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라이온 킹 3D] - 17년 동안 변한 것은 영화가 아닌 나더라.

쭈니-1 2012. 1. 2. 12:41

 

 

감독 : 로저 알러스, 롭 민코프

더빙 : 조나단 테일러 토마스, 매튜 브로데릭, 제임스 얼 존스, 제레미 아이언스

개봉 : 2011년 12월 29일

관람 : 2011년 12월 31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2011년 마지막 날은 웅이와 추억 여행

 

구피와 결혼 한 이후 저는 매년 마지막 날에 영화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꿈을 드디어 이루었습니다. 2003년에는 [더 캣]을, 2004년에는 [알렉산더]를, 2005년에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보며 한 해를 마무리했었습니다.

하지만 웅이가 크면서 그러한 전통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웅이가 어렸을 때에는 웅이는 처가집에 맡기고 구피와 단 둘이 영화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웅이가 크고 나니 영화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영화로 마무리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영화에 대한 아빠를 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웅이. 2011년의 마지막 날은 함께 영화보며 보내자고 합니다. 내년이면 10대 청소년(?)이 되는 웅이. 저를 닮아서 영화를 좋아하는 웅이에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영화로 보내는 기쁨을 알려 줄 수 있게 된 것이죠. 웅이는 2012년에는 극장에서 20편의 영화를 보겠다는 포부까지 밝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역시 내 아들답습니다. ^^

 

때마침 [라이온 킹 3D]가 개봉했습니다. 2011년 마지막 날 웅이와 함께 볼 영화가 없을까봐 안절부절했었는데 그런 저를 위해서 [라이온 킹]이 17년 만에 3D로 부활한 것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1994년으로 돌아가 보죠. 이미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을 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저는 드디어 [라이온 킹]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17년이 지났지만 [라이온 킹]의 오프닝씬에서의 감동을 저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정글의 그 광활한 풍경과 정글의 왕 무파사(제임스 얼 존스)의 갓 태어난 아들 심바(조나단 테일러 토마스)를  비비원숭이인 라피키가 번쩍 들었을 때 울려 퍼졌던 'Circle of Life(삶의 순환)'의 웅장한 선율. 저는 그 장면에서 그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더욱 스텍터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릅니다. 애니메이션은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생각이 제 뇌리 속에 깊숙히 박혔던 것이... 지금 다시 보면 [라이온 킹]의 스펙터클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17년 전에는 영화를 보는 내 자신이 아프리카의 대 자연 속에 빠져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라이온 킹]의 스펙터클은 대단했습니다.

 

 

17년 만의 귀환. 기대감과 불안함

 

하지만 [라이온 킹 3D]를 예매하고, 저처럼 2011년의 마지막 날을 영화와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게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분명 제게 [라이온 킹]의 감동이 성인이 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그것은 무려 17년 전의 일입니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은 [라이온 킹]을 기점으로 서서히 쇠락의 길을 접어 들었고, 결국 픽사의 등장과 함께 3D 애니메이션에 왕좌 자리를 물려 주고 셀 애니메이션은 그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웅이 역시 3D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화려한 기술력과 정교한 스토리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을 휘어잡은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세대입니다. 과연 그런 웅이가 비록 3D로 컨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라이온 킹 3D]의 재미를 온전히 느끼고 17년 전의 저와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며 웅이가 혹시 지루해 하지는 않을지 틈틈이 웅이를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웅이는 목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마치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겠다는 기세로 영화에 몰두하더군요. 그런 웅이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저는 안심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웅이가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는지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저 역시도 17년 전에 그랬듯이 영화 속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일단 3D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반짝 3D의 입체 효과가 느껴졌지만 그 이후에는 3D 효과를 그다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3D 컨버전 과정에서 되살아난 풍부한 색감과 자연스러움은 분명 높은 평가를 내릴만합니다.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면 아무리 명작이라고 할지라도 '촌스럽다'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라이온 킹 3D]는 마치 최근에 다시 리메이크한 것처럼 촌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이죠.

거기에 엘튼 존과 한스 짐머의 그 아름다운 사운드 트랙을 다시 듣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성인이 된 심바(매튜 브로데릭)와 날라가 다시 재회해서 부르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사랑으로 가득한 이밤을 느껴요)'의 감미로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항상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캐릭터 티몬과 품바가 부르는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등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은 명곡의 감동은 [라이온 킹 3D]를 기다려온 제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았습니다.

