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마징카이저] - 내가 바로 지옥이다.

쭈니-1 2011. 10. 27. 11:25

 

 

감독 : 카와고에 쥰

더빙 : 아사누마 신타로, 히노 사토시, 하야마 사오리

개봉 : 2011년 10월 27일

관람 : 2011년 10월 26일

등급 : 12세 관람가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을 간직하고...

 

전 어린 시절은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에 푹 빠져 살았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사람이 조종하는 거대 로봇이 악당을 쳐부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물론 우리 토종 로봇인 [로보트 태권 V]도 있었지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었던 [로보트 태권 V]는 공휴일 TV 특선 만화로만 볼 수 있었으니 평일 저녁에는 언제나 이 일본산 TV  애니메이션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일까요? 저는 결혼 후에도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모두 DVD로 소장하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마장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싸구려 피규어를 구입했고, '마징가 Z'의 최종 진화형이라는 '마징카이저'의 위용에 반해서 거액의 피규어(내 기준으로)를 덜컥 충동 구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제게 [마징카이저]의 국내 개봉 소식은 놀라운 사건일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웅이와 함께 [마징카이저]를 볼 생각에 웅이에게 [마징카이저]의 예고편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DVD를 감상했고, 제가 구입한 '마징카이저' 피규어에 열광하며 함께 갖고 놀았던 웅이는 [마징카이저]의 예고편을 유심히 보더니 '아빠, 이건 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한마디하더군요.(웅이는 바른생활 사나이입니다.)

 

하긴 제가 예고편을 봐도 이번에 개봉하는 [마징카이저]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저처럼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을 간직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렇게 웅이와 함께 [마징카이저]를 보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그냥 아무런 기대없이 영화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마징카이저] 시사회 이벤트를 신청했는데, 다음날 핸드폰 문자로 당첨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건 운명이다 싶더군요.

퇴근 후 웅이와 놀아주는 것을 포기하고 구피와 함께 [마징카이저]의 시사회 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을 가슴에 품은채 [마징카이저]가 얼마나 내 추억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지 기대를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저는 2003년에 만들어진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을 길거리 싸구려 DVD로 구매해서 봤습니다. [마징가 Z]와 교묘하게 이어지며 비장미와 잔인함이 가득했던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은 새로운 시대의 [마징가 Z]를 창조해 냈습니다. 그렇기에 [마징카이저]가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과 어느 정도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일 것이라 막연히 기대를 한 것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당혹스러웠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여기에서 당혹스러웠다는 것은 [마징카이저]가 실망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로 당혹스러웠는데 이제부터 그러한 당혹스러움을 하나씩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당혹스러움... 극장을 가득 채운 어린 관객들

 

퇴근 후 정말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서 종로의 피카디리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해서 시사회 표를 받은 구피와 칼국수를 먹고 영화 시작 시간인 8시가 다 되어서야 상영관에 입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영관 안에 들어가자 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극장 안에 대충 봐도 초등학생, 아니 그 보다 어린 관객들이 관객석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입니다. 12세 관람가라는 것은 초등학교 이하 어린 아이들은 보기에는 적당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예고편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저와 함께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을 보며 열광했던 웅이가 예고편만 보고도 자기가 볼 영화는 아니라고 거부했을까요.

분명 맥스무비 시사회에 저런 어린 아이들이 응모해서 당첨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부분 어른들이 당첨되고 나서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녀들과 함께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저는 그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예고편은 보셨냐고? 이 영화의 상영 등급은 알고 오셨냐고? 저도 영화가 좋아서 웅이를 끌고 극장에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최소한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볼 때는 이 영화가 웅이가 보기에 적합한지 예고편도 보고(평소엔 예고편을 잘 안봅니다.), 영화의 정보도 꼼꼼히 살핍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한 어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구피의 자리는 3개의 좌석이 붙어 있는 구석진 자리였는데 놀랍게도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혼자 앉아 있더군요. 그리고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아이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가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시사회표를 받으며 서로 자리가 떨어진 듯 했습니다.

구피는 그 여자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저보고 여자 아이의 아버지와 자리를 바꿔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피와 떨어져 저 혼자 따로 앉아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따로 앉은 것이 아니고, 만약 그 여자 아이 혼자 [마징카이저]를 봤다면 얼마나 무서워했을까요?

이 영화는 시작부터 전쟁에 미친 전쟁광들이 로봇을 타고 서로 찌르고, 쏘는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로봇을 탓다고는 하지만 로봇이 부숴질때마다 시뻘건 피들이 분수처럼 쏟아집니다. 게다가 여성에 대한 성적 희롱이 수시로 나오고, 주인공인 카이도와 마가미는 정의를 위해서가 아닌 또 다른 전쟁광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들은 악당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바로 지옥이다'라고... 그리고 악당 로봇들을 찌르고, 쏘고, 짓밟고, 찢어 죽입니다.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와는 그 수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고,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과 비교해서도 잔인함의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말 그대로 성인을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 된 것이죠. 저는 영화를 본 후 이 영화를 본 어린 관객들의 후유증이 걱정되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이라는 지옥을 경험한 그들.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몬 부모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제발 아무리 귀찮아도 어떤 영화인지는 알고 아이들을 극장에 데려가세요.

