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황병국
주연 : 엄태웅, 주원, 정진영, 성동일, 이태임
개봉 : 2011년 11월 24일
관람 : 2011년 11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수사반장]의 후예가 될 수 있을 것인가?
1971년 3월 6일 첫방송을 시작하여 1989년 10월 12일 막을 내리기까지 무려 18년간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TV 수사극 [수사반장]. [수사반장]이 막을 내리며 팀플레이를 이룬 정통 수사극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1993년 12월 [투캅스]라는 제목의 코미디 영화가 개봉을 합니다. 두 경찰의 코믹한 활약상을 담은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며 시리즈로 3편까지 만들어졌고, [투캅스] 이후의 수사극은 팀플레이의 의한 수사가 아닌 주인공 한 두명의 활약을 담은 캐릭터 수사극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 [수사반장]의 후예임을 자처한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하였습니다. '특수수사본부'를 줄인 [특수본]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이미 [부활]과 [마왕]으로 TV 수사극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던 엄태웅과 신예 주원, 그리고 베테랑 연기자 성동일, 정진영을 캐스팅함으로서 [수사반장]이후 정통 팀플레이 수사극의 부활로 제게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감은 오해에서 비롯된 헛된 것이었습니다. 막상 극장에서 확인한 [특수본]은 팀플레이에 의한 수사극과는 거리가 먼 기존의 사수극처럼 김성범(엄태웅)과 김호룡(주원)의 활약상만을 담아낸 캐릭터 수사극이었습니다.
제목이 [특수본]이라서 '특수수사본부'의 경찰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영화일 것이라 판단한 단순한 제 오해였던 것이죠.
어쩌면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수본]은 처음부터 저와 어긋난 만남을 가진 영화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마 워낙에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고 수사극이라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식으로 덤벼드는 성격이라 오해에서 비롯된 [특수본]에 대한 실망은 뒤로 하고 영화에 집중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좋은 리뷰를 써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꼬여 놓았던 사건의 실타래들은 어느 한 순간 가위로 툭 하고 잘라낸 것처럼 어이없게 술술 풀려 버렸고, '진실을 감당할 수 있겠어?'라는 비장한 광고 카피는 맥 빠지는 진실 속에 조용히 사라져 버립니다.
배우의 연기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캐릭터들
이 영화는 잠복 근무 중인 성범과 영순(이태임)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잠복 근무 중 차에서 잠시 조는 영순의 봉긋한 가슴을 몰래 훔쳐보는 성범의 모습. 그리고 차 밖 길거리에서 옷을 벗고 소변을 보는 영순의 모습 등에서 [특수본]은 마치 [투캅스 3]와 비슷한 마초 형사와 선머슴같은 거친 여형사의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모자라 FBI에서 연수를 받은 범죄분석 전문가 호룡이 특수수사본부에 투입되고 성범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파트너끼리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했던 [투캅스] 시리즈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듭니다.
뭐 새로운 캐릭터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져 있을 줄은 물랐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태웅이라는 좋은 배우를 가지고 말입니다. 엄태웅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활]과 [마왕]에서 비장미 넘치는 새로운 캐릭터로 TV 수사극을 한 단계 올린 배우입니다. 그런 그도 성범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만나고 나니 연기력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해져 버렸습니다.
여기에 주원이 연기한 김호룡 이라는 캐릭터는 시종일관 영화를 보는데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가 성범과는 다른 엘리트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호룡의 스타일을 수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멋쟁이 스타일로 만들려고 애쓴 것은 잘 알겠지만 도가 지나치면 눈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수수한 마초 성범과 바짝 세운 머리 스타일로 한껏 멋을 낸 호룡의 서로 상반된 스타일은 티격태격하는 상반된 성격의 파트너라는 캐릭터 성격을 시각적으로 완성시키지만 문제는 그런 시각적인 완성과는 별도로 영화 속에서는 그들의 상반된 성격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범이 영화의 초반 호룡에게 삐딱한 자세로 시비를 거는 장면부터 공감이 되지 않더니, 나중에는 박인무(성동일)에 대한 의혹으로 서로 의기투합하는 장면 역시도 제 공감을 얻어내지 못합니다. 바짝 힘을 준 호룡의 헤어 스타일은 비리 경찰로 몰려 살해된 아버지를 위해 오랜 기간 복수를 준비한 호룡의 비장미를 퇴색하게 만들었는데 캐릭터의 내면보다 캐릭터의 헤어 스타일이 더욱 돋보였던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열심히 꼬아 놓았는데 그 실타래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스포 포함)
뭐 좋습니다. 성범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 실망했고, 호룡의 캐릭터는 캐릭터보다는 헤어 스타일이 더욱 제 눈을 어지럽혀 난감했지만 영화 속에 펼쳐진 사건만 치밀하다면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특수본]에서 펼쳐진 사건은 어느 경찰관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마약 사건에 대한 의혹을 받고 지구대로 좌천된 이재위. 그는 살해되었고 그의 주변에는 다량의 마약이 발견됩니다.
