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빌 콘돈
주연 :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테일러 로트너
개봉 : 2011년 11월 30일
관람 : 2011년 11월 3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재미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2년 전 [뉴 문]을 본 후 제가 쓴 영화 이야기의 제목입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뉴 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민망할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뭐랄까...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끝까지 보는 심리라고나 할까요.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애초부터 제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화였습니다. 훈남 뱀파이어와 평범한 인간 여자의 사랑을 그렸던 [트와일라잇]. 2008년 [트와일라잇]을 볼 때부터 저는 당혹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뱀파이어 액션이었는데 실제로 펼쳐진 것은 달달한 청춘 로맨스였거든요.
2009년 [뉴 문]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라는 인터넷 신조어의 뜻을 잘 모르던 제게 그 뜻을 정확하게 알려준 영화였으며, 작년 여름에 개봉했던 [이클립스] 역시도 부족한 액션으로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브레이킹 던 part 1]이 개봉하기만을 기다리며 이렇게 개봉날 다른 영화들은 제껴두고 극장으로 달려가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새 이 달달한 시리즈가 전해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인간 여자를 사이에 두고 훈남 뱀파이어와 근육질 늑대인간의 삼각관계라는 설정 자체가 참 억지스러운, 이 시리즈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에 저는 중독이 되어 버린 셈이죠.
[브레이킹 던 part 1]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뉴 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정말 영화를 보고 앉아 있기 민망할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에드워드(로머트 패틴슨)의 인간과 뱀파이어의 종족을 넘어선 결혼식이 거행되고 벨라의 결혼 소식을 들은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내게 죽음을 달라'라고 필사적으로 외치는 이 세 젊은이를 보며 세상은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30대 후반인 저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토록 싫어하던 감정과잉이 넘쳐나는 장면들을 보며 '유치해'라는 생각보다는 영화에 점점 빠져드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트와일라잇]이 개봉한지 3년만에 저는 진정으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
달콤함 속에도 계속적으로 암시되는 비극의 그림자
[브레이킹 던 part 1]은 정확하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뉩니다. 전반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 벨라와 에드워드 커플의 행복한 결혼과 신혼을 담고 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가 절정으로 치솟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미 [뉴 문]도 거뜬히 견뎌냈고, 3편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에 대한 트레이닝을 마친 저는 전반부를 잘 넘겼습니다.
빌 콘돈 감독은 미처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에 대한 트레이닝을 마치지 못한 일부 관객을 위한 서비스도 잊지 않았는데 비극에 대한 암시가 그것입니다.
결혼식 전날 벨라의 피의 결혼식 악몽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는 호러 캐릭터를 잘 이용한 섬뜩한 장면입니다. 하얀 옷을 입은 하객들과 신부의 드레스가 피로 범벅이 되었을 때 가져다주는 시각적 충격과 에드워드의 음흉한 미소는 잠시 느긋해졌던 저를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신혼 여행지에서의 첫날밤은 15세 관람가 등급 때문에 적절한 수위를 지켜 아쉬웠지만(^^;) 18세 소녀의 설램과 결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잊지 않고 비극을 암시하는 영화의 분위기 덕분에 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해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벨라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며 [브레이킹 던 part 1]의 후반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종족. 영화는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죠.
시리즈 전반을 감싸고 있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가 사라지고 '사랑이 아니라면 죽음을 달라' 커플의 절절함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벨라는 눈에 띄고 야위어지고, 뱃속의 새로운 종족때문에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립니다. 영화의 전반부에 끊임없이 비극을 암시한 것이 이 부분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되는데 사실 아무도 벨라 뱃속의 인간의 뱀파이어 사이의 새로운 종족이 희망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앨리스마저도요.
하지만 전반부의 암시 때문에 저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식 전날 꾼 벨라의 악몽, 벨라의 죽음에 대한 암시, 그리고 에드워드의 슬픈 눈동자와 제이콥의 분노까지 겹쳐지며 영화의 분위기는 달아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뱀파이어인 컬렌가와 늑대인간 종족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영화의 긴장감을 점점 치솟는데, 그러한 긴장감이 제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 [브레이킹 던 part 1]을 가장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내가 에드워드의 절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조금 뜬금이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브레이킹 던 pqrt 1]을 보며 에드워드가 처한 상황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며 할 수 없었던 감정이입을 비로서 하게된 셈이죠.
지금까지 [트와일라잇], [뉴 문], [이클립스]는 인간과 뱀파이어, 그리고 늑대인간의 삼각관계라는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킹 던 part 1]에서는 벨라와 에드워드가 결혼을 하고 벨라가 임신을 하며 더 이상 달콤한 로맨스가 아닌 결혼의 현실이 펼쳐집니다.
