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상술에 놀아난 동심

 

 

감독 : 유야마 쿠니히코

더빙 : 이선호, 장경희, 남도형, 신용우

개봉 : 2011년 12월 22일

관람 : 2011년 12월 25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닌텐도에 짓밟힐뻔했던 웅이의 크리스마스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을 회사 야유회 때문에 강원도 현대성우리조트에서 보냈습니다. 운동 신경이 완전 꽝임에도 불구하고 보드를 배워보겠다고 낑낑거리다가 새로산 스키 장갑만 잃어버린채 패잔병처럼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선 크리스마스라며 들떠 있는 웅이와 몇 주전부터 감기몸살로 비실 모드 돌입중인 구피가 저를 반기더군요. 비록 회사일 때문에 집을 비운 것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지 못한 미안함에 크리스마스 만큼은 정말 가족들과 보람차게 보내겠다고 다짐을 하며 크리스마스 이브 밤을 보냈습니다.

스키장에서 무리한 탓에 초저녁부터 죽은 듯이 잠이 든 저는 크리스마스 아침, 웅이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요즘 '앵그리 버드'라는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웅이는 '앵그리 버드' 캐릭터 인형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웅이에게 선물을 보내준 산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온 몸이 뻑적지근하게 아팠지만 그래도 전날의 다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제 계획은 간단했습니다. 웅이가 한 달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극장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를 극장에서 보며 웅이와 재미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그 사이 구피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죠. 이번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는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 '비크티니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 이렇게 두 편으로 동시 개봉을 하기 때문에 구피는 거의 6시간 동안 푹 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극장 도착.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온 가족들로 굉장히 붐볐습니다. 어른들은 영화관람료보다 비싸다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팝콘 세트를 사기 위해 매점에 길게 줄서 있었고, 어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피 같은 하루치 반찬값으로 산 팝콘을 해맑은 얼굴로 맛나게 먹고 있었습니다.(도대체 팝콘이 왜 이렇게 비싼건지 누가 설명좀 해주세요.)

다행히도 팝콘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웅이. 그냥 사주면 사주는대로, 안사주면 안사주는대로, 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웅이가 안쓰러워 음료수라도 사줘야 겠다는 생각에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웅이 옆에 한 아이가 서성이고 있더군요. 어린 아이들은 처음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친해지기에 저는 웅이가 극장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줄 알고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웅이 또래인듯 보이는 그 아이는 웅이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닌텐도가 없다며... 닌텐도를 가지고 있는 관객에 한해서 영화를 보면 제크로무, 레시라무 게임 캐릭터를 닌텐도에 넣어주는데 그 아이는 자신의 닌텐도를 자랑하며 닌텐도가 없는 웅이에게 '불쌍하다'라고 놀리고 있더군요. 웅이는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상대를 안해주지만 그 아이는 끈질기게 웅이의 옆에서 껍죽대고 있었습니다.(옆에 앉은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런 아이의 만행을 모르는척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저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넌 Wii있어?" 라고 물었습니다. 다행히도 없더군요.(웅이는 고모한테 몇 년전에 선물 받았습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저도 그 아이를 놀렸습니다. "넌 Wii도 없냐? 불쌍하다!"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그 아이는 "있었는데 망가졌어요." 라고 반격합니다. 하지만 한 껍죽하는 제가 가만 있을리가 없죠. "암튼 지금 없잖아. Wii도 없고... 에고 불쌍해라." 이렇게 해서 껍죽대왕 쭈니의 완승.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웅이는 "아빠, 멋졌어요." 라며 웃어주더군요.(초딩한테 말싸움으로 이긴 장한 쭈니!!! ^^;)

 

 

웅이에겐 너무 완벽했던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

 

제 눈부신 활약으로 초딩과의 유치한 말싸움에서 완승을 거두긴 했지만, 영화 보기 전 극장 직원들에게 줄을 서서 닌텐도의 게임 캐릭터를 받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웅이가 안쓰러워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구피한테 혼날 것을 각오하고 포켓몬스터 미니 도감을 하나 사줬는데 웅이가 또 어찌나 좋아하던지...  

암튼 닌텐도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는 두 편으로 나눠 개봉했습니다.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비크티니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입니다. 웅이와 저는 오전에는 '흑의 영웅 제크로무'를, 오후에는 '백의 영웅 레시라무'를 보기로 했습니다. 하루의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웅이와 함께 보는 것도 제게는 처음 있는 일이기에 영화를 보면서 저도 괜시리 설레더군요.

드디어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가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극장 안은 소란스러웠고, 화장실을 가느라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웅이와 저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영화 속에 푹 빠졌습니다.

 

일단 이번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악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극장판 포켓몬스터'에서는 확실한 악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이 확실히 대비되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황폐화된 동족의 땅을 되찾으려 하는 드레드만 있을 뿐입니다. 그는 전혀 악당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 모세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서 비크티니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신념에찬 지도자로 보였던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순간 일그러져버린 것이죠.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시라무와 제크로무의 세기의 대결. 전설의 포켓몬답게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이 두 포켓몬은 후반부에 멋진 대결을 펼쳐 보이는데 비크티니라는 귀여운 포켓몬과 레시라무, 제크로무라는 멋진 포켓몬을 등장시켜 동심을 자극하는 '포켓몬스터'의 전략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진 듯이 보입니다.

