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래드 버드
주연 : 톰 크루즈, 제레미 레너, 사이먼 페그, 폴라 패튼
개봉 : 2011년 12월 15일
관람 : 2011년 12월 15일
등급 : 15세 관람가
구피의 생일 선물
12월 16일은 제 영화 이야기에서 몇 번 언급했던 회사 동호회의 2011년도 송년회 모임이 잡혀 있었습니다. 부천의 유명 오리고기집에서 맛난 훈제 오리에 맥주 한 잔(전 지난 5월 이후 소주는 끊었습니다.)을 할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스르륵 고이더군요.
그런데 뭔가 제가 놓친 것이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그래서 달력을 자세히, 꼼꼼히 살펴보니 오 마이 갓!!! 그 날이 구피의 생일인 것입니다. 일찍 발견했으니 다행이지 자칫 잘못하면 소주를 끊으면서 획득한 구피의 애정을 단 한순간에 날려 버릴 뻔 했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에게는 송년회에 못 나간다고 통보하고(너 없으면 무슨 재미로 술 마시냐며 다들 아우성입니다. 암튼 요 놈의 인기는 참... ^^), 1년동안 열심히 모아뒀던 비상금 통장을 털어 실탄도 넉넉하게 준비하고(내 피 같은 비상금 T-T),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구피의 생일 준비를 마쳤습니다.
12월 15일 구피 생일 이브... 구피의 생일 당일에는 웅이와 함께 온가족이 보내야 하는 만큼 이브날 만큼은 단 둘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때 맞춰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예매도 완료하고, 구피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전문점 위치도 파악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나온 구피의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하필 감기몸살이 된통 걸렸다고 하네요. 점심 식사도 못하고, 병원에서 주사 맞았다는 구피는 연심 기침을 해대며 비실 비실거립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 이불 뒤집어 쓰고 푹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상황. 그런데 구피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만큼은 꼭 봐야 겠다며 버텼습니다. 그만큼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은 구피에게도 기대작이었던 셈이죠.
이렇게해서 비록 스테이크로 우아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스테이크 대신 쌀국수와 현대백화점 식품코너의 도시락 세트로 대체되었지만 그래도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만은 든든하게 구피의 생일을 축하해줬답니다.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이단 헌트
제가 처음 [미션 임파서블]을 접하게 된 것은 1996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15년 전이네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손에 완성된 [미션 임파서블]은 '007 제임스 본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첩보 액션물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스펙타클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톰 크루즈가 줄에 매달려 임무를 완수하는 장면은 아직도 수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가 될 정도입니다.)
2000년에 오우삼 감독에 의해 완성된 [미션 임파서블 2]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답게 멋진 영상미로 영화를 완성해 놓았습니다. 이단 헌트를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바치는 니아 홀(탠디 뉴튼)의 희생은 오우삼식 이단 헌트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하지만 J.J. 에이브람스 감독이 연출한 [미션 임파서블 3]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이단 헌트를 바꿔 놓습니다. 사랑에 빠진 이단 헌트는 더 이상 최고의 첩보원이 되기를 거부한채 사랑하는 여인인 줄리아(미셀 모나한)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지난 2006년에 쓴 [미션 임파서블 3]의 영화 이야기를 보니 저는 시리즈 3편 동안의 이러한 이단 헌트에 변화에 대해서, 1편은 꼼꼼하고 치밀하면서 세련된 멋을 지난 장남, 2편은 대책없는 기분파에 화끈한 성격을 지닌 품생품사 둘째, 3편은 낭만주의자에 눈물도 많고 감수성도 예민한 소심한 막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3] 영화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급기야 세계의 평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랑밖에 모르는 스파이는 필요없다며 톰 크루즈가 이젠 이단 헌트의 자리를 젊은 배우에게 물려 주고 내려올 때가 되었다고 모진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만큼 제게 [미션 임파서블 3]는 이질감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자! 4편은 어떨까요?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등 픽사의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브래드 버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프로토콜]은 J.J. 에이브람스 감독에 의해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이단 헌트를 제자리에 돌려 놓는 작업부터 해냅니다.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이단 헌트의 첫 등장은 러시아의 감옥입니다. 3편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줄리아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은퇴한 이단 헌트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다시 IMF 조직에 복귀하는 장면으로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줄리아는 온데간데 없고 러시아의 차디찬 감독이라니...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단 헌트의 부인이 죽었고, 이단 헌트는 부인의 복수 때문에 살인을 저질러 러시아의 감옥에 갇혔다고 설명해줍니다. 3편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면서도 줄리아의 캐릭터를 지워 버림으로서 이단 헌트를 다시 최고의 첩보원 자리에 돌려 놓은 것입니다.