 

 

두번째 당혹스러움...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은 어디로?

 

아마도 이 영화를 기대하고 간 성인 관객 대부분이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마징카이저]가 어느 정도는 그러한 추억에 부흥할 것이라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마징카이저]는 전혀 케케묵인 추억 따위를 배려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독립적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짧게 소개하자면... 태평양 너머의 기계도라는 섬에서 세 종족이 전쟁을 벌이는 사이 지구의 중력장이 파괴되어 지구 멸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인간들은 특공대를 파견하여 중력의 파멸을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특공대 대원들은 섬에 집입하는 도중 유우키를 제외하고는 전멸하고 유우키는 먼저 섬에 와있었던  카이도, 마가미와 함께 임무 수행에 나섭니다.

일단 이 영화는 기계도를 마치 판타지의 공간처럼 현실 세계와는 다른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키바와 가란, 그리고 여성 종족인 팔능곽도 판타지의 새로운 종족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키바는 거침없는 폭주족 이미지이고, 가란은 일본의 전통적인 무사도를 앞세우고 있으며, 팔능곽의 여성 종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복장을 한채 신비로운 초능력을 선보입니다.

 

애초에 가부토 코지(쇠돌이)가 나오길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마징가 Z]의 악당인 헬 박사나 아슈라 남작, 혹은 미케네 제국이 원흉 정도로 등장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키바도, 가란도, 그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키바는 그저 단순한 미치광이 전쟁광에 불과했고, 가란은 무사도 정신을 앞세운 카리스마가 돋보이지만 고작 여자 하나때문에 자신의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집니다.

[마징카이저]에서 그나마 예전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장면은 아주 짧막한 본부 장면 뿐인데, 그 장면에서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에서 코믹한 부분을 담당했던 보스를 닮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정말 딱 그 장면 뿐입니다.

만약 예전의 [마징가 Z],[그레이트 마징가]의 추억의 부수러기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 성인 관객이라면 [마징카이저]는 분명 당혹스러운 영화였음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철저하게 전작들과 동떨어진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를 구성했는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추억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 저와 같은 성인 관객을 조금만 더 배려를 했다면 참 좋았을텐데...

 

 

세번째 당혹스러움... 대의명분? 그런건 없다. 그냥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다.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에는 대의명분이 있었습니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악의 군단을 막기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린 제겐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징카이저]는 그런 대의명분을 없앱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중력장이 파괴되어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막는 것이지만 '마징카이저'를 조종하는 카이도, 마가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전쟁광인 키바와 카이도는 마치 닮아 보입니다. 거대한 칼인 아참도로 적을 벨때마다 카이도의 표정은 희열로 뭉개집니다. 카이도와는 달리 조금은 차분해 보이는 마가미 역시 후분부에 가서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가란과의 전투에서 이성을 잃는 그의 모습은 분명 출생의 비밀이 있는 듯한데 영화는 속시원하게 그러한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지는 않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마지막에 자신의 생존의 이유를 깨닫고 다시 이성을 되찾는 마가미의 모습이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가 가졌던 대의명분은 어쩌면 선과 악, 흑과 백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분법적 논리라 촌스러울지 모릅니다. 그래도 편하긴 했습니다. 복잡한 것을 따질 필요없이 우리 편을 응원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마징카이저]는 그런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카이도와 마가미, 그리고 '마징카이저'마저도 선인지 악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캐릭터들을 파악하고 이해하기에 이 영화가 가진 8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추억을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마징카이저]는 꽤 멋진 로봇물이긴 합니다. 한 명의 파일럿이 조종했던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와는 달리 '마징카이저'는 카이도와 마가미라는 두 명의 파일럿이 조종을 합니다. 

카이도는 아참도라는 대형 검을 사용하고, 마가미는 브레스트리거라는 총으로 적을 제압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무기를 두 파일럿이 각자의 파트에 맞게 조종을 한다는 점은 분명 색달랐고, 그것을 재현한 영상은 분명 멋졌습니다.

그리고 '마징가 Z'와 '그레이트 마징가'에게 민폐만 끼치던 비너스 A, 아프로디테와는 달리 '마징카이저'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한 윙글 역시 멋졌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윙글의 일부분이 '마징카이저'와 결합하는 부분은 로봇 애니메이션에 빠진 이 철없는 성인 남성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마징카이저]는 분명 성인을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입니다.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성적인 부분도 상당 부분 노출되어 있습니다. 팔릉곽의 수장 아이라는 예지 능력을 발휘할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키바 일당은 팔릉곽을 공격하며 팔릉곽의 여종족을 자신의 성 노리개로 삼으려는 야심을 밝히기도 합니다. 아이들용, 절대아닙니다.

어른 관객이라면 예전 추억을 기대하지 말것이며, 새로운 추세에 맞게 이분법적인 선과 악 논리는 무시됩니다. 그래서 짧은 러닝 타임동안 [마징카이저]를 온전하게 즐기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뭐 그것을 감안하고 영화를 보신다면 [마징카이저]는 끔찍한 지옥도를 보여준 꽤 멋진 로봇 애니메이션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저와 함께 [마징카이저] 시사회에 참가하려고 했다가

제가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보지 못한 제 블친 404page님에게 바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