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리얼 스틸] - 몸집은 작아졌지만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다.

쭈니-1 2011. 10. 16. 08:00

 

 

감독 : 숀 레비

주연 : 휴 잭맨, 다코타 고요, 에반젤린 릴리

개봉 : 2011년 10월 12일

관람 : 2011년 10월 14일

등급 : 12세 이상

 

 

전혀 새롭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 새로운 영화.

 

구피가 웅이를 데리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저만 홀로 남겨두고 수원에 간 금요일 저녁. 사실 금요일 저녁에 수원까지 운전을 하려면 피곤함에 쩔어 주말내내 비실거릴 허약체질 남편을 걱정한 구피의 배려 덕분인데, 황금같은 금요일 저녁에 홀로 남은 저는 [리얼 스틸]을 보며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현재 관객들의 좋은 입소문 덕분에 화제의 영화 [도가니]를 밀어내고 할리우드 영화로는 오랜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리얼 스틸]은 하지만 따지고 보면 2011년식 [록키]입니다. 다시말해 그다지 새로운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죠.

단 [리얼 스틸]은 상당히 영특한 전략을 구축합니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 자체는 할리우드에서 마르고 닮도록 써먹은 [록키]식 스토리이지만 [트랜스포머]를 통해 대세가 된 로봇물을 살짝 입혀 놓음으로서 전혀 다른 영화로 발바꿈시킨 것입니다.

 

복싱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살과 살이 부딪히는 땀냄새나는 액션을 로봇이 주먹과 몸이 부딪히는 육중한 강철의 파괴음으로 대체시켜 로봇물에 대한 남성 관객의 로망을 충족시키고, 어린 아들에게 멋진 아버지가 되기 위한 주인공의 부성애를 부각시켜 관객의 감성을 자극시키며, 승부를 알 수 없는 마지막 로봇 복싱 경기를 통해 스포츠 영화의 다이나믹함마저 보여줍니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마력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올해 본 최고의 영화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매력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본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니 점점 [리얼 스틸]의 영특함에 의한 마력에서 풀려나며 '재미있긴 하지만 최고까지는 아니다.'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리얼 스틸]은 여운을 길게 끌고 갈 수 있는 명작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총사 3D]와 같은 킬링 타임용 영화와는 달리 영화를 보고나서 가슴이 뭉클함을 느낄 수 있는 근래 보기 드문 영화였습니다.

 

 

2011년식의 [록키]는 바로 이런 식이다.

 

[리얼 스틸]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전설적인 복싱 영화 [록키]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록키]는 상대 선수의 스파링 파트너를 해주며 근근히 먹고 살아가는 3류 복서 록키 발보아가 주인공입니다. 그런 그가 헤비급 챔피언의 타이틀 방어전 상대로 지목되고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기회임을 알게된 록키는 맹훈련을 돌입하게 됩니다. 드디어 시합날, 최강의 챔피언 아폴로는 이 무명의 복서인 록키를 1회 KO로 이겨버리겠다고 단언하지만 록키는 15회를 견뎌내고 결국 판정패를 당하지만 경기의 진정한 승자가 되어 관객의 박수 갈채를 받습니다.

혹시 [리얼 스틸]을 보신 분이 계시다면 '뭐야? [리얼 스틸]과 [록키]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잖아.'라고 느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복싱 선수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이 [록키]와 비슷합니다.

 

특히 찰리 켄튼(휴 잭맨)이라는 캐릭터는 록키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찰리는 챔피언 타이틀 도전 경기에서 열세에도 불구하고 멋진 경기를 펼치며 기대를 모았던 복싱 선수였습니다.  

찰리의 연인인 베일리(에반젤린 릴리)가 회상하는 찰리의 챔피언 타이틀 도전 경기는 마치 [록키]에서 록키와 아폴로의 경기를 연상시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찰리와 그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의 로봇인 아톰은 [록키]처럼 스파링 파트너용으로 만들어진 구식 로봇이고, 아톰이 로봇 복싱의 최강자 챔피언 제우스와 경기를 하는 장면은 [록키] 혹은 찰리의 과거 경기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이쯤되면 [리얼 스틸]은 2011년식 [록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록키]가 1976년 영화이고 지금은 유행이 지난 복싱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리얼 스틸]은 35년 만에 [록키]를 거의 완벽하게 그리고 새롭게 부활시킨 셈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영특함 그 첫번째입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리얼 스틸]은 복싱 영화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찰리 켄튼은 한마디로 나쁜 아빠입니다. 전 부인의 죽음으로 11살된 아들 맥스를 법정에서 처음 만난 그는 아들보다는 맥스의 양육권을 얻으려는 전 부인의 여동생 부부에게 돈을 뜯을 궁리만 합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뭐 저런 한심한 쓰레기가 다있어!'라는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짜증스러웠던 찰리는 하지만 당분간 맥스와 함께 생활하며 점점 바뀌어갑니다.

