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병곤
주연 : 김하늘, 장근석, 류태준
개봉 : 2011년 11월 10일
관람 : 2011년 11월 13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난 김하늘의 로맨틱 코미디가 좋다.
회사 일에 치여서 주말도 포기하고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다른 부서 고참 직원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왜그리 이기적이신지 모두 외면하셨고, 결국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사원들과 함께 일하느라 이번 주말은 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팍팍 받아 버렸습니다.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일요일 저녁 6시쯤 퇴근하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들어가 뒹굴거리며 푹 쉬고 싶었지만 지금 현 기분 상태로 봐서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끊었던 소주를 다시 입에 댈 것 같아 구피를 꼬드겨 곧장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이번 주에 개봉한 두 편의 우리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 제가 고른 것은 [티끌모아 로맨스]였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너는 펫]의 롯데 시네마 예매권을 선물 받았기에 기왕 이렇게 된 거 [너는 펫]이나 보며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제가 [너는 펫]을 처음에 꺼렸던 이유는 '인간 펫'이라는 소재 때문입니다.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는 하지만 사람과 애완 동물은 엄연히 다른 법이거늘, [너는 펫]은 당당하게 남자 주인공인 장근석에게 '너는 펫이야!'라고 캐릭터를 부여한 것입니다. 같은 남자가 보기엔 상당히 꺼려지는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웃자고 만든 영화에 죽자고 달려들 생각은 없습니다. 남성연대(그런 단체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음)가 법원에 [너는 펫]의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정치인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소설 '도가니'와 영화 [도가니]의 관계자도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최악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주연이 김하늘입니다. 최근 주연을 맡은 [블라인드]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하긴 했지만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로맨틱 코미디들이었고, 저는 그런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를 좋으합니다. 특히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그녀를 믿지 마세요], [7급 공무원]은 정말 유쾌하게 웃으면서 본 기억이 납니다.
자! 즐길 준비는 끝이 났습니다. 소재가 꺼려지지만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니 수위 조절은 적절해 보이고, 감하늘이 주연을 맡은 영화인 만큼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된 듯 보였습니다. 이제 저는 영화를 보고 아무 생각없이 깔깔되고 웃으며 스트레스만 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왜 펫이 되었지? 그녀는 왜 펫을 키우는 거야?
아무리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저는 영화를 즐길 수 없습니다. [너는 펫] 역시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중요한데, 강인호(장근석)가 왜 지은이(김하늘)의 펫이 되기로 결심했는지, 지은이는 왜 강인호를 펫으로 받아들였는지, 이해시키는 것이 제게는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본 사항이었던 것입니다.
캐릭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따위를 원한 것은 아닙니다. 강인호가 촉망받는 발레리노였다가 실수로 파트너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녀의 발레 인생이 막을 내렸고, 그래서 남녀 관계에 대해서 두려워한다는 동료 무용수의 증언만으로 강인호의 캐릭터 설명은 충분했습니다. 지은이의 경우는 너무 완벽한 탓에 애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는 오프닝씬의 짧은 장면들로 역시 지은이의 캐릭터는 충분히 설명되었습니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에서 저 역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캐릭터 설명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는 스스로 펫이 되기를 선택했고, 여자는 혼자 사는 집에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펫으로 들여보내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을 제쳐두고라고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보는 제가 그들의 그런 유별난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집에 주인도 아닌 주인의 동생에게 덜컥 6개월치의 집세를 주고 눌러 앉은 강인호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강인호가 펫 역할을 해야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남녀 관계를 두려워 한다는 그가 지은이에게 매달리는 이유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은이인데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지만 그 탓에 애인에겐 '네가 부담스러워'라는 억울한 이유로 번번히 헤어지게 되는 그녀. 그러한 상황에서 어린 시절 키웠던 개 '모모'를 그리워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인 강인호를 펫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집에서 쫓아낼 정도의 까칠함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강인호의 밥을 챙겨주고, 씻겨주고, 언제 늑대로 변할지도 모를 위험 상황을 감수하며 그를 받아들입니다.
[너는 펫]은 이 모든 상황을 장근석의 매력으로 메꿔 나갑니다. 남자 배우에겐 보기 드문 귀여움을 가진 그는 관객들에게 '너희도 날 펫으로 키우고 싶지 않니?'라며 무한 애교를 피우며 이 영화의 부족한 설명을 메꾸려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제겐 그의 애교가 먹히지 않아 문제였습니다.