새로운 팀 구성으로 영화의 재미가 풍성해지다.
이렇게 3편에서 사랑에 빠져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이단 헌트가 다시 최고의 첩보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맡아야할 사건은 제목 그대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1편에서처럼 이단 헌트는 누명을 썼고, IMF 조직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독자적으로 팀을 꾸려 누명을 벗음과 동시에 전 세계도 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단 헌트가 새롭게 꾸린 팀 구성원입니다. 이단 헌트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비밀을 간직한 브랜트(제레미 레너), 초보 요원 벤지 던(사이몬 페그), 여성 요원 제인 카터(폴라 패튼)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 구성원들은 각자의 개성을 살려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구축해 나갑니다.
브랜트는 3편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밝히지 않겠지만 브래드 버드 감독이 시리즈 최고의 망작(개인적으로)으로 꼽히는 3편도 결코 놓치지 않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러한 연결고리 덕분에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프로토콜]은 마지막 여운이 남는 라스트씬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벤지는 웃음을 담당합니다. 사실 이 시리즈가 치밀한 첩보전과 화려한 액션은 있지만 웃음은 조금 부족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데 브래드 버드 감독은 벤지라는 캐릭터 하나로 그러한 시리즈의 약점을 완벽하게 메워버립니다. 벤지 덕분에 이단 헌트가 황당해 하는 표정도 덤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인 카터 캐릭터는 조금 복합적인데 외모는 2편에서 탠디 뉴튼이 맡았던 니아 홀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임무 수행 중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녀의 과거는 3편의 이단 헌트의 모습이 풍기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임무를 망칠 뻔 하기도 하고 이단 헌트와 진한 키스를 통해 시리즈의 새로운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브래드 버드 감독은 제인 카터를 그저 눈요깃거리의 헌트걸로 만들 생각은 없었던 듯이 보입니다.
제인 카터는 첩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거의 그랬듯이 주인공과 로맨스를 연출하다가 바보같이 인질이 되어 주인공에게 민폐만 끼치는 그런 한심한 캐릭터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인 카터의 활약상은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납니다.
이렇듯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은 이단 헌트 단 한사람에 기댄 첩보 액션물이 아닌 이단 헌트와 팀을 이룬 구성원의 개성과 그들이 함께 힘을 합쳐 임무를 완수해 나가는 재미를 관객에게 안겨줍니다.
러시아, 두바이, 인도를 넘나드는 액션의 완성도도 높다.
하지만 역시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프로토콜]에서 제가 가장 열광한 것은 전 세계를 넘나드는 액션씬입니다.
1편의 IMF 본부 건물, 3편의 바티칸에 이어서 이번에는 러시아의 크렘린궁입니다. 3편이 시리즈 최고의 망작이라고는 하지만 바티칸 침투와 바티칸에서의 임무 수행 장면 만큼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프로토콜]에서의 크렘린궁 침투 작전은 1편, 3편의 침투 장면과 비교해서 조금 허술합니다. 그래도 기발함과 동시에 의외의 폭소를 터트려준 장면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크렘린궁의 대규모 폭발 장면도 과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답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크렘린궁의 침투 장면이 조금 아쉬웠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곧바로 지상 828m 세계 최고층 빌딩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에서의 액션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예고편을 통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던 고소공포증에 의한 현기증을 유발시키는 이 액션은 영화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모래 폭풍 중에 전세계에 핵전쟁을 유발시키려는 미치광이 과학자 커트 헨드릭스(미카엘 뉘키비스트)와의 추격씬은 액션을 넘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이렇듯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은 캐릭터에 의한 재미와 액션의 스펙타클함으로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3편의 영화 이야기에서 이제 그만 톰 크루즈는 이단 헌트의 자리에서 내려 와야 한다는 선언을 걷어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톰 크루즈가 없는 '미션 임파서블'은 상상할 수가 없군요.
확실히 브래드 버드 감독은 사랑에 빠져 최고의 첩보원이 되길 거부하던 이단 헌트를 다시 최고의 첩보원 자리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온갖 불가능한 임무를 온 몸을 던져 완수하는 그의 액션을 보며 복귀한 그가 눈물겹도록 반가웠습니다.
그래도 사랑에 빠졌던 낭만 가득한 이단 헌트가 그립다고요. 걱정마세요. 브래드 버드 감독은 그런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 라스트에 아련함이 남는 장면을 준비했으니까요. 마지막 끝나는 그 순간까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위한 팬 서비스를 잊지 않은 브래드 버드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사랑에 빠진 이단 헌트도 멋있지만...
역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는 이단 헌트가 더 멋있다.
사랑을 지우고 최고의 첩보원으로 복귀한 이단 헌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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