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머니볼] - 이래서 야구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까!

쭈니-1 2011. 11. 21. 10:50

 

 

감독 : 베넷 밀러

주연 : 브래드 피트, 요나 힐,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개봉 : 2011년 11월 17일

관람 : 2011년 11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최악의 영화관람을 경험하다.

 

지난 영화이야기에서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저희 회사에는 '신우회'라는 동호회가 있습니다. 제가 동호회 부회장입니다. 매달 세째주 토요일에 만나 산에도 가고, 볼링도 치고, 여행도 가는, 그야말로 회사 내 친목도모를 위한 동호회입니다.

가끔 영화도 보는데, 동호회 회원들이 40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다 보니 1년에 한 두번쯤 극장에서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영화 보기 모임이 결정되면 저는 영화 고르는데 신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날 모임에는 [리얼 스틸]과 [머니볼]이 선택되었고,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중장년층 회원들은 [리얼 스틸], 저를 포함해서 영화를 자주 보는 20, 30대 회원들은 [머니볼]을 볼 계획이었는데, 현장에서 중장년층 회원마저 저를 따라 [머니볼]을 보겠다고 선언해서 뜻하지 않게 회원들의 대부분이 [머니볼]을 보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저희가 영화를 본 곳은 역곡 CGV. 20분쯤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화면 끊김 현상이 나타나더군요. 몇 분동안 5번 정도 화면이 끊겼다, 이어졌다는 반복하더니 급기야 화면과 음향이 따로노는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네 3류 극장이 아닌 국내 극장 체인 중 최고라고 자부하는 CGV에서 말입니다.

참다못한 몇몇 관객들이 밖으로 나가 직원을 불렀고, CGV 직원은 고개만 빼곰히 내밀더니 '죄송합니다. 리부팅해서 영화를 다시 틀어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사과와 함께 사라지더군요.

 

조금 마음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영화를 보러 온 것이기에 이해할려고 했습니다. 20분 정도 영화를 관람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영화를 틀어준다면 새로운 기분으로 영화에 다시 집중하려 한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몇 초간 화면이 꺼지고 다시 틀어진 영화는 처음부터 다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면 끊김 현상이 있었던 장면부터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영화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져 천연덕스럽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날 화면 끊김 현상과 영상과 음향이 따로 노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장면은 바로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피터 브랜드(요나 힐)가 처음 만나 머니볼 이론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의기투합하는 장면. 어찌보면 [머니볼]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결국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가 주장하는 '머니볼'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채 영화를 관람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극장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동호회 회원들이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만류하는 바람에 기분 좋은 동호회 모임을 망칠 수가 없어서 관뒀습니다.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운 CGV가 기술적 오류는 물론이고, 오히려 영화의 감동을 깎아 먹는 서비스적 미숙의 행태까지 보여줌으로서 제게 최악의 영화관람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대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혹시 제 글을 읽으며 이미 지난 일을 쪼잔하게 들먹인다고 욕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머니볼]의 영화 이야기 첫 머리에 역곡 CGV에서 벌어진 흔치 않은 영상 사고를 언급한 이유는 '그러했기 때문에 난 이 영화가 기대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동은 순수하게 영화 자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닌, 영화를 보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정된다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좋은 기분으로 영화를 보면 웬만하면 그 영화는 재미있었고,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별로 재미를 못 느끼는 경우를 저는 자주 경험했습니다.(그래서 저는 영화 이야기에 제가 영화를 볼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머니볼]은 감동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잔뜩 기대하며 봤던 영화입니다. 남자라면 거의 대부분 좋아한다는 축구조차도 싫어하는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이며, 실존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도 좋아하는 편이고,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놀라운 연승 신화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웬만해서는 [머니볼]에 잔뜩 감동하며 극장을 나왔어야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저는 '이거 좀 심심한데?'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일지 몰라도, 제 마음을 상하게 했던 역곡 CGV의 미숙한 문제 처리 방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역곡 CGV 문제는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고, [머니볼]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머니볼]은 기본적으로 야구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야구를 소재로한 영화들을 자주 봐왔습니다. 전 그 중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았던 [내추럴]이라는 영화가 가장 감동깊었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로이 홉스가 극적인 홈런을 치는 장면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홈런볼이 조명등에 맞아 마치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듯한 장면은 가끔 국내 프로야구를 관람하면서 혹시 재현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이렇듯 야구 영화의 최대 장점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감동적인 장면을 영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극적인 승부가 나는 스포츠를 보며 '각본없는 감동의 드라마'라고 말합니다. 영화는 바로 그 각본없는 감동의 드라마를 토대로 영화 속에서 약간의 각본으로 감동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스포츠 영화는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가 되곤 합니다.   

 

 

야구 경기 장면을 최대한 자제한 야구 영화

 

그런데 놀랍게도 [머니볼]은 바로 그러한 스포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스스로 포기합니다. [머니볼]이 빌리 빈의 자전적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극적인 야구 장면이 주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런 제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버린 것이죠.

