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크리스마스] - 어른들에게도 마법이 필요하단다.

 

 

감독 : 배리 쿡, 사라 스미스

더빙 : 제임스 맥어보이, 빌 나이, 애슐리 젠슨, 휴 로리

개봉 : 2011년 11월 25일

관람 : 2011년 12월 3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 너무 식상한거 아냐?

 

지난 여름방학시즌 이후 웅이와 함께 극장 나들이를 할 만한 영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1월 25일에 개봉한 [아더 크리스마스]는 오랜만에 웅이와 함께 극장 나들이를 할 만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주에 웅이와 함께 [아더 크리스마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웅이도 [아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시큰둥했고, 저 역시도 [아더 크리스마스]를 보느니 집에서 [폴라 익스프레스]를 한 번 더 보고, 극장 나들이는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이 개봉하는 12월 7일 이후로 잠시 미뤄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을 극장에서 보며 열광했고, 이 두 영화를 제작했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가 3D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작품이니 만큼 [아더 크리스마스]는 제게 기대작이 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더 크리스마스]를 아무런 미련 없이 기대작 리스트에서 빼버린 셈입니다.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린데에는 소재의 진부함이 한 몫을 해냈습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한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이라니... 게다가 내용도 산타의 어리버리한 둘째 아들 아더(제임스 맥어보이)가 산타의 실수로 빠진 한 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배달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라니...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주루룩 연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에이,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은 내게 [폴라익스프레스] 한 편으로 충분해!'라며 [아더 크리스마스]를 외면한 것이죠.

하지만 예상 외로 [아더 크리스마스]의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이 좋은 편이고, 관객의 만족도도 꽤 높은 수준이더군요. 결국 '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유치한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웅이와 함께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웅이와 함께 본 [아더 크리스마스]는 확실히 처음에 제가 예상했던, 내용은 뻔하고 수준은 너무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춰진, 그런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습니다.  

 

 

산타 마을도 이제 최첨단 시대이다.

 

[아더 크리스마스]는 처음부터 제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폴라 익스프레스]도 그랬고, 대부분의 산타 소재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산타 마을은 마법 그 자체였습니다. 하긴 단 하루만에 전세계 20억 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해줘야 하는 산타의 능력은 마법이 아닌 다음에야 설명이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아더 크리스마스]는 마법 대신 최첨단 SF를 선보입니다.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거대한 산타 비행선과 첩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요정들의 선물 배달 미션 수행까지... 마법대신 SF, 첩보 영화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의 구미에 딱 맞춘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더 크리스마스]는 꽤 영리하게 이젠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산타 마을의 마법과 새로운 최첨단 시대에 걸맞는 산타 마을의 현재 모습을 통해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아더 크리스마스]의 화법은 노골적이지 않아 자연스러웠습니다.

 

이젠 은퇴한 할아버지 산타(빌 나이)는 예전에 나무로 만든 썰매와 사슴 여덟마리를 끌고 세상을 돌며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산타의 첫째 아들이자 차기 산타로 유력한 스티브(휴 로리)는 자신이 만든 산타 비행선의 성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예전 할아버지의 구닥다리 방식을 무시합니다.

그러한 할아버지 산타와 스티브의 갈등은 아더가 실수로 빠뜨린 한 아이의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구닥다리 썰매를 타고 길을 나서는 장면으로 극대화되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옛 것이 소중한 것이여!'라며 무조건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옛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조화를 모색합니다.

아더와 할아버지 산타, 그리고 선물 포장 요정인 브리오니(애슐리 젠슨)의 소동극을 보며 하하호호 웃는 사이 어느새 산타 마을 모두 힘을 합쳐 임무를 완수해내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이어지고 [아더 크리스마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던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극장 안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그렇듯 거의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었고, 간혹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도 앉아 있었습니다.

저야 뭐... 웅이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 영화에 집중을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 관객들은 졸거나(특히 아버지의 경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딴짓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는 영화 상영 도중에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옆에 앉으신 여성 관객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 초반까지 핸드폰을 꺼내들고 문자를 보내는 등 자꾸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 제 짜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결국 '아줌마, 핸드폰좀 그만 꺼내세요.'라고 한마디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영화의 중반쯤, 아더와 할아버지 산타, 그리고 브리오니가 구닥다리 썰매를 타고 산타 마을을 떠나 모험을 하는 장면에서 제 옆의 여성 관객은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더니 아이들보다 더 크게 웃으며 핸드폰을 까맣게 잊고 영화를 즐기시더군요.

 

[아더 크리스마스]는 그런 영화입니다. 제가 애초에 이 영화를 기대작에서 배제했던 이유는 너무 뻔해 보이고 유치해 보이는 스토리 라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해도 영화 자체가 너무 어린아이 수준이라면 지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더 크리스마스]는 제게 그런 지루한 영화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더 크리스마스]는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아니 어찌보면 아이들보다는 어른을 위한 우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라는 조금은 흔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삶에 지치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어른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더와 할아버지 산타 그리고 브리오니의 미국, 멕시코, 아프라카를 가로지르는 재미난 모험을 보며 열심히 웃다가 마지막 산타와 스티브의 깨달음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아더 크리스마스]가 주인공인 아더가 모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아더의 모험을 통해 산타, 산타 할아버지 그리고 스티브가 자신의 매너리즘을 깨닫고 반성하는 내용이더군요.

 

 

어른들에게도 마법이 필요하단다.

 

다시 영화의 앞으로 돌아가서, [아더 크리스마스]는 산타의 단순 실수로 단 한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이 배달되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스티브는 이야기합니다. 20억명 중의 단 한 명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성공률에 만족합니다. 산타(짐 브로드밴트) 역시 그러한 스티브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피곤했던 하루를 마감하려 합니다.

솔직히 저 역시 스티브와 산타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단 한 명의 아이 때문에 거대한 산타 비행선과 그 수많은 요정들이 움직이는 것은 대단한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죠. 비록 그 아이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봤자 20억명 중의 한 명일 뿐인걸요. 저만 그런 생각을 했나요?(그렇다면 저만 나쁜 어른이군요. -_-)   

순진하고 실수투성이인, 약간은 바보 같은 아더는 논리적인 스티브의 말에 반발합니다. 그 아이도 소중하다고, 단 한 명일 뿐이지만 산타를 믿는 그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고... 그리고 바보같은 모험을 떠난 것이죠. 처음엔 아더의 바보 같은 모험을 저는 웃고 즐겼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스티브의 최첨단 방식은 어쩌면 성공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계적으로 선물 배달을 처리하다보니 산타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산타의 임무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선물을 주고 '올해도 무사히 일을 끝냈다'라고 좋아할 뿐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기계화와 비슷한 풍경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사회는 기계화로 인한 혁신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직장에서 자신이 할 일만 정해진 시간 속에 할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직장 생활에 대한 자부심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며, 정해진 일을 별 무리없이 해내고, 꼬박 꼬박 월급을 받는 생활 속에 저는 마치 입버릇처럼 '오늘도 지겨운 하루의 시작이군'이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런 현대인의 모습이 산타라는 존재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더의 놀라운 모험으로 제 생활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아더의 모험을 보며 산타를 믿는 순수한 어린 아이들보다는, 어쩌면 산타 마을의 마법이 필요한 것은 각박한 생활 속에 찌든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웅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지만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 오히려 기계적으로 일을 하던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