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50/50] -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난다.

쭈니-1 2011. 12. 14. 10:15

 

 

감독 : 조나단 레빈

주연 : 조셉 고든 레빗, 세스 로겐, 안나 켄드릭, 브리아스 달라스 하워드

개봉 : 2011년 11월 24일

관람 : 2011년 12월 1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마이 웨이]를 보기 위한 전초전?

 

12월 13일... 저는 회사에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아끼고 아껴둔 연차 휴가였지만 그날 만큼은 미련없이 휴가를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십리 CGV에서 [마이 웨이] 시사회와 함께 강제규 감독,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김인권이 참석하는 기자 간담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 웨이]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오전에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영화 한 편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울 블록버스터 시즌을 맞이해서 대작 영화들이 대부분의 상영관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미 본 대작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었습니다.

예매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 봤지만 볼 수 있는 영화는 [결정적 한방]정도 뿐이었습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는 상영관이 지방이거나 교차 상영으로 인하여 시간대가 맞지 않거나, 하는 경우 밖에 없어서 절 절망시켰죠.(솔직히 [결정적 한방]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마이 웨이] 시사회에 함께 참가해주기로 한 소연님이 '[50/50]은 어때요?' 물었습니다. 개봉 3주차가 되었지만 몇몇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아직 교차 상영을 하고 있었으며, 관객의 입소문도 좋아서 [마이 웨이]를 보기전 워밍업으로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50/50]의 관계자가 듣는다면 기분이 나쁘실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저는 [마이 웨이]를 보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그 시간을 떼우기 위해 [50/50]을 선택했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라는 [마이 웨이]와는 달리 척추암에 걸린 한 남자의 작고 소소한 일상을 담은 [50/50]을 저는 [마이 웨이] 관람 전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편안하게 쉬면서 관람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선택은 잘못되었습니다. 아니, [50/50]이 재미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너무 재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이 웨이]를 보기 전에 [50/50]의 여운이 너무 오래 남아서 오히려 초대형 블록버스터라는 [마이 웨이]의 관람을 방해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마이 웨이]가 재미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처음으로 좋아한 전쟁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답게 [마이 웨이]도 전쟁의 실상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거대한 스펙타클로 완성해 놓은 대작입니다. 쉴새없이 전쟁 장면이 이어지고, 수 많은 군인들이 총탄 앞에서 허무하게 죽어 나가며 2시간 30여분 동안 관객의 혼을 빼내더군요.

하지만 전 그 시끄러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27살의 젊은 나이로 척추암에 걸린 한 남자의 일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지옥과도 같은 전쟁통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치던 [마이 웨이]의 준식(장동건)과 생존율 50%의 확률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던 [50/50]의 아담(조셉 고든 레빗)이 어느 순간 겹쳐 보일 정도였습니다.

 

 

당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면!

 

만약 당신이 암에 걸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지만 저는 가끔 내가 만약 몇 일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상상을 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장 짜증이 나는 것은 죽을 병에 걸린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을 숨기고 혼자 그 아픔을 견뎌 이겨내는 설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질게 대해서 이별하게 만들고, 가족, 친구들에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병을 숨깁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주인공의 병이 알려지면 그 주변 사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네가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안타까워합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왜 혼자 짊어져야 하는 거지? 그것이 과연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길일까? 나중에 그러한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의 죄책감과 아픔은 왜 생각하지 않는거지?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시간을 줘야 하잖아?

제가 이기적인가요? 만약 제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저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릴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삶을 정리하듯이 내 주변 사람들 역시 나와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담이 그러합니다. 병원에서 척추암 선고를 받은 그는 지체없이 가장 친한 친구인 카일(세스 로겐)과 애인인 레이첼(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그리고 어머니에게 차례로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들도 처음엔 충격을 받고 어쩔줄 몰라합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서 아담은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이고, 그들과 함께 병을 이겨내고, 그들에게도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줍니다.

