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황인호
주연 : 손예진, 이민기, 박철민, 김현숙, 이미도
개봉 : 2011년 12월 1일
관람 : 2011년 12월 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대한민국 대표 비실'깡'남 쭈니가 [오싹한 연애]를 보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제가 글쎄... [오싹한 연애]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마 제 영화 이야기를 자주 접하지 못하신 분이라면 '왜 호들갑일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는 절대 보지 못하는 제가, 비록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귀신 등장 장면만큼은 공포 영화부럽지 않다는 [오싹한 연애]를 본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가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본 것은 2007년 10월에 본 [궁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녀]가 [혈의 누]를 잇는 사극 스릴러일 것이라 생각하고 극장을 찾았었고, 후반부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귀신 때문에 당혹했었습니다. 결국 [궁녀]는 자발적인 귀신 영화 관람이 아니었던 셈이죠.
그럼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 6월에 본 [분홍신]이 제가 자발적으로 본 마지막 귀신 영화였습니다. 당시 구피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너무 무서워 구피의 손을 꽉 잡고 주요 장면인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보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귀신이 제일 무섭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비실한 '깡'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어렸을 적에 즐겨 보던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이 니오는 에피소드를 방영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악몽을 꿨는데, 특히 '구미호'를 본 날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TV에선 무시무시한 구미호가 튀어 나오려 하고([링]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처럼) TV를 아무리 끄려해도 꺼지지 않고(당시에는 리모콘도 없었던), 너무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는데 그래도 생생하게 '구미호'가 보였던 그 날의 악몽. 단칸 방에 다섯 식구가 함께 생활을 했기에 저는 식구들이 모두 즐겨 보는 '전설의 고향'을 악몽을 꾸면서 억지로 봐야 했습니다.(겁쟁이라고 놀림 받는 것이 두려워 무섭다고 항변조차 못했습니다.)
혼자 잠을 잘 땐 가위에 자주 눌렸고, 요즘도 가끔 귀신에게 쫓기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동안 귀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귀신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바로 '극복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라는 진리입니다.
극복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 시절, 혼자 잘 때 가위에 눌린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잘 때마다 가위에 눌렸는데, 모르는 남자가 제 방에 있었고 저는 누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지만 일주일 동안 반복되다보니 나중엔 낯선 남자에게 친근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그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물론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로 가위에 눌린 적은 없습니다.
귀신 꿈을 꾸는 날에도 저는 '이건 꿈이야. 내 맘대로 할 수 있어.'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고, 그럴때마다 저는 하늘을 날거나, 귀신이 절대 넘어올 수 없는 벽을 쌓거나, 하는 방법으로 꿈 속의 내 자신을 지켜냈습니다. 비실한 '깡' 때문에 항상 귀신 꿈에 시달렸던 저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방어였던 셈이죠.
요즘도 가끔 귀신 꿈을 꾸는데 이젠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냥 꿈에서 깨고 나면 구피에게 무용담처럼 '이런 이런 방법으로 귀신을 이겨냈어.'라고 아침부터 귀신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이젠 구피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
그런 제가 [오싹한 연애]를 본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귀신 영화를 보고나면 어김없이 귀신 꿈을 꿉니다. 아무리 꿈 속에서 귀신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는 하지만 귀신 꿈이 좋을 수는 없죠.
그런데 용기를 내서 [오싹한 연애]를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강여리(손예리)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저는 당연히도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합니다. 그런데 [오싹한 연애]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여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가 여리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여리가 자신의 실생활에 깊숙히 개입해 있는 귀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이 저와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당했던 교통 사고이후 귀신을 볼 수 있게된 그녀는 그로 인해 외톨이가 되었지만 귀신이 두려워하기 보다는 귀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한을 풀어줍니다.
결국 그녀는 극복할 수 없는 귀신과의 생활을 적응하면서 버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고작 귀신 꿈을 자주 꾸는 저와는 비교도 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그런 당찬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고, 그녀의 외로움, 그녀의 눈물을 보며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여리는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완벽한 캐스팅. 그들 덕분에 웃고 울다.
비실 '깡'남으로는 국가대표급인 제가 귀신이 득실대는 [오싹한 연애]를 극장에서 보기로 결심한 데에는 손예진이라는 배우의 존재가 컸습니다.