 

 

스카의 재평가.

 

항간에는 [라이온 킹]이 디즈니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애니메이션이라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분명 [라이온 킹]은 전제군주주의를 기본으로 권력 세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이온 킹]이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듯이 [라이온 킹]에게 보수적인 가치관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저 역시 그냥 마냥 열광만 하며 [라이온 킹]을 관람하기 보다는 그래도 영화가 가져다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으며 관람을 했고, 그러고나니 스카(제레미 아이언스)라는 악당 캐릭터의 새로운 면모가 보였습니다.

스카는 정글의 제왕인 무파사의 동생으로 어린 조카인 심바에게 밀려 왕의 자리에서 밀려난 2인자입니다. [라이온 킹]에서 그는 악역을 담당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억울함도 이해가 됩니다. 평생 2인자로 살아야 하는 그 억울함 말이죠.

 

어찌보면 그는 [햄릿]의 클로디어스와 같은 캐릭터입니다. 왕의 자리를 탐내 왕인 형을 독살하고, 형수와 결혼한 그는 햄릿 왕자의 복수로 인하여 비극을 맞이합니다. [라이온 킹]은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동물판 해피엔딩 버전인 셈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힘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을 거역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무리하게 권력을 움켜 잡은 이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라이온 킹]의 하이에나 무리는 그러한 외세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렇게 끌여들인 외세가 어떻게 그 나라의 국력을 기울이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풍요롭던 초원이 수많은 하이에나의 횡포로 황무지가 되어 버린 광경을 통해서 말입니다.(당나라를 끌여 들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처럼, 일본의 힘으로 서양의 제국주의를 막으려 했던 조선처럼, 그리고 아직도 우린 여전히 외세의 힘에 기대려 하고 있습니다.)

17년 전에는 그저 흑과 백, 나쁜 편과 선한 편으로 별 생각없이 평가했던 캐릭터들이 이제는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함께 현실 정치의 단상이 보여 영화를 보는 저를 더욱 흥미롭게 했습니다.  

 

 

17년 동안 변한 것은 영화가 아닌 나더라.

 

17년 전, 저는 [라이온 킹]의 웅장함과 스펙터클,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에 매료되었었습니다. 그리고 17년 후의 저는 여전히 [라이온 킹 3D]의 감미로운 음악에 매료되었지만 웅장함과 스펙터클로 인한 재미보다는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17년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에 열광했습니다.

하긴 1994년의 저는 온통 어떻게 하면 애인을 만들까라는 생각에 푹 빠져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군입대 통지서에 좌절했던 20대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내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정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이까요.

그렇게 같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나이, 성별, 취향,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라이온 킹 3D]를 통해 저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같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과연 웅이는 어떨까요? 이제 9살인 웅이는 [라이온 킹 3D]를 보며, 심바가 귀엽고, 품바와 티몬이 웃기며, 그들이 악당인 스카를 이기고 다시 정글의 왕의 자리에 오르는 장면에 영화적 재미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웅이도 10대가 될 것이고, 20대를 거쳐 30대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땐 저처럼 한 가정을 책임질 가장이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떠안게 될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때 웅이가 [라이온 킹]을 어린 아들과 관람하게 된다면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새로운 재미를 찾을까요? 

무파사가 어린 심바에게 죽은 조상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널 지켜준다고 가르쳐줍니다. 티몬과 품바는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며 보여주는 지나간 일은 걱정하지 말라며 낙관적인 인생관을 노래합니다. 웅이가 커서도 [라이온 킹]를 다시 보며 그러한 영화의 메시지에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세상이 가만두지 않겠죠?

[라이온 킹]을 보고 해 맑게 웃으며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는 웅이를 보며 또 다시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 그땐 웅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변했듯이 웅이도 변하겠죠. 그것이 사회라는 정글의 법칙이니까요. 

 

 

17년 전의 감동을 웅이와 함께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게다가 17년 동안 영화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기조차 했으니

어쩌면 [라이온 킹 3D]는 2011년 내게 가장 중요한 영화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