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슬픔을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힘.

쭈니-1 2011. 12. 22. 11:25

 

 

감독 : 카메론 크로우

주연 : 맷 데이먼, 스칼렛 요한슨, 엘르 패닝, 토마스 헤이든 처치

개봉 : 2012년 1월 19일

관람 : 2011년 12월 21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블록버스터 속에서 쉬어가기.

 

12월 21일 올 겨울 극장가를 수 놓을 세 편의 영화가 일제히 개봉하는 날입니다. 그 중 [마이웨이]는 시사회로 이미 봤지만 아직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 [퍼펙트 게임]을 보지 못한 저는 당연히 이 두 영화 중 하나를 골라 극장으로 달려가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은 엉뚱하게도 내년 1월에 개봉 예정인 잔잔한 가족 드라마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였습니다.

처음 20세기 폭스 코리아에서 시사회 초대 연락이 왔을 때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왜냐하면 하필 시사회 일자가 제가 가장 바쁜 주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대작들이 개봉하고, 회사 송년회 준비로 바쁘고, 가족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 준비도 해야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 시사회라니... 차라리 영화 개봉날 느긋하게 내 돈내고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휴가 중인 처남과 구피가 의외로 'OK' 사인을 내렸고, 저 역시 겨울 블록버스터를 보느라 쉬지 않고 달린 기분이라서 조금 쉬어가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자는 생각에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시사회에 응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개봉하려면 아직 한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서 제 영화 이야기에서는 잘 하지 않는 영화 소개를 잠시 할까 합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영국의 컬럼니스트 벤자민 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위기에 처한 한 가족이 동물원을 구입하고 동물원을 꾸려 나가며 가족간의 사랑을 회복하고 아픔을 이겨낸다는 어찌보면 참 착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이 주목받을만 한데요... 제이슨 본이라는 딱딱한 근육질의 옷을 벗어던지고 최근에는 푸근한 아저씨 연기에 몰입중인 맷 데이먼이 이번에도 아내를 잃고 두 아이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아저씨 역을 맡았습니다. 맷 데이먼을 좋아하는 구피는 '이제 맷 데이먼은 아저씨 연기만 할건가봐.'라고 아쉬워했지만 저는 왠지 제이슨 본보다는 아저씨 맷데이먼이 더 친근감이 가더라고요.

섹시스타라는 이미지와는 별도로 약간은 독특한 연기 행보를 하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이번에도 털털한 사육사 연기를 했고, 그 외에도 다코타 패닝의 동생인 엘르 패닝, 연기파 배우 토마스 헤이든 처치가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빨리 큰다. 어른들이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제가 영화 이야기에 앞서 이렇게 간단히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영화 정보를 쓴 이유는 영화 상영 전의 작은 해프닝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간단한 줄거리와 출연 배우 정도만 알고 갔습니다. 그 와중에 다코타 패닝의 동생인 엘르 패닝이 출연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구피에게 저는 '저 배우가 바로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래'라고 아는 척을 했습니다. 구피는 '오! 그래?'그러면서 흥미로워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엘르 패닝이라고 지목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아역인 로지 역을 맡은 매기 엘리자베스 존스였습니다.

엘르 패닝이 출연한 [슈퍼 에이트]를 봤던 제가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던 것은 바로 다코타 패닝이 아직 귀여운 아역 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라면 당연히 더 귀여운 아역 배우일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영화의 유일한 아역 배우인 매기 엘리자베스 존스를 엘르 패닝이라 착각한 것이죠.

하지만 영화 초반에 릴리가 등장하면서 제 실수를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제 실수를 영화 중반에 구피에게 고백했고, 결국 구피의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자칭 영화광이라는 남편의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구피가 그냥 놓칠리가 없죠. 그날 잠들기 전까지 저는 잘난 척한 댓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코타 패닝도 이제 귀여운 아역 배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녀도 이제 십대 후반의 나이니까요. 단지 저는 [아이 엠 샘], [샬롯의 거미줄]의 다코타 패닝만 기억하고는 아직 그녀가 어리다고 단정지은 것이죠.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빨리 성장합니다. 그러한 아이들의 성장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와도 맞물립니다.

벤자민(맷 데이먼)은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내를 잃은 슬픔보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을 다독거리는 것입니다.

