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여균동
주연 : 여균동, 유오성, 조민수
* 해설
충무로에서 괴짜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코 여균동 감독이 1순위에 오를 것이다. 굳이 할리우드와 비교하자면 쿠엔틴 타란티노쯤 된다고나 할까?
암튼 이 엉뚱한 괴짜 감독 여균동은 스크린을 욕설로 가득 채운 문성근, 이경영, 심혜진 주연의 [세상밖으로]라는 영화로 감독에 데뷔했다. 당시 [세상밖으로]는 40만이라는 흥행 실적을 올리며 여균동 감독에게 95년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차기 작품은 감독으로서가 아닌 배우로서의 데뷔였다. 이미 [세상밖으로]에서 잠시 뉴스 앵커로 출연했던 그는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발기불능의 은행원으로 출연, 정선경, 문성근과 함께 열연했다. 당시 파격적인 성적 묘사로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청룡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을 그에게 안겨주어서 그는 한 해에 신인감독상과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두번째 연출작 [맨?]은 여균동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쳐보여준 영화이다. 원래 제목이 [포르노 맨]이었으나 공윤에 걸려 [맨?]으로 제목을 변경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이 영화는 [포르노 맨]이라는 제목답게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포르노'를 소재로 파격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여균동 감독의 파격에 동참한 인물은 극단 '차이무' 소속 연극배우 유오성과 7년만의 스크린 외출을 노개런티로 선언해 화제를 모았던 조민수. [세상밖으로]의 문성근, 이경영, 심혜진,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문성근, 정선경, 여균동에 이은 새로운 여균동 영화의 3인 체계라고나 할까?
* 줄거리
첫번째 이야기. 성충도(유오성)는 엄마 뱃속에서 몰래 훔쳐본 포르노 속의 금발 여인에게 짜릿한 자극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후 충도에게 이 세상은 오히려 낯설고 무섭다. 못생긴 간호사가 그렇고, 같은 동네 무당이 그렇다.
충도에겐 아랫방에 세든 금발의 미국 여자 메리와 그의 애인과의 정사 장면을 훔쳐 보기도 하고, 메리의 방에서 메리의 가슴을 만지던 행복한 어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낭심을 발라버리겠다고 겁주는 엄마(양희경)의 기세에 눌려 메리는 급기야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충도는 그녀가 준 금동전을 소중한 보물로 여긴다.
열심히 메리를 찾기위해 도색잡지를 사모으던 충도는 성성이(여균동)를 알게 되고 포르노 테이프를 광적으로 보게된 그는 메리를 알고 있다는 자칭 포르노계의 대부 배씨(이정섭)를 만나 블루호텔 얘기도 들으면서 장차 메리와 결혼하고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키워간다.
두번째 이야기. 도색잡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학교를 다니던 성성이는 그 일이 발각되 퇴학을 당한 후 힘을 기르기 위해 차력사의 조수로 들어간다. 차력 시범을 보이다 실수로 머리를 다치고 거리의 행려병자가 된 성성이는 지적 성장이 멈춘채 자신만의 행복한 꿈을 꾼다.
따스한 포르노의 세계, 분홍 거리의 왕이 되는 꿈을 꾸는 성성이는 환상 속에선 항상 존경받는 왕이다. 고통과 슬픔만이 남아 있던 분홍거리의 유일한 남성으로 수십명의 여성들과 관계하며 그들을 모두 임신시키기도 하는 성성이. 그러나 그에게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싶은 여자가 나타난다. 바로 미아(조민수).
성성이는 미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힘겨워하고 결국 역모자들의 음모로 왕위를 빼앗긴다. 다시 왕이 되는 길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뜨거운 입맞춤이라는 말들이 예언처럼 떠돌고 오늘도 성성이는 차가운 도시의 한 언저리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세번째 이야기. 황량한 아리조나 사막. 옷가지들과 함께 차에서 내팽겨쳐지는 미아. 또 버림받았지만 곧 괜찮아 질꺼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며 다시 어딘가로 떠나는 그녀에게 친구라고는 못생긴 도마뱀 한마리뿐.
멀리서 반짝이는 간판을 보고 찾아온 이곳은 블루호텔. 지배인(이정섭)은 꿈을 꾸듯 예전의 무용담을 말하지만 모래 바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결국 지배인의 주선으로 포르노를 찍게된 미아는 촬영 댓가로 받은 꼬깃꼬깃한 달러 몇 자을 들고 벤치에 앉아 있다.
그런 미아 옆에 메리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충도가 앉아 또 한발 늦었음을 탄식하며 신세 타령을 늘어 놓고 자신이 성성이에게 준 동전 목걸이가 미아 목에 걸려 있음을 의아해 한다.
* 감상평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형식의 아트 코미디. 포르노라는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세명의 주인공이 치닫는 불행한 결말 속에 여균동 감독이 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1부 충도의 이야기는 향수 어린 성장기의 성적 호기심을 그리고 있다. 성충도 역을 맡은 유오성의 역동적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의 금발 미녀에 대한 환상이 매우 사실적이며 또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2부의 성성이 이야기는 여균동 감독 자신의 상상을 스크린에 올린 듯 하다.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추잡하다. 난쟁이와 못생긴 여자 그리고 창녀들 등 여균동 감독이 관객에게 내밀은 이 이야기는 3가지 에피소드 중 가장 충격적이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와는 별 상관이 없어 다른 2가지 에피소드와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주어서 영화 전체의 스토리가 끊기는 느낌을 준다.
3부의 미아 이야기는 포르노에 의해 상처받는 미아라는 여성을 통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삶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민수의 연기 변신이 돋보이는 3번째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여균동 감독은 성공적으로 [맨?]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해주지 못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의 야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관객들은 [맨?]도 야한 영화이기를 기대하며 보게 되고 갑작스러운 새로운 형식의 여균동식 영화에 당황하게 된다. 그의 실험 정신은 좋았으나 좀 더 관객과 타협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나를 돌아보고 싶다.'라는 여균동 감독의 말은 공감이 가지만 그러한 이미지와 블랙 코미디의 결합은 조금 어색하다.
1996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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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오늘의 이야기
그리 많은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봤던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독특했던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맨?]을 선택할 것입니다.(그 외의 후보작은 [미지왕]과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법 다운로드에 의한 포르노가 널리 퍼졌지만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포르노는 우리 사회에 금기시되는 소재였습니다. [세상 밖으로]로 데뷔한 아직 신인티를 못벗어 던진 젊은 감독이 바로 그러한 사회의 금기를 블랙 코미디로 그린 것입니다. 당시엔 굉장한 화제가 되었었죠. 요즘 같이 멀티플렉스와 대형 배급사가 지배하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어쩌면 불가능했을 도전입니다.
그러나 [맨?]은 흥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시도는 신선했지만 관객과의 타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여균동 감독은 [죽이는 이야기], [미인] 등을 통해 좀 더 상업적인 야한 영화에 접근하려 했지만 역시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유소 습격사건], [간첩 리철진], [친구] 이전의 유오성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맨?]의 또 다른 재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최진실의 보디가드 역을 했던 유오성은 [맨?]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고 스타로 발돋음할 수 있었습니다. 뭐 지금은 온갖 추문으로 다시 나락에 떨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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