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신들의 전쟁] - 성인을 위한 그리스 로마 신화

쭈니-1 2011. 11. 10. 11:19

 

 

감독 : 타셈 싱

주연 : 헨리 카빌, 미키 루크, 프리다 핀토, 루크 에반스

개봉 : 2011년 11월 10일

관람 : 2011년 11월 9일

등급 : 18세 이상

 

 

요즘 나는 웅이와 함께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있다.

 

몇 달전, 구피가 책을 좋아하는 웅이를 위해 토마스 불핀치가 쓴 만화판 '그리스 로마 신화' 전집을 사왔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었기에 가끔 웅이와 함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곤 합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도 참 재미있네요.

신 중의 신 제우스를 비롯하여 여러 신들과 인간 세계의 영웅들의 이야기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신을 능가하는 영웅의 멋진 활약과 그들의 비극적 운명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중 한 명인 테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신들의 전쟁]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기자기한 만화가 아닌 거대한 스크린에서의 웅장한 신화의 위용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은 18세 이상 관람가네요.

비록 웅이와 함께 보겠다는 계획은 무너졌지만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려 구피와 함께 3D로 관람했습니다. 웬만하면 3D로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신들의 전쟁]만큼은 3D로 봐야 할 것 같은 괜한 의무감이 들더라고요.

 

영화관람료에 민감한 구피는 [신들의 전쟁]을 3D로 보자는 제게 '너무 비싸잖아.'라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을 저보다 더 많이 기대를 했던 구피의 반항은 그리 거세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신들의 전쟁]의 3D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LG 3D TV 광고가 먼저 있었는데, 솔직히 [신들의 전쟁]의 3D보다 LG 3D TV 광고의 3D가 더 놀라웠습니다.(당장이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눈에 보이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3D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타셈 싱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미의 일부분으로서의 3D 효과는 탁월했습니다.

'우와! 화면이 튀어 나올 것 같아.'라는 탄성이 나올만한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신들의 전쟁]의 3D는 영화의 일부분으로서 튀지 않는 질감을 자랑합니다. 뭐 근래 봤던 3D 영화 중에서는 [아바타]를 제외하고는 [생텀]과 함께 그래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던 테세우스가 아니었다.

 

자! 이제 부수적인 [신들의 전쟁]의 3D 효과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신들의 전쟁]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앗!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저런 부분이 있던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제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두 읽고,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의 주인공인 테세우스(헨리 카빌)라면 미궁에서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영웅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하이페리온(미키 루크) 왕에 맞서 인간의 운명을 쥔 거대한 전쟁을 이끈 영웅이라는 설정은 제게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미노타우르스와의 혈투씬이 있는데 신화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테세우스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크레타섬에서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일화가 가장 유명하며, 아버지를 이어 아테네의 왕이 된 후에는  여러 나라를 정복했지만 특히 여인족 아마존의 나라를 정복한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하이페리온 왕과의 전쟁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이페리온은? 영화를 보면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하이페리온이라는 이름을 기억한 이유는 저희 집 근처에 있는 목동 하이페리온 아파트 때문이었다는... ^^)

신들의 외면 속에 처자식을 잃고 신에 대한 복수를 위해 타이탄족을 부활시키려는 영화 속 하이페리온 왕과는 달리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하이페리온은 인간이 아닌 타이탄 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우스 이전에 타이탄 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죠. 하지만 타이탄 족인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태어난 제우스가 포세이돈, 하데스 등 형제 자매들과 함께 타이탄 족을 몰아내고 최고의 신이 됩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제우스는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의 종족을 학살한 셈이 되는 것이죠.

