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앤드류 니콜
주연 :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만다 세이프리드, 킬리언 머피
개봉 : 2011년 10월 27일
관람 : 2011년 10월 30일
등급 : 12세 이상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신가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30시간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새롭게 늘어난 6시간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살 수 있을테니까요.
또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루는 지구가 자전을 하는 시간이고,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시간이라면, 혹시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은 아닐까? 라는. 하루와 1년이 금방 지나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빨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2011년 새해가 되었다고 TV에서 떠들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느새 10월이 지나가고 이제 2011년도 달랑 2개월만 남아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갈 수 있는것이죠? 저는 천천히 걷고 있는데 시간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전날 회식을 하느라 과음한 탓에 최악의 컨디션으로 맞이한 지난 금요일. 저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빨리 퇴근해서 숙취도 해소하고 주말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새 그런 주말은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다시 월요일입니다. 내 주말은 어디로 간거지? 라고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별로 한 것도 없이 그토록 기다렸던 주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금요일엔 퇴근 후 웅이와 놀아주고, 회식하느라 늦은 구피를 기다리며 TV를 봤고, 토요일엔 웅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잠시 외출했었고, 일요일엔 웅이와 킨텍스의 로봇 대전 보러갔다가 사촌의 결혼식에 갔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요일 저녁. 녹초가 된 저와 구피가 쇼파에 함께 뒹굴고 있었습니다.
주말동안 영화 한 편은 봐야겠다고 다짐했기에 피곤은 했지만 구피를 끌고 [인 타임]을 보러 갔습니다. 시간이 화페인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인 타임]. 이 영화를 보며 앤드류 니콜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말하셨지. 시간이 돈이라고...
처음 [인 타임]의 영화 정보를 접했을 때 저는 제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바로 이 영화다.'라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제가 시간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던, 혹은 상상했던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25살에서 노화가 멈추고 이후 잔여 1년이 제공됩니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합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인 셈이죠.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리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모든 시스템이 일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영생을 누리기 위해 대다수인 가난한 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는 사실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인 빈부의 격차를 돈이 아닌 시간으로 재해석한, 앤드류 니콜 감독의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시간을 빼앗아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달콤한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생의 가장 화려한 때인 25살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도 그러한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가난한 자들은 환호를 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늙지 않아도 되고 젊음을 간직한채 살 수 있을테니까. 시간이야 열심히 일하면 벌 수 있을테니까. 그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불리한 이 시스템을 환호하며 받아들였을 것입니다.(마치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환호하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것처럼.)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선 힘 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실체입니다. 결국 힘 없는 자들은 물가상승, 고용불안이라는 덫에 갇히게 되고, [인 타임]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채 심장마비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니까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이라고요? 아뇨.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가진 자들은 금고에 수 많은 돈을 묶어두고 없는 자들을 더욱 착취하죠. 앤드류 니콜 감독은 그런 자본주의의 실체를 시간이 화폐인 가까운 미래라는 SF적 설정을 통해 통쾌하게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윌 살라스는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다.
[인 타임]은 초반까지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매력적이고, 시사적이면서, SF적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채, 관객에게 적당히 즐기면서 생각할 수 있는 소재를 던져준 것입니다.
윌 살라스는 우연히 헤밀턴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100년이라는 지금껏 한번도 가진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물려 받고 시간 시스템의 비밀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살해자 누명을 쓰며 쫓기게 됩니다. 전형적인 스릴러의 구조입니다.
처음에 윌은 어머니와 함께 이 시간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고작 몇 초의 시간 때문에 눈 앞에서 심장마비로 죽자 윌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가진 자들이 만든 이 시스템을 부셔버리고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겠다고... 여기에 윌을 쫓는 최강의 타임키퍼 레온(킬리언 모피)가 가세하면서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높아집니다. 이제 [인 타임]은 열심히 달려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부터 윌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집니다. 그는 가진 자들이 사는 뉴 그리니치에 가서 고급 호텔의 스위트 홈에 묶고, 도박장에 가서 자신의 생명을 올인하는 무모함을 보이며, 무려 59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한 스포츠카를 덜컥 구매합니다.
윌이 뉴 그리니치에 가서 그들의 시스템을 파괴할 정밀한 계획을 세울 것이라 기대한 저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이 당황스러웠습니다.
특히 도박장 장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그러한 그의 막가파식 행동은 마치 윌에게 생명을 물려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헤밀턴의 허무주의적 결단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헤밀턴은 윌에게 자신의 시간을 물려주며 '내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주게'라고 부탁을 했지만 윌은 헤밀턴의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윌이 의도적으로 뉴 그리니치의 시간을 통제하는 와이스 은행의 총재에게 접근하기 위해 도박장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면 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이 영화엔 그 어디에도 윌이 뉴 그리니치의 시간 시스템을 붕괴시킬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윌의 행동은 그저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한 것이죠.
내가 원한 것은 [보니와 클라이드]가 아니었다.
그래도 저는 기다렸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윌의 짧은 방황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레온의 추적으로 윌은 막다른 길에 몰리고 결국 와이스 은행 총재의 외동딸인 실비아(아만다 사이프리드)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에 와서 저는 이제 기대했던 윌의 활약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제 기대에서 벗어납니다. 뉴 그리니치의 시간 시스템의 비밀을 벗기고, 붕괴시킬 것이라 기대했던 윌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실비아와 의적 놀이에 푹 빠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뉴 그리니치 사람들과 다른 윌에게 호감을 느꼈던 실비아 역시 윌의 의적 놀이에 적극 가담을 하는데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미국의 대공항 시대의 은행 강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니와 클라이드]와 닮아 있습니다.
은행을 터는 것이 그리 쉬울리도 없고, 그들이 타임키퍼의 추적을 매번 따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인 타임]은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의적 놀이에 빠진 윌과 실비아의 활약상을 단편적으로 잡는데 주력합니다. 아마도 [인 타임]은 윌과 실비아의 의적 놀이에 의한 통쾌함을 영화적 재미로 내세우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932년 보니와 클라이드도 그들의 의적 생활을 길게 끌고 가지 못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100년도 더 되어보이는 시대의 윌과 실비아는 거의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은행을 털고, 급기야는 은행 총재의 개인 금고까지 너무 쉽게 텁니다. 시대는 흘러갔어도 경찰력은 후퇴한 것일까요?
마지막엔 은행 총재에게 100만년의 시간을 훔치지만 그걸 가난한 자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시간이 모자라 죽을 위기까지 겪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라고는 타임키퍼도, 그리고 윌과 실비아도 참 대책없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의적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외면할 수 없는 치부를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한 SF로 변형시킨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고작 낙천적이고 느슨한 의적 놀음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니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은 1997년 [가타카]라는 SF영화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감독에 입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앤드류 니콜 감독의 영화는 [가타카]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인 타임]은? 아이디어만 놓고 본다면 제 2의 [가타카], 아니 오히려 [가타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농후했던 영화였지만 앤드류 니콜 감독은 스스로 [가타카]와 차별을 두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가타카]이후 14년이 흘렀습니다. 그가 더 이상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서민들에게 시간은, 돈은 항상 부족하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진 자들이 사회에 환원하기를 기대해야 하나?
아니며 [인 타임]처럼 은행이라고 털어야 하나?
영화를 보니 속이 후련하긴 커녕 더욱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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