이에 경찰청은 특수수사본부를 꾸리고 사건 해결에 나섭니다. 먼저 이재위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다량의 마약을 근거로 마약상 주위를 탐문하던 성범은 박경식(김정태)이 사건에 깊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를 수사하던 도중 박경식과 자신의 상관인 박인무(성동일)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 [특수본]은 여러 트릭을 이용해서 사건을 꼬아 놓기 시작합니다. 특히 박경식과 박인무가 함께 살해되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실타래를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꼬아 놓은 실타래는 후반이 되기도 전에 허무하게 풀려 버립니다.
[특수본]은 등장 인물이 많은 영화가 아닙니다. 제한된 등장인물로 특수수사본부를 만들어 놓고 유력한 용의자인 박경식과 박인무를 함께 죽여 버리니 범인으로 의심해야할 캐릭터가 몇 남지 않아 버립니다.
결국 [특수본]은 주인공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성범, 호룡, 영순을 제외하고는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나머지 캐릭터들은 하나씩 '사실은 얘가 배후자야.'라고 반전이라며 꺼내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박인무가 죽은 그 순간 더 이상 이 영화엔 반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꺼내들 마지막 카드는 이제 경찰 서장인 황두수(정진영)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인무라는 카드를 너무 빨리 소진해 버린 황병국 감독은 경찰, 조폭, 정치권을 오고가며 꽤 복잡한 꼬인 실타래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옆에 날카로운 가위를 둠으로서 스스로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아무 소용없이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얘도 범인, 쟤도 배후 인물... 이라며 마치 곶감 빼먹듯이 캐릭터들을 하나, 둘씩 소모시키던 이 영화는 결국 황두수마저 빼먹고, 더이상 내세울 캐릭터가 없게 되자 느닷없이 재개발 지역의 이권 다툼 싸움에 희생되는 소시민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꺼내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반전도 맥 빠진 영화의 반전 위에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몇몇 어이없는 장면들
[특수본]은 이렇게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참 맥빠지는 수사극입니다.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반전은 허술합니다. 여러 등장 인물들이 죽으며 마치 복잡하게 꼬아 놓은 것만 같은 착각만 불러 일으킬 뿐, 영화 자체는 단순해도 너무 단순합니다.
그렇게 영화 전체적으로 보는 것외에도 장면 하나 하나만 놓고 봐도 어이없는 장면들이 꽤 많이 눈에 띕니다. 그 첫번째는 잠복근무 장면입니다.
[특수본]의 시작은 성범과 영순의 잠복 근무 장면입니다. 하필 영순이 소변을 보러 나가는 바람에 범인이 경찰이 잠복해 있음을 눈치채고 도망갑니다. 뭐 그럴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잠복했는데 하필 소변보는 그 순간 범인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데 두번째 잠복에서 비슷한 상황이 다시 연출됩니다. 이번엔 성범과 호룡의 잠복인데 성범이 잠시 가게에 들르고, 호룡이 잠시 조는 사이에 범인이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특수본]에는 잠복 근무 장면이 딱 두번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잠복근무자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범인이 나타납니다. 첫번째 장면에서는 '그럴수도 있지.'라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두번째 장면에서는 '나랑 장난치니?'라며 짜증이 밀려옵니다.
두번째 장면은 성범과 호룡이 범인들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 가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면 참 어이없는 것이 주인공은 악당을 죽일 때 조금의 주저함도 없지만 악당들은 주인공을 죽일 때 시간을 끌어서 주인공이 빠져나갈 시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입니다.
굳이 그들은 성범과 호룡을 어디론가 끌고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쏴 죽이고 암매장한다는 설정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아니면 그들이 연출하고자 하는 상황을 즉석해서 만들어 내거나 성범과 호룡을 꽁꽁 묶어 반항할 수 없게끔 하거나, 성범과 호룡을 안전(?)하게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습니다. 아직도 저렇게 주인공이 빠져 나갈 시간과 빌미를 제공하는 착한 악당이 나오는 영화가 있다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세번째... 황두수 서장은 왜 박인무 팀을 특수수사본부로 끌여 들였을까요? 특수수사본부에 두 팀을 둘 필요도 없었고, 박인무와 박경식의 관계, 그리고 물불 안가리는 김성범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특수수사본부의 책임자인 황두수는 박인무 팀을 특수수사본부에서 뺐어야 했습니다. 굳이 그들을 특수수사본부에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특수본]이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장면들을 하나씩 따지고 본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황병국 감독은 복잡하게 꼬였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수사극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전혀 복잡하지 않은 수사극인 [특수본]은 이렇게 제겐 참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수본]의 실수는 범인 잡기가 아닌 배후 캐내기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배후를 내세우기 위해 영화의 캐릭터 모두를 동원했지만
영화의 스케일이 뒤따라 주지 못하니 감춰야 할 배후는 너무나 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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