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 -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가 무너지다.

쭈니-1 2011. 12. 12. 11:00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더빙 : 제이미 벨, 앤디 서키스, 다니엘 크레이그

개봉 : 2011년 12월 7일

관람 : 2011년 12월 1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두 거장 감독을 매료시킨 '땡땡의 모험'

 

제가 영화광의 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입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경우는 [대부 3부작]을 너무 감동깊게 봐서 좋아하게 된 경우이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경우는 당시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할 만큼 대세 중의 대세였죠.

나이가 들어서 영화를 보는 편수가 점점 늘어나고 판타지 영화에 빠져 들게 되면서 내 인생의 영화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피터 잭슨 감독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고요. 피터 잭슨 감독의 초기작은 챙겨보지 못했지만 [반지의 제왕] 이후의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는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가서 챙겨봤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 이 두 감독은 제게 청소년 시절에 좋아한 감독과 어른이 되어서 좋아한 감독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감독이 손을 잡았습니다.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이라는 영화를 통해 스티븐 스필버그는 감독을, 피터 잭슨은 제작을 맡은 것이죠. 이것은 제겐 정말 꿈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두 감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영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초기 [E.T.]와 같은 아동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를 자주 만들었지만 애니메이션은 단 한번도 직접 연출한 적이 없으며, 최근엔 [뮌헨], [워 호스] 등 조금은 심각한 주제의 영화를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 감독의 경우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전에는 [고무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 등 호러 영화 전문 감독이었고, [반지의 제왕] 이후에도 [킹콩], [러블리 본즈]등 판타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을 연출했습니다. 이 두 감독에게 애니메이션은 서로에게 잘 어울릴듯 하면서도 아직 그들이 정복하지 못한 장르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두 거장 감독을 매료시킨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제겐 상당히 생소한 영화였습니다. 원작인 '틴틴' 시리즈는 1929년 첫 등장 후 현재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초특급 베스트셀러이고 우리나라에도 '땡땡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캐릭터 그림만 낯이 익을 뿐, 원작을 읽어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백지 상태에서 두 거장 감독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틴틴의 모험 : 유니콘호의 비밀]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실사 같은 만화? 만화 같은 실사

 

전날 개기월식을 보느라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했던 웅이와 구피를 이끌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웅이와의 영화 관람에는 항상 빠지곤 했던 구피(구피는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까지도 동참한, [개구쟁이 스머프] 이후 4개월 만의 온 가족의 동반 영화 관람이 이뤄진 셈입니다.

먼저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자체가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실사처럼 정교하다는 것입니다. 2001년 일본의 게임을 원작으로 했던 애니메이션 [파이널 판타지]가 처음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에 도전을 했고, 로버트 저멕키스가 이미지 무버스라는 회사를 설립한 후 만든 일련의 애니메이션들([폴라 익스프레스], [베오울프], [크리스마스 캐롤],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로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던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혁명이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에서도 완벽하게 재현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3D 애니메션의 발전으로 애니메이션은 점점 실사회되어 가고 있는데 코믹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실사 영화들은 점점 애니메이션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감안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폭넓은 팬층을 지닌 만화가 원작이라는 사실이죠. 너무 현대적 기술력을 앞세워 실사같은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몰두한다면 원작 팬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흥행의 마술사답게 원작 팬의 향수도 헤치지 않고, 그러면서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기술력도 선보이는 완벽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실사같은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되 캐릭터만큼은 최대한 원작과 비슷하게 만든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근처 대형 서점에서 영화 상영과 맞물려 재발행된 영화의 원작 만화 '틴틴의 모험' 시리즈를 잠시 읽었습니다. 워낙 오래된 만화이다보니 그림체도 세련되지 않았고, 대사가 많은 만화라서 웅이가 읽기엔 적합해보이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원작 만화 속의 캐릭터와 영화 속의 캐릭터만큼은 1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주인공인 틴틴(제이미 벨)은 물론 하독 선장(앤디 서키스), 사카린(다니엘 크레이그) 그리고 하독 집안의 집사와 우스꽝스러운 두 형사까지도...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은 원작 팬의 향수를 잊지는 않은 셈입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모험... 역시 어드벤처 전문 감독의 작품답다.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인디아나 존스]의 새로운 버전처럼 느껴질 정도로 주인공 틴틴과 하독 선장의 모험이 쉬지 않고 펼쳐집니다.

틴틴의 고향인 덴마크의 브뤼셀에서부터 시작하여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뜨거운 사하라 사막, 아프리카의 상상의 도시 바가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을 망라한 방대한 모험담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특히 바가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실사 영화라면 불가능했을 스펙타클한 영상이 진가를 발휘했는데,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 놀라운 난장판 액션은 애니메이션에 시큰둥하던 구피도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에서 가장 인상깊은 명장면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항구에서 크레인으로 하독과 사카린이 맞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비록 애니메이션이지만 영화를 보는 제 몸이 움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틴틴과 하독의 모험담을 뒤쫓다보니 거의 두시간에 달하는 영화가 금방 막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어드벤처 부분에서 놀랄만한 영상을 선보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마저도 꽤 정교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어드벤처 영화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모험담을 펼쳐놓다 보니 스토리 라인이 조금 부실해지는 것을 감안하곤 합니다.

하지만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원작 만화 속 '유니콘호의 비밀', '황금집게발 달린 세', '라캄의 보물', 이렇게 세 편의 에피소드를 각색하며 영화 속에 풀어 놓았고, 각각의 모험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모험담을 보여주기 위한 억지스러운 스토리 라인이 아닌, 마치 탐정 영화를 보는 듯 정교하게 펼쳐집니다.

영화화하기 힘들 것이라는 방대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영화화에 성공한 피터 잭슨과 영화적 재미와 정교한 스토리 라인으로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스티븐 스필버그의 힘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웅이도 재미있었을까?

 

이렇게 정신없이 틴틴과 하독 선장의 모험을 쫓다가 문득 옆에 앉은 웅이를 봤습니다. 몸을 뒤척이고 있더군요. 순간 '아! 어른인 내겐 이 영화의 재미가 맞을지 몰라도 아직 어린 웅이에겐 이 영화의 재미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정교하다는 것은 반대로 아이들이 보기엔 스토리 라인을 쫓아가기 버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직은 애니메이션이 열광하는 웅이로서는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가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를 본 후 웅의 반응은 '정말 재미있었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은 지루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웅이도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젠 웅이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도 함께 보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허물고, 1929년 첫 등장한 틴틴의 역사를 감안하면 1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도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른이 즐기는 영화는 어린이가 즐기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깸으로서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도 무너뜨렸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며, 2부작부터는 피터 잭슨이 연출을 맡는다고 하네요. 스티븐 스필버그 만큼이나 능력이 있는 감독이니만큼 2부인 [틴틴 : 태양의 신전]도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웅이와 함께 '틴틴의 모험'에 계속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피터 잭슨 감독이 만난 꿈의 프로젝트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를 허무는...

세대를 초월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만큼 웅이와 나의 추억도 차곡차곡 쌓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