이처럼 [신들의 전쟁]은 제가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처럼 테세우스는 사생아도 아닐 뿐더러, 하이페리온은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캐릭터만 빌렸을 뿐,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잔인한 전쟁

 

[신들의 전쟁]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바꾼 것은 영웅들의 모험담을 담은 이야기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신들의 전쟁]의 개봉 소식을 듣고 웅이와 함께 볼 생각을 했을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신화라는 것 자체가 재미난 이야기거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신들의 전쟁]은 그런 제 인식도 바꿔 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만큼이나 잔인합니다. 처음 타이탄 족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비춰주며 영화가 시작되는데 상당히 섬뜩한 비주얼을 자랑합니다.(저는 타이탄 족의 갑자기 눈을 번쩍 뜰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외에도 하이페리온 왕의 거처에서 보여준 쇠로 만든 황소 감옥은 정말 끔찍했는데 저 장면을 어디에서 봤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레드 라이딩 후드]에서 이미 등장했더군요. 황소 감옥 외에도 하이페리온 왕의 거처는 아마 생지옥이 있다면 저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 장면도 마찬가지인데 비슷한 소재를 가진 [트로이]의 전쟁 장면은 웅장하고, 멋지며, 비장미가 넘치는 반면 [신들의 전쟁]의 전쟁 장면은 사지가 절단되고, 머리가 박살나며, 피가 난무합니다. 특히 제가 3D로 봐서인지 그 잔혹함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생생했습니다.

 

[신들의 전쟁]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라서 많은 분들이 야한 노출씬에 대한 기대가 있는 듯 한데(실제로 네이버에 '신들의 전쟁'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신들의 전쟁 노출'이 뜹니다.) 야한 장면을 기대하신 분이라면 실망하실 듯.

이 영화에서 노출씬은 테세우스와 운명의 예지자인 페드라(프리다 핀토)의 첫날밤 장면 뿐인데, [슬럼독 밀리어네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프리다 핀토의 전라 뒷모습만 잠시 나올 뿐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이유는 야하기 때문이 아닌 잔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셔야 할듯...(괜히 '신들의 전쟁 노출'로 검색하지 마세요. 헛수고입니다. ^^)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끔찍한 전쟁 영화를 본 것 이상의 영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들의 전쟁 외에도 영화의 후반부 타이탄 족과 신들이 벌이는 전투 역시 끔찍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신들의 우아함을 버리고 서로의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혈투를 벌이는 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인을 위한 그리스 로마 신화

 

제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너무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고 지금 현재 웅이와 함께 읽고 있는 아동용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지금까지 영화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자녀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판타지 영화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그러한 예는 신 중의 신이라는 제우스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나는데 [타이탄]에서의 제우스는 수염이 덥스룩한 리암 니슨이 연기했었고,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경우는 숀 빈이 연기했었습니다. 이렇듯 제우스는 어느 정도 나이와 무게감이 있는 중량급 배우들이 주로 맡았었습니다. 신 중의 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죠.

하지만 [신들의 전쟁]의 제우스는 의외로 루크 에반스라는 비교적 젊은 배우에게 맡겨 졌습니다. 제겐 [삼총사 3D]의 아라미스로 익숙한 배우인데 그의 반듯한 이미지는 분명 제가 알고 있는 제우스의 이미지와는 상반되었습니다. 이렇듯 타셈 싱 감독은 아예 대놓고 이전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판에 박힌 이미지를 깨부쉽니다.

 

그렇게 판에 박힌 이미지를 깬 제우스는 타이탄 족의 전쟁에서 번개를 이용해서 신답게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닌 온 몸으로 적과 마주하며 치열하게 피튀기는 싸움을 합니다.

애초에 타셈 싱이 감독을 맡는다고 했을 때 저는 약간 예상했었습니다.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10년전에 봤던 [더 셀]의 그 압도적인 영상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셈 싱 감독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선입견을 파괴했고, 더 강렬한 영상 충격을 안겨줬으며, 더 깊은 인상을 남기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타셈 싱의 모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아이들의 전유물, 혹은 자녀들의 교육용으로만 인식되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성인이 된 저를 위한 섬뜩한 영화로 만들어낸 타셈 싱 감독의 모험에 일단 저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신들의 전쟁]은 적당히 [300]과 [트로이]를 합쳐 놓은 듯한 판타지 영화일 것이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트로이]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300]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잔혹한 영상 충격을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아직 [신들의 전쟁]을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마음 가짐을 단단히 하고 보셔야 할듯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신들은 인간 세계에 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 세계에 관여하는 그 순간, 이 영화의 영상 미학은 더욱 막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