여기에서 '인간과 뱀파이어의 결혼에 현실이 펼쳐졌다고?'라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벨라의 임신과 임신으로 인하여 죽을지도 모르는 벨라의 상황을 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에드워드의 절절함이 가슴 깊이 공감되었는걸요.
분명 벨라의 임신과 그로 인한 상황은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을 담은 영화답게 과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바꿔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아내가 임신중독증 상태라면... 뱃 속의 아기를 꼭 낳겠다는 아내의 고집을 과연 남편인 당신은 꺾을 수 있을까요?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의 뱃 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를 죽이는 결심은 모성애를 가진 여성이라면 아마도 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뱃 속의 새로운 종족이 희망이 될지, 아니면 재앙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벨라는 태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와 제이콥은 벨라가 죽을 것을 걱정하며 낙태를 종용하지만 벨라의 의지는 굽히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녀는 이제 사랑에 빠진 순진한 10대 소녀가 아닌 강한 엄마니까요.
지금까지 '사랑밖에 난 몰라'를 외치던 벨라의 철없는 행동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면 뱃 속의 태아를 지키기 위한 벨라의 몸부림은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화사하게 아름다웠던 벨라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몰골이 엉망이 되어 있는 장면은 아마도 지금까지 이 시리즈 중 가장 아름다운 벨라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벨라를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가는 태아를 '그것'이라고 칭하던 에드워드가 뱃 속 태아의 움직임을 느끼고 감동하는 장면은 구피가 임신했을 때 뱃 속의 웅의 발차기를 하는 순간을 느꼈던 제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제 마음을 더욱 움직였습니다. 벨라가 출산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꼬박 이틀동안 진통을 느끼는 구피를 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당시의 무기력했던 공포감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다시말해 [브레이킹 던 part 1]은 현실을 담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벨라와 에드워드의 상황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달콤한 그들의 로맨스보다 절절한 그들의 출산기는 제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공감을 일으켰고,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며 언제나 제가 느꼈던 아쉬움은 액션의 부재였습니다.
[트와일라잇]은 인간의 피를 쫓는 인간 사냥꾼 뱀파이어 3인방이 벨라를 표적으로 삼으며 벌어지는 액션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와 컬렌가의 싸움은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았고 싱겁게 끝나 버립니다.
[뉴 문]은 더욱 심한데, 에드워드가 떠난 후 벨라의 방황을 잡아내기에 급급했던 [뉴 문]에는 이렇다할 액션이 전무합니다. 물론 [트와일라잇]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제이콥이 새롭게 부각되고, 제임스의 연인이었던 빅토리아의 복수가 암시되며 뱀파이어 종족 중 최강인 볼투리가와 늑대인간 종족이 새롭게 소개되었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이클립스]는 액션이 조금 보이긴 했습니다. 빅토리아가 복수를 위해 뱀파이어 군단을 만들어 공격을 감행한 것이죠. 하지만 컬렌가와 늑대인간 종족이 힘을 합쳐 빅토리아의 뱀파이어 군단에 맞서니 당당했던 빅토리아의 뱀파이어 군단도 오합지졸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킹 던 part 1]은 드디어 컬렌가와 늑대인간 종족을 대립시키며 시리즈 최고의 액션을 선보입니다. 제임스도, 빅토리아의 뱀파이어 군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컬렌가와 늑대인간 종족의 싸움은 그 사이에 제이콥이 끼어 있음으로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요? 맞습니다. 뭔가 더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컬렌가와 늑대인간 종족의 싸움은 제이콥이 벨라의 딸에게 각인되며 싱겁게 끝납니다.
그러나 역시 실망은 금물입니다. [브레이킹 던 part 1]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 3분 정도만 꾹 참고 기다리면 [브레이킹 던 part 2]에서 펼쳐질 진짜 막강한 적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대부분 그 3분을 기다리고 못하고 퇴장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게 봤어.'라는 제 대답에 구피가 깜짝 놀랬습니다. '대부분 여성 관객들은 좋아하고, 남성 관객들은 저게 뭐야! 그런다던데...'라며 이 영화에 대해 만족감을 표현했던 제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지 않아 액션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했지만 [브레이킹 던 part 2]를 예고하던 영화의 마지막 벨라의 모습과 엔딩 크레딧 후의 히든 영상만으로 전율이 느껴졌으며, 달콤함과 절절함을 적절하게 오고가는 영화의 분위기에 푹 빠져 긴장하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리즈 전반에 걸쳐 트레이딩했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를 익혔기 때문일수도 있고,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영화에 공감햇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암튼... 제겐 최고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브레이킹 던 part 1]이며, [브레이킹 던 part 2]가 다시 그 기록을 깨기를 간절히 바라며 1년을 버텨야 겠습니다.
진정으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재미를 깨닫게 되었는데...
하지만 내년이면 이 시리즈도 마지막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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