언제나 '극장판 포켓몬스터'를 보면 아쉬운 것이 TV판에서 매력적인 감초였던 로켓단의 활약이 미비한 것인데 이번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에서도 역시 그러한 아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는 웅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보람이 있는, 웅이와 크리스마스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제 소원이 이루어진, 아이들 애니메이션으로는 완벽한 영화였습니다. 

 

 

백의 영웅 레시라무에 대한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가 끝나고 웅이는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흑의 영웅 제크로무'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백의 영웅 레시라무' 역시 굉장히 기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흑의 영웅 제크로무'를 보고나니 왠지 '백의 영웅 레시라무'가 별개의 영화가 아닌 포켓몬만 살짝 바꾼, 한마디로 같은 영화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웅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빠, 제가 그래서 영화 전단지를 봤는데요... 다른 영화라고 쓰여 있었어요."

20분 정도 휴식 타임이 끝나고 같은 상영관, 같은 자리에서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비크티니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웅이에게 치즈 팝콘과 카라멜 팝콘이 반반씩 들어있는 커다란 팝콘까지 안겨주고 '백의 영웅 레시라무'를 봤습니다.(웅이가 팝콘을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결국 저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구경만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오프닝씬인 드레드가 뿔뿔이 흩어진 대지의 백성을 찾아나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행히도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는 약간 다르더군요. 그래서 저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같을지 몰라도 그래도 기본적으로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는 다른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30분 정도 진행되자 영화 볼때는 영화에 집중하느라 제게 말을 걸지 않던 웅이가 제 귀에 대고 말합니다. "아빠, 내용이 같네요." 그 이야기를 하던 순간의 웅이의 표정은 실망감 그 자체였습니다. 하긴 영화 두 편을 볼 것이라 기대했는데 같은 영화를 두번 연속 봤으니 당연히 실망했겠죠.

제가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해도 같은 영화를 30분 간격으로 연속 본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결국 저도 중간 중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을 감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웅이와 저는 다른 그림 찾기 게임을 하듯이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의 다른 점 찾기에 몰두하면서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즐기긴 했습니다.

일단 앞의 오프닝씬에서 '흑의 영웅 제크로무'는 척박한 황무지에서 살고 있는 대지의 백성을 찾아가 레시라무를 이용해 그들이 처한 위기를 돕고, '백의 영웅 레시라무'에서는 북극에 살고 있는 대지의 백성을 찾아가 제크로무를 이용해서 그들이 처한 위기를 돕습니다. 가끔 좌우 대칭이 바뀌기도 하고, 드레드의 포켓몬이 바뀌기도 하지만 후반부까지는 더 이상의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흑의 영웅 제크로무'에서는 드레드를 돕는 레시라무와 지우를 돕는 제크로무의 대결이 펼쳐지고 제크로무가 이기지만, '백의 영웅 레시라무'에서는 드레드를 돕는 제크로무와 지우를 돕는 레시라무의 대결에서 레시라무가 이깁니다. 이건 무슨 평행우주를 소재로한 영화를 본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는 거의 동일하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웅이와 서로가 찾은 다른점 말하기를 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답니다.

 

 

동심을 위해 좀 더 세밀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온전히 제 책임입니다. 제가 좀 더 영화의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가 서로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점을 눈치챘을텐데, 하필 회사 야유회 일정이 있는 바람에 일이 바빠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이건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회사 측에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 두 영화가 서로 같은 영화라는 것을 충분히 홍보하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전단지에는 앞면 하단에 정말 개미보다 작은 글씨로 '본 작품은 하나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포켓몬과 일부 장면, 대사들이 다른 영화입니다.'라고 표기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서 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웅이는 발견했지만 이 두 영화가 서로 다른 영화라고 잘못된 이해를 하고 만 것이죠.

전단지에 좀 더 잘 보이도록 이러한 사실을 써 놓았다면 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웅이와 영화를 관람했을 것이며, 남은 시간으로는 다른 것을 하며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영화를 두번 연속 보느라 저와 웅이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허망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죠.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애써 '그래도 재미있었어요.'라며 저를 위로합니다. 영화의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저는 웅이한테 미안해 미칠 지경인데 웅이는 오히려 어른스럽게 저를 위로해준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다시 화가 치미네요. 영화 두 편을 봤는데 영화 이야기는 하나 밖에 쓰지 못하는 이 억울한 심정... 내 영화 예매권도 4장이나 썼는데... -_-;

저는 가급적이면 본 영화는 또 보지 않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번 본 영화는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런 제게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는 참 독특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에 뭔가 미심쩍은 일이 있으면 영화 정보를 꼼꼼히 검색해봐야 한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 배급사는 좋겠습니다. 저처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모들을 속여 같은 영화를 두번 연속 보게 함으로서 수입을 두배로 올리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웅이가 '그래도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해줬으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속은 기분 때문에 이번 크리스마스를 망칠뻔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과 아들이 없는 틈에 푹 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구피가

밀린 집안 일을 하느라 오히려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로서 나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무엇하나 내 맘대로 된 것이 없었다.

쭈니의 크리스마스 일기 끝!!! 

 

 

극장판 포켓 몬스터 DP :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2009)

 

[극장판 포켓몬스터 DP : 환영의 패왕 조로아크] - 아이들을 감동시키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