[무방비 도시]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를 봤고, [첫사랑 사수궐기 대회], [작업의 정석]을 제외하고는 본 모든 영화를 비디오가 아닌 극장에서 관람했던 저는 손예진의 열렬한 팬입니다. 예쁘장한 얼굴을 지녔으면서도 여배우라면 선뜻 맡기 힘들었던 배역들을 그녀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그녀의 연기력을 저는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오싹한 연애]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대단한데, 가녀린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의 '깡'은 여리라는 캐릭터에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특히 사고가 된 곳에서 단짝 친구였지만 자신 대신 죽음을 맞이하고 원혼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주희를 향해 '난 하나도 외롭지 않다. 혼자 노는게 얼마나 재미있는데...'라고 외치는 장면은 가녀린 그녀가 강한 척 하기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의 안쓰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자신의 속 마음을 말하는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는데 빨리 달려가 꼭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랑에는 항상 장애물이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 부모의 반대 등등 하지만 그 장애물이 귀신이라면? 이 특이한 상황에서 '그래도 난 그 장애물을 넘을래.'라고 다짐하며 [오싹한 연애]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손예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손예진을 더욱 돋보이게 한 상대 배우 이민기의 매력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호러 마술사인 마조구(이민기)는 저를 능가하는 비실한 '깡'을 가지고 있지만 여리에 대한 사랑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조구가 공항에서 여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우는 장면은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귀신 때문에 단 한시도 편안히 있을 수가 없고 밤마다 가위에 눌리지만, 내가 이 정도면 당신은 어떻겠냐며 눈물 콧물을 흘리고 우는 장면은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라고 외치던 그 수 많은 멜로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는 결국 주연 배우의 매력이 거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나도 저런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환상을 심어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공포 영화를 조합해놓은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라면 당연한 이러한 전제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귀신이 방해하는 사랑이라니...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관객은 거의 드물테니까요.
황인호 감독은 그러한 [오싹한 연애]를 핸디캡을 손예진과 이민기라는 배우의 매력으로 완벽하게 메꿔놓습니다. 공포 영화를 접목시킴으로서 로맨틱 코미디의 식상함을 날려 버리고, 손예진과 이민기로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그의 놀라운 연출력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비실'깡'남 쭈니가 [오싹한 연애]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
이쯤에서 고백해야 겠네요. '내 사랑 손예진의 영화를 놓칠 수는 없어.'라며 [오싹한 연애]를 보기 위해 당차게 극장으로 달려갔지만 사실 저는 [오싹한 연애]의 귀신 장면은 거의 보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습니다.
애초에 [오싹한 연애]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분들의 리뷰를 닥치는대로 읽었던 저는 엘리베이터 귀신 장면과 조구의 가위 눌림 장면이 특히 무섭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그 장면에서 더 이상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두 눈을 감아 버린 것이죠.
[오싹한 연애]에서 귀신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저는 [오싹한 연애]의 영화적 재미를 절반 밖에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절반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구피가 제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는 달리 [오싹한 연애]를 씩씩하게 관람한 구피(구피도 조구의 가위 눌림 장면만은 무서워서 중간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고 합니다). 저와는 달리 공포 영화를 좋아해서 [고스트 쉽], 미국판 [링], 최근에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2] 등을 극장에서 보자고 졸라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구피는 [오싹한 연애]도 씩씩하게 관람을 마쳤습니다.
그러고보니 여리와 조구 커플이 저와 구피를 닮은 듯합니다. 아마도 비실'깡'남 조구는 여리와의 사랑으로 귀신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강력하니까요.
사랑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면 조구는 어떻게 하냐고요? 걱정마세요. 그때쯤이면 조구도 여리처럼 익숙해질테니까요.
혼자라면 아무리 손예진이 주연을 맡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오싹한 연애]를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주말 손예진이 저희 동네 멀티플렉스인 목동 메가박스에 무대인사를 온다고 해서 목숨걸고서라도 극장으로 달려가 [오싹한 연애]의 티켓을 끊으려 했지만 구피가 싫다고 해서 포기해버렸답니다.
그런 제가 비록 귀신 나오는 장면에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그래도 [오싹한 연애]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와 함께 해준 구피 덕분일 것입니다. 귀신 꿈은 익숙해졌지만 귀신 영화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익숙해지지 않는 비실'깡'남 쭈니를 극장으로 인도한 구피의 사랑도 여리의 사랑만큼이나 대단하죠?
비실'깡'남이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
결국 정답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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