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완득이] - 관객을 행복하게 할줄 아는 영화

쭈니-1 2011. 10. 25. 10:42

 

 

감독 : 이한

주연 : 김윤석, 유아인, 박수영, 김상호, 박효주

개봉 : 2011년 10월 20일

관람 : 2011년 10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몸은 피곤해도 완득이를 만나러 가다.

 

토요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쭈꾸미 낚시를 다녀왔고, 일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안동의 직원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주말 동안 쉬지 않고 이렇게 돌아다녔더니 월요일 아침에는 온 몸이 뻑적지근한 것이 컨디션이 영 좋지 않더군요.

하지만 지난 주 내내 바빠다는 이유로 극장에 가지 못했더니 보고 싶은 영화는 산더미이고, 오는 목요일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도 기대작들이 수두룩하여 결국 퇴근하고 영화보러 가자고 구피를 꼬드겼습니다.

일요일에 저와 함께 안동에 가는 바람에 저처럼 월요일부터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는 구피. 하지만 저는 영화 볼 생각을 하면 없던 기운도 불끈 솟는데, 구피는 저와는 정 반대 체질이라 영화 보러가자는 제 칭얼거림에 울상을 먼저 짓더군요. 그래도 전 [완득이]만큼은 구피와 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고나면 행복해지는 영화라는 소문을 일찌감치 들었기 때문이죠.

 

구피를 끌고 극장으로 향하기 위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식사 준비하고, 밥 먹자마자 설겆이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싹 버리며 구피의 승낙을 애처롭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런 제 정성(?)이 통했는지 구피도 '내가 졌다'라는 표정으로  '그래, 영화보러 가자! 가!'라고 따라 나서더군요.

그렇게해서 어거지로 구피를 끌고 [완득이]를 보러 갔기에 저는 [완득이]가 소문처럼 재미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역시나 예상대로 김윤석과 유아인의 멋진 연기가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동안 저는 옆 자리에 앉은 구피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구피도 빵빵 터지며 영화 내내 유쾌하게 웃더군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김윤석과 유아인이 연기 잘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라고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선 [완득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이 영화 재미의 5할을 차지한다.

 

솔직히 저는 [완득이]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최고라고는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역시 유쾌하게 웃으며 봤었는데 그 원동력은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김윤석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가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줄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타짜], [전우치], [황해] 등에서 워낙 강렬한 연기를 했기에 [완득이]의 조금은 평범한 선생님 역할이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동주 선생은 입만 열면 막말이고, 학생들 공부시키는데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통속적인 관념으로 따진다면 나쁜 선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주입식 교육에 시간을 바치는, 학생들 성적 올리는 좋은(?) 선생과는 다른 동주 선생의 훈훈한 모습은 제 기억 속의 선생님과도 일치했습니다.

그의 연기를 보고있자면 그가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가 가르치는 교실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닌 친구처럼 저를 대해주시던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만약 김윤석만 연기를 잘했다며 [완득이]는 김윤석의 원맨쇼로 영화의 재미가 현저하게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완득이를 연기한 유아인의 연기 또한 김윤석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사실 저는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잘 모릅니다. 그가 출연한 [좋지아니한가]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보기는 했지만 그의 연기가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득이]에서 유아인은 분명 멋진 연기를 펼칩니다.

보통 영화에서의 반항아는 굉장히 비현실적입니다. 개인적 아픔은 물론이고,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어깨에 힘은 왜 또 그리 들어가 있는지, 그런 영화들을 보다보면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현실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완득이는 다릅니다. 마치 제 학창시절에, 혹은 제 주위에 한번쯤은 봐왔음직한 적당히 어슬픈 반항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픔, 그의 반항, 그의 행동이 전부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기대이상의 연기를 펼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발견한 것 같아 괜시리 뿌듯했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조연의 적당한 배치

 

[완득이]는 이렇게 너무나도 현실적인 캐릭터 안에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을 과하지 않게 풀어냅니다. 그래서인지 극적인 장면이 부족합니다. 극적인 장면이 부족한 것은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단점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데 [완득이]는 그러한 단점을 잘도 피해갑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극적 재미는 떨어지지만 현실적 재미를 갖다 붙인 김윤석과 유아인 연기의 힘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자칫 지루해지기 쉬웠던 영화의 중간 중간을 잘 커버해준 조연들의 맛깔스러운 양념 연기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특히 옆집 아저씨 연기를 했던 김상호는 한마디 한마디에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민감한 성격 탓에 조금만 시끄러워도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는 옆집 아저씨 캐릭터는 자칫 잘못하면 뜬금없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김상호라는 명품 조연을 만남으로서 새로운 에피소드로 힘을 얻으며 관객을 웃기게 했습니다.

옆집 아저씨의 동생인 호정 역의 박효주도 마찬가지인데 정말 이웃집에서 본 듯한 털털한 노처녀가 바로 제 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제가 한 첫 마디는 '어쩜 저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모아 놓았을까?' 였답니다. 

 

동주 선생이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완득이의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설정 때문에 [완득이]에는 외국인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방가? 방가!]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연기 잘하는 외국인 배우들이 참 많습니다. 완득이 엄마를 연기한 필리핀 배우 쟈스민을 비롯하여 완득이를 킥복싱의 세계로 안내하는 불법 체류자 역의 수디프 바네르지까지...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재미 뿐만 아니라 영화의 메세지 전달에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들의 연기를 보며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불법 체류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 영화의 따뜻한 메시지는 굳이 극적인 영화적 장치가 없더라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외국인 배우만으로도 제게 잘 전달된 셈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나를 행복하게 하다.

 

언제나 혼자였던 완득이와 윤하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옆집 무협 소설가인 털털한 노처녀 호정과 사랑에 빠진 동주 선생의 이야기까지... [완득이]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대로 실현해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곱추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완득이 아버지의 아픔, 불법 체류자에게 노동 착취를 하는 악덕 사장들의 횡포, 출생의 비밀을 안 완득이의 거친 반항 등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끌고갈 여지가 충분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한 감독은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잔잔한 스토리 라인을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력과 웃음이 저절로 묻어 나오는 에피소드를 통해 자극적이지 않은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 저도, 구피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좀 더 스토리 라인 저체를 극적으로 끌고 가고, 캐릭터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간 다음 해피엔딩을 이끌어 냈다면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며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에 가서야 미소를 지었겠죠.

[완득이]는 그 대신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한 미소를 띄게 만들고 마지막에도 극적 반전 없이 그러한 미소를 유지시키게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 내내 행복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습니다. 사실 전 극적인 전개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완득이]를 보고나니 시종일관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영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한 감독의 영화인 [연애소설], [청춘만화], [내 사랑]을 쭈욱 봤지만 그는 정말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타득한 감독임에 분명합니다.

 

 

영화를 보며 행복함이라는 감정을 내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완득이]는 1시간 45분 내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