너무 뻔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리얼 스틸]은 그런 뻔함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으로 승화시킬줄 압니다. 이 영화가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 타임을 가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캐릭터의 변화를 어떻게 관객에게 설득시킬 것인가 입니다.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캐릭터를 변화시키려다보니 대부분의 영화가 성급한 선택을 하고 결국 관객을 공감시키는데 실패합니다.

 

하지만 [리얼 스틸]은 만만디 행보를 합니다. 오락 영화로는 조금 길다 싶은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이 영화는 나쁜 아빠인 찰리가 조금씩 맥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로 채워집니다.

지루할 것 같다고요? 그런데 아닙니다. 대부분의 좋은 아빠되기 프로젝트 영화들은 [파퍼씨네 펭귄들]처럼 자신의 일을 포기함으로서 좋은 아빠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리얼 스틸]은 오히려 좋은 복서가 되는 것으로 좋은 아빠가 됩니다. 다시말해 복싱 영화의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며 좋은 아빠되기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것이죠.

비록 과거 챔피언 결정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현재는 3류 프로모터에 불과한 찰리가 동작 인식 프로그래으로 작동되는 아톰을 조종하기 위해 스스로 복싱을 하는 장면은 극적이며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 한심한 인간 쓰레기처럼 보였던 찰리가 제 눈에도 멋진 아빠처럼 보였습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재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변화를 통한 감동을 안겨주는 [리얼 스틸]의 시나리오가 바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두번째 영특함입니다.

 

 

몸집이 작아졌다고 해서 재미도 작아진 것은 아니다.

 

[리얼 스틸]이 가지고 있는 세번째, 혹은 가장 큰 영특함은 바로 로봇물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트랜스포머]의 전 세계적 흥행 성공으로 인하여 만화 영화에서나 가능할줄 알았던 로봇물이 실사 영화로 관객을 사로 잡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남성 관객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채워진 [트랜스포머]의 흥행 열풍은 그러나 거대 로봇을 실사로 구축해야 하는 만큼 제작비가 만만치 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의하면 2007년에 만들어진 [트랜스포머]는 제작비가 1억5천만 달러, 2009년에 만들어진 2편은 2억 달러, 2011년에 만들어진 3편은 1억9천5백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영화인 셈이죠.

[트랜스포머]이후 로봇 영화가 붓물이 터지듯이 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잠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제작비의 장벽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얼 스틸]은 단 8천만 달러로 해냈습니다. 8천만 달러 역시 적은 제작비는 아니지만 로봇물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충분히 먹혀 들어갈 수 있는 소재임을 감안한다면 무리가 되는 제작비도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면 [리얼 스틸]이 이렇게 제작비를 확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바로 크기입니다. 거대 로봇을 등장시켰던 [트랜스포머]와는 달리 [리얼 스틸]의 로봇은 인간보다 약간 클 뿐입니다.

게다가 [리얼 스틸]은 로봇들의 활동 무대를 복싱 링으로 제한을 둠으로서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이죠.

분명 이렇게 크기가 줄어든 것은 로봇물에 로망을 가진 남성 관객에겐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가 봤던 로봇물은 [우주소년 아톰] 등 몇몇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거의 거대 로봇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리얼 스틸]은 그러한 아쉬움을 복싱이라는 스포츠 영화에서 오는 다이나믹함과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는 감동으로 채워놓습니다. [트랜스포머]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부실한 스토리 라인으로 실망했던 관객들이 많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몸집은 작아졌지만 스포츠 영화의 전설 [록키]를 기본으로 설정한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리얼 스틸]은 현재 관객 평점에서 [트랜스포머]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록키]를 근간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리얼 스틸]의 감동 코드는 새롭거나 깊지는 않지만 로봇물을 한단계 진화시키고 장르를 확장시킨 [리얼 스틸]은 분명 영특한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로봇들의 복싱에서 [록키]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줄은 몰랐다.

그러한 감동을 잡아낸 [리얼 스틸]은 분명 대단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