물론 아담의 병에 대한 각각의 반응은 다릅니다. 카일은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나중엔 마치 장난처럼 받아들이며 오히려 아담의 병을 이용해서 여자들이나 꼬시자고 부추깁니다. 레이첼은 아담의 병수발을 힘겨워하다가 떠나고, 어머니는 지나친 걱정으로 오히려 아담을 짜증나게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첼은 다른 남자를 만나며 스스로를 위해 아담과의 이별을 대처하고, 카일은 '암을 함께 이기는 법'을 읽으며 아담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이 암에 걸린 어머니의 모임'에 나가며 아픔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의 방법으로 아픔을, 슬픔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나의 상황이 나에게로 끝나는 것이 아닌 주변의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약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그것은 나만의 상황이 아닌 내 주변 모두의 상황인 것입니다.

 

 

나는 웃는다. 그런데 슬프다.

 

[50/50]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월 라이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상황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영화의 감동을 위해 과장된 슬픔 속으로 관객을 몰아 넣지도 않고, 캐릭터들 역시 최대한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며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척추암에 걸린 아담이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실패할 경우 죽을지도 모를 수술을 하루 남겨둔 날 밤, 카일의 차안에서 울부짖는 장면 뿐입니다. 시종 '별거 아냐.'라는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가 딱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울부짖습니다. 이 영화의 감정이 표출된 장면은 단지 그 장면 뿐입니다.

어찌보면 [50/50]은 코미디라는 장르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척추암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인데 최루성 멜로가 아닌 코미디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실제로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렇다고 [50/50]이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카일 캐릭터를 이용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카일이 마냥 웃긴 캐릭터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그가 아담을 위해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그런데 웃고 있는 내 얼굴에 눈물이 주루룩 떨어집니다. 조용필의 명곡 '그 겨울의 찻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아! 웃고있어도 눈물이 난다' [50/50]이 딱 그러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감정을 꾹꾹 눌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옆에는 소연님이 계셨고,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면 안되다고 배웠으며, 제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소연님에게 들키면 놀림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었던 것은 저만이 아닙니다. 아담이 그러했고, 이 영화 자체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꾹꾹 누르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 한 줄기처럼, [50/50] 역시 아담의 슬픔과 불안함을 꾹꾹 누르며 카일의 바보 같은 행동을 통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지만 영화 전체에 흐르는 감동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50/50]은 그런 영화입니다. Daum 영화에서는 [50/50]을 코미디, 드라마로 표기하고 있고, 실제로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르의 구분으로도 [50/50]의 감동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50%의 생존율로 거는 희망의 잭팟!

 

처음 아담의 척추암 소식을 듣고 생존율이 50%라는 소리에 카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나쁘지 않네. 50%라면 카지노에서도 최고의 확률이라고...'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의 잔에 콜라를 반 잔만 줍니다. 한 아이는 '콜라가 반 잔 밖에 없네'라고 실망하고, 한 아이는 '콜라가 반 잔이나 있네.'라고 좋아합니다.

50%의 확률. 어쩌면 '내가 살아날 확률이 50% 밖에 안되'라고 절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살아날 확률이 50%나 되네.'라고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숫자 놀음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비관적인 사람과 낙천적인 사람.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남은 인생을 비관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남은 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50/50]은 그런 면에서 매우 낙관적인 영화입니다. 그들은 50%의 생존율을 희망으로 여기고 죽음의 공포에 덜덜 떨며 두려워 하기 보다는 웃고 즐기며 남은 인생을 즐깁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니다.

 

그러한 희망의 영화에서 조나단 레빗 감독은 영특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안나 켄드릭의 캐스팅입니다. [트와일라잇]으로 얼굴을 알린 그녀는 [인 디 에어]에서 엄청난 매력을 품어내며 조지 클루니와 함께 영화의 재미를 살려 냈었습니다.

[50/50]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기본적으로 [50/50]은 [500일의 썸머], [인셉션]의 조셉 고든 레빗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조셉 고든 레빗의 영화에 안나 켄드릭이 뛰어들면서 영화는 더욱 화사해집니다.

아담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에서 그의 심리 상담사인 캐서린(안나 켄드릭)이 있었기에 그 장면은 감정의 과잉으로 이어지지 않고 적절하게 조절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영화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안나 켄드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0%의 생존율이 가져다준 진정한 잭팟이라고 할 만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거리의 화사한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추운 초겨울의 바람도, 거리를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먹은 단촐한 오뎅 우동도, [50/50]이 전해준 긍정의 힘이 한 동안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아픔을,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 다르다.

내가 영화를 보며 레이첼을 욕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아담은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녀의 이기적인 슬픔 극복법이 레이첼을 보내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