현대인이 펫을 키우는 이유?
저는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지 않습니다. 제 여동생과 어머니가 키우시는데 그래서 어머니 집에 가면 그 놈의 강아지 때문에 귀찮아 죽을 지경입니다. 도대체 내 몸 챙기기도 벅찬데 왜 애완 동물까지 키워서 챙겨줘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집을 떠났고, 회사 일이 바쁘다며 자주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외로워 강아지를 키우신다고... 그렇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이죠.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저는 자주 봅니다. 인간 관계에 서투르고, 그래서 소외된 그들은 외롭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셈이죠.
애완 동물은 그렇게 여러가지로 외로운 사람들에겐 최적의 존재입니다. 인간 관계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에 푹 빠진 아내에게 소외된 지은이의 아버지가 그러합니다. 하지만 지은이는? 여기에서 지은이의 선택에 대한 의문점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은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비록 애인은 없지만 그녀의 주위엔 친구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녀가 귀찮아할 정도로... 회사 생활에서 까칠하다고 소외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회사라는 곳이 소외되었다고 해서 한가하고 외로운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고 바쁜 곳이죠.
결국 지은이에게 펫이 필요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나이가 차도록 이런 저런 이유로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에겐 자신이 부담스럽다는 억울한 이유로 떠나지 않을 남자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강인호는 그런 지은이가 원하는 펫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걸까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온 지은이에게 먹이달라고 조르고, 씻겨달라, 놀아달라 투정만 부립니다. 지은이에게 찾아온 첫사랑 차우성(류태준)과의 관계에 방해만 되는 강인호. 지은이는 제가 어머니 집의 강아지를 귀찮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인호를 귀찮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습니다.
강인호에게 펫으로서 지켜야할 의무를 한 뭉퉁이 주지만 강인호가 그걸 지키는 꼴을 본 적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강인호와 함께 있는 이유는 펫이기 때문이 아닌 언제부턴가 사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할텐데, [너는 펫]은 그런 지은이와 강인호의 러브 라인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러브 라인 속에서 왜 지은이는 저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강인호와 함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저는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들은 좋아하더라.
인간 펫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저럴 것이라면 뭐하러 인간 펫이라는 소재를 꺼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형적인 마무리 속에 영화가 끝나고 저는 저와 마찬가지로 다른 관객들도 지루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여성 관객들은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여성 관객은 함께 영화를 본 남자 친구에게 '손!'이라면 지은이가 강인호에게 했던 것을 따라하며 깔깔거리며 웃더군요. '나도 저런 귀여운 인간 펫을 키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여성 분도 있었구요.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남성 관객들의 반응입니다. 대부분 무표정이었습니다. 특히 여자 친구가 '손!'이라며 장난으로 강아지 취급했던 그 남성 분은 아무 말 없이 썩소를 날리셨습니다. 그 현장을 보며 저는 '아! [너는 펫]에 대해서는 남성 관객과 여성 관객의 감상평이 서로 다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구피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로맨틱 코미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투덜거리며 극장에 쫓아온 구피. 제가 롯데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거 하나 사라는 선물 공세로 억지로 극장에 끌고 왔기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게 뭐야? 재미도 없고 시간만 낭비했잖아.'라고 항변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재미있네.'라며 오히려 웃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도 장근석처럼 귀여운 펫이 있으면 키우고 싶네.'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애완동물이라면 저보다 훨씬 질색을 하는 구피가 말입니다.(그러면서 회사에서 일하느라 저녁 식사도 못한 남편의 저녁은 안챙겨줍니다. 구피는 펫 키울 생각말고, 남편이나 챙겨라! 챙겨라!)
아마도 장근석의 귀여운 매력이 여성 관객들에게는 통했나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부족한 캐릭터 설명, 상황 설명을 모두 장근석의 매력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처럼 재미없고, 공감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지만, 장근석의 매력이 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아무래도 남성 관객인 제게 같은 남성인 장근석의 매력이 통하기 어려웠겠지만, 여성 관객의 경우는 신한류스타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는 장근석이 매력이 충분히 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너는 펫]은 남녀 모두 재미있게 보기에는 어려운, 여성들만 즐길 수 있는 반쪽 로맨틱 코미디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너는 펫'이라고 단정지어도 그는 인간일 뿐이다.
결국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인간 관계에서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장근석처럼 귀여운 인간 펫을 키우고 싶다고 열망하는 여성 분들이여!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그 복잡한 인간 관계를 극복할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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