의 영화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으랏차차 스모부]는 스모를, [워터 보이즈]는 싱크로 나이즈를, [스윙걸즈]는 재즈라는 각각의 소재는 다르지만 이들 영화 모두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엉뚱한 무엇인가를 통해 합심해서 실패자라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이기고 성공한다는 감동 스토리로 똘똘 뭉쳐 있다는 점입니다.

[가슴 배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춘기 소년들이 1승을 거두기 위해서 처음으로 의욕을 불태우고 피땀나는 연습을 하면서 진정 멋진 남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패자들의 성공 스토리라는 익숙한 감동을 전제로 하고 있는 영화인 셈이죠.

 

결과가 멋져도 동기가 음흉하잖아.

 

저는 [워터 보이즈]와 [스윙걸즈]를 꽤 재미있게 봤었습니다.([으랏차차 스모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일단 유쾌한 영화의 분위기가 좋았고, 그들의 좌충우돌 노력과 그에 따른 감동스러운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배구단]을 보면서는 [워터 보이즈]와 [스윙걸즈]를 보면서 느꼈던 유쾌함 대신 찌질한 배구단 녀석들에 대한 반감이 먼저 생기더군요. 물론 그 한가운데에는 1승을 거두면 선생님의 가슴을 볼 수 있다는 음흉한 동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춘기를 겪었고, 사춘기 시절 남들과 마찬가지로 성에 대한 호기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영화들은 그런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코미디의 소재로 쓰기 위해 과장시킵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팬티 속의 개미]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과장된 코미디 영화들을 보면 내 사춘기 시절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더군요.

[가슴 배구단]도 그러합니다. 중학교 3학년. 한참 성에 대한 관심에 휩싸여있을 나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서 선생님한테 가슴을 보여달라니요. 영화적 설정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배구단 녀석들이 '가슴'을 외칠때마다 저는 아이들이 테라지마(아야세 하루카) 선생에게 성희롱을 하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무리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사춘기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에 대한 성희롱을 미화시킬 수는 없는 법이죠.

 

배구단 아이들보다는 테라지마의 이야기에 한 표.

 

만약 이대로 영화가 선생님의 가슴을 보겠다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 잡혀 배구 연습에 몰두하는 배구단 녀석들을 중심으로 진행시켰다면 저는 [팬티 속의 개미]를 본 후 기분이 찝찝했듯이 [가슴 배구단]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가슴 배구단]은 중반 부분부터 테라지마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테라지마가 왜 1승을 거두면 가슴을 보여주겠다는 황당한 약속을 파기시키지 못하는지, 그녀의 과거를 통한 이야기들은 성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음흉한 배구단 녀석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학생들과의 약속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했던 테라지마가 결국 거짓말로 그 위기를 모면하고 아이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과거의 장면을 보며 신뢰를 통한 선생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녀로서는 또다시 아이들의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학교에서 해고를 당한 테라지마가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다음 번에는 그녀도 정말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배구단 아이들이 최강 배구단을 맞이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보다 테라지마의 마지막 미소가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