아직 달에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7살 로지의 동심도 지켜주고,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더욱 삐딱하게 나가는 아들 딜런의 반항도 잡아줘야 합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아이들의 성장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내와 함께 나눠 했던 부모로서의 임무를 혼자 해야 하는 벤자민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고작 모두 잠든 밤에 홀로 아내의 사진을 보며 흐느끼는 시간만이 허용될 뿐입니다.

벤자민은 결국 아이들을 위해 환경을 변화시킬 생각을 했고, 버려지다시피한 동물원을 사들인 것입니다. 동물원은 어린 로지의 동심을 지켜줌과 동시에 사춘기 소년 딜런의 마음도 잡아줍니다. 이렇듯 주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성장... 이것이 벤자민이 동물원을 사들인 원인이 되었고, 이 따뜻한 실화 영화를 이루는 기본 요소가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떠나 보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원치 않은 이별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내를 잃은 벤자민도, 어머니를 잃은 딜런과 로지도, 준비되지 않은 이별로 인하여 아파하고 방황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그러한 그토록 중요한 캐서린의 죽음을 훌쩍 뛰어 넘어 아예 생략을 해버립니다. 벤자민과 두 아이의 슬픔과 갈등을 표현하려면 캐서린의 죽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텐데,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캐서린의 죽음 이후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대신 이 영화는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의 아픔을 표현하는데 바로 늙은 호랑이의 안락사 장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거동조차 불편한 이 호랑이를 살리기 위해 벤자민은 부족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비싼 수의사도 부르고 비싼 약도 사 먹입니다. 하지만 사육사인 켈리(스칼렛 요한슨)는 이제 그를 떠나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벤자민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반응합니다. 그는 무언가를 떠나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어떻게든 늙은 호랑이를 떠나보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벤자민의 모습에서 그가 캐서린을 떠나 보냈을 때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간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서로를 이해 못하던 벤자민과 딜런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은 바로 벤자민이 늙은 호랑이의 안락사를 결정하는 장면입니다. 벤자민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딜런과의 소통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누구나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떠난 것을 붙잡고 슬퍼만 한다면 바로 자신의 곁에 있는 것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떠난 것 때문에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죠.

벤자민이 그러했습니다. 딜런의 반항에 대해서 처음엔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벤자민은 자신이 이미 떠난 캐서린에 대한 슬픔 때문에 바로 곁에 있던 딜런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이별하는 법을 배우며 부자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됩니다. 

 

 

슬픔을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벤자민의 동물원은 성공할 것이라고...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렇게 착한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해피엔딩임을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한 관객이라도 벤자민과 딜런, 로지가 캐서린을 떠나보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슬픔에 빠져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벤자민과 딜런 그리고 아직 어린 로지가 어떻게 캐서린을 잃은 슬픔을 환한 미소와 함께 추억으로 승화시키는지 예상할 수 있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은 잔잔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영화의 후반에 제게 큰 울림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 때문입니다. 그들이 슬픔을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그 장면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동을 끌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법과도 같은 동물원에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벤자민은 이별하는 방법을 배웠고, 딜런은 사춘기 소년의 반항 에너지를 릴리(엘르 패닝)에 대한 첫사랑의 에너지로 변환시켰으며, 로지는 어린 동물들을 돌보며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벤자민이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린 것이 아닌 동물원이 무너져가는 벤자민 가족을 살린 것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그 흔한 악당도 없습니다. 동물원 허가 담당 공무원인 월터가 만약 동물원의 개장을 방해하는 악당이었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좀 더 긴장감이 흐르고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을 뽑아내 벤자민과 켈리의 러브 라인에 힘을 실었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데이트용 영화로 좀 더 많은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그러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는 벤자민과 그의 가족들이 동물원을 통해 슬픔과 아픔을 이겨 나가는 과정을 담을 뿐입니다. 물론 가끔 벤자민의 형인 던컨(토마스 헤이든 처치)이 관객을 웃기기는 하지만 그리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곁가지를 철저하게 처냄으로서 영화의 감동을 전해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랗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휴식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을 거닐며 상쾌한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산책하듯 걷는 상쾌한 휴식.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동물원에서의 휴식. 애초에 쉬지 않고 빵빵 터지는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생각했던 제 바람이 정확히 들어맞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블록버스터에서의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보다는

이렇게 소소한 영화에서의 그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들의 편안한 영화가 내 휴식을 더욱 빛내 준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