물론 [머니볼]에도 야구 장면은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경기 장면을 삽입하거나, 징크스 때문에 팀의 경기를 직접 보지 않는 빌리 빈 때문에 라디오의 경기 중계 방송, 혹은 TV의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주를 이룹니다.

그나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20연승을 거두는 경기 장면이 이 영화에서 스포츠 영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인데 하테버그가 극적인 역전 홈런을 치는 장면을 보며 조용했던 관객들 중 몇몇(그 중 저희 회사 직원도 포함되었습니다.)이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머니볼]이 경기 장면을 좀 더 영화적으로 포장해서 영화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면 [머니볼]은 빌리 빈의 감동적인 실화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베넷 밀러 감독은 그런 쉬운 길을 애써 포기했습니다.

특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기적적인 페넌트레이스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아쉽게 패하는 장면은 아예 최대한 생략되었습니다. 어찌보면 20연승을 거두는 장면과 더불어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릴 수 있는 경기일텐데... [머니볼]은 그런 극적인 경기 장면에 미련이 별로 없는 듯 보였습니다.

 

이렇게 스포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영화적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경기 장면을 애써 포기한 이 영화는 대신 빌리 빈이라는 인물에 좀 더 집중해달라고 관객에게 호소합니다. 결국 [머니볼]은 스포츠 영화의 길을 포기하고 전기 영화의 전형적인 길을 선택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베넷 밀러 감독이 스포츠 영화로서의 영화적 재미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빌리 빈의 이야기는 어떠했을까요?

앞서 언급했지만 [머니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가 만나 '머니볼'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장면이 역곡 CGV의 만행으로 인하여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기에 솔직히 빌리 빈의 '머니볼' 이론이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야구단의 프런트가 너무 설쳐대면 그 구단의 성적은 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야구는 팀 플레이기 때문에 선수의 실력 외에도 사생활 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빌리 빈은 이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그는 단장이지만 팀의 경기를 운영해야 하는 감독에게 가서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 기용에 압력을 가하고, 사생활이 문란한 선수도 스카우트 팀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영입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야구 구단에서 저런 일이 발생한다면 딱 욕먹기 좋은데 [머니볼]은 빌리 빈의 전기영화답게 그의 결단력을 좋게만 포장합니다. 프런트의 입김이 센걸로 유명한 국내 뭐 구단은 국내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니볼]에서의 빌리 빈의 행동이 딱 그런 조롱을 받기에 알맞은 겁니다. 참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이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머니볼]은 스포츠 영화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이나믹한 스포츠 경기 장면을 최대한 자제합니다. 그렇다고 빌리 빈이 내세운 '머니볼' 이론이 딱히 제 마음에 와닿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사랑합니다. 왜냐고요? 저는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네이버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는 바람에 관뒀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저는 판타지 게임(네이버 서비스명은 마이리그)의 광적으로 빠졌었습니다. 판타지 게임은 자신이 구단주인 것처럼 실제 선수들을 연봉 총액에 맞춰 영입하고 그 선수들의 경기 성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선수를 영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당일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무조건 잘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아닌 그 선수의 상대 전적, 현재 팀의 분위기, 선수 개인의 컨디션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판타지 게임을 위해서 매일 엑셀 파일로 선수들의 성적을 정리했고, 그러한 엑셀 파일은 차곡 차곡 쌓이며 거대한 베이터 베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베이터 베이스를 토대로 선수들의 당일 점수를 예상하고 영입하면 어느정도 좋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누구랑 닮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빌리 빈에게 '머니볼' 이론을 전파한 피터 브랜드의 그것과 비슷하죠? 선수들의 각종 데이타를 통해 저평가되어 있는 선수를 찾아내어 영입하는 피터 브랜드에게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구는 저런 숫자 놀음이 아니라고... 무의미한 숫자 나열보다 오랜 기간 야구계에 몸 담은 자신들의 감을 믿으라고...

어쩌면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판타지 게임을 하는 동안 느낀 것은 그런 개인적인 감으로 베팅을 했다가 망한 게이머를 수두룩하게 봐왔다는 것입니다.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데이타가 정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개인의 감보다는 정확하다는 것을 저는 판타지 게임을 통해 터득했습니다.

제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머니볼' 이론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모두들 개인의 감으로 선수를 판단하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는 정확한 데이타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판단한 것이죠.

영화는 마지막 자막으로 보스턴 레드삭스가 빌리 빈의 '머니볼' 이론을 받아 들인 결과 2004년에 우승하면서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는 자막으로 빌리 빈의 모험이 성공했음을 선언합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자막에서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오랜 저주를 이기고 우승한 날의 감동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비록 감독의 경기 운영권을 침범하는 빌리 빈의 행동에는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야구 그 하나만으로 [머니볼]은 이렇듯 제게 인상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분명 베넷 밀러 감독은 [머니볼]이 야구영화가 아닌

빌리 빈에게 대한 철저한 전기 영화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 야구를 사랑하는 내겐 빌리 빈은 안보이고 야구만 보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