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가이 리치
주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야레드 해리스, 누미 라파스
개봉 : 2011년 12월 21일
관람 : 2011년 12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크리스마스의 마무리는 바로 이 영화로...
웅이와 함께 한 편같은 두 편의 영화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비크티니와 흑의 영웅 제크로무]와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비크티니와 백의 영웅 레시라무]를 연달아 보고나니 황금 같은 크리스마스가 후다닥 지나가 버렸습니다. 뭔가 시간을 굉장히 헛되이 쓴 느낌이...
집에 들아와 허탈해 하는 제게 구피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을 보러가자고 다독여줍니다. 전날 스키장에 다녀와서 온 몸이 욱씬거리고 쑤셨지만 이대로 크리스마스를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 크리스마스 저녁 구피와 함께 다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고보니 2년 전, 정확히는 2009년 12월 23일 [셜록 홈즈]를 봤을 때가 기억나는 군요. [셜록 홈즈]는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본 영화였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후 쓴 첫번째 영화 이야기는 [여배우들]이었고, 두번째 영화는 [아바타]였으며, 세번째 영화가 바로 [셜록 홈즈]였습니다.) 그땐 [셜록 홈즈]가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홈즈는 명탐정이었는데 영화 속의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액션 히어로였거든요. 그래서 2편에서는 홈즈가 명탐정의 면모를 좀 더 발휘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화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렇다면 2년 전의 제 바람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 이루어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의 추리는 아직도 저를 만족시킬만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홈즈는 명탐정보다는 액션 히어로가 더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하지만 2년 전의 학습 효과 덕분인지 영화 속 홈즈의 낯설음은 분명 사라졌습니다. 머리를 쓰는 대신 몸으로 부딪히는 홈즈가 이제는 익숙해진 저는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개 속편 영화의 경우는 전편에 비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그 떨어진 신선도 덕분에 오히려 전편보다 영화를 즐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참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명탐정이 아닌 액션 히어로로서의 홈즈의 낯설음을 벗어 던지고 나니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꽤 매력적인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홈즈는 이제 시시한 살인 사건 따위가 아닌 유럽 전역이 전쟁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는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진정한 영웅이 되어 있었고, 왓슨(주드 로)은 홈즈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버디 무비로서의 재미마저도 획득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액션 히어로와는 확연히 다른, 홈즈의 괴짜 본능 작렬까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이제 블록버스터 시리즈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찾은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셜록 홈즈 VS 모리아티 교수
사실 전편의 악당 블랙우드는 홈즈를 진정한 액션 히어로의 위치에 올려 놓기에는 2%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분명 강력한 힘을 가진 악당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홈즈와 맞서기엔 뭔가 부족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 내세운 악당은 홈즈의 최강의 적이자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모리아티 교수(야레드 해리스)입니다. 코난 도일의 원작에서 모리아티 교수는 홈즈에 의해서 자주 언급이 되는데 홈즈는 그를 유럽 최고의 두뇌라고 했으며, 자신과 지적으로 동등한 적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모리아티 교수가 홈즈의 숙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1893년 발표된 단편 '마지막 사건'(The Adventure of the Final Problem)에서 였습니다.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는 모리아티 교수 일당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라이헨바흐 폭포에 갔다가 모리아티와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모리아티 교수는 코난 도일의 그 수 많은 원작에서도 딱 세번 등장할 뿐입니다. 그것도 두번은 단지 언급에 불과하고, 홈즈와 모리아티의 대결은 '마지막 사건'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단 한편만으로도 모리아티는 세계적인 악당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하니 '마지막 사건'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이렇게 자타 공인 홈즈의 최강의 적 모리아티 교수 카드를 꺼내 들음으로서 승부를 내건것입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액션 히어로서의 새로운 홈즈 캐릭터를 창조해 냈지만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의 대결 부분에서는 원작인 '마지막 사건'에 꽤 충실하려 노력하였습니다.
모리아티 교수는 야레드 해리스라는 조금은 낯선 배우를 통해 원작과의 싱크로율 100%로 환생했고, 홈즈와 모리아티의 마지막 대결 장소인 라이헨바흐 폭포 역시 스위스의 정상 회담 장소 묘사를 통해 완벽하게 재현시켰습니다.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이 개봉하기 전에 '홈즈가 죽는다더라.'는 흉흉한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원작에서 홈즈는 모리아티와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져 생사가 묘연했으니까요. (물론 원작에서도 '마지막 사건'의 3년 후 홈즈는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렇듯 유럽을 전쟁에 몰아 넣어 돈을 벌려고 하는 모리아티 교수와 홈즈의 대결은 영화의 스케일을 확대시켰고, 적의 음모도 거대해졌으며, 아울러 원작팬의 향수도 어느 정도는 달려줄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티격태격 버디 무비의 진수
아울러 가이 리치 감독은 홈즈와 왓슨의 관계도 재정립시켰습니다. 홈즈의 맹활약으로 아무래도 조연일 수 밖에 없었던 왓슨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는 홈즈와 맞먹는 주연급으로 격상됩니다.
결혼을 앞둔 왓슨과 왓슨이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과의 모험을 외면하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에 몰두할 것임을 걱정한 홈즈의 갈등은 영화 초반의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결혼 전날 왓슨의 총각 파티 장면이라던가, 왓슨의 신혼 여행 열차를 습격하는 모리아티 교수 일당 장면 등 가이 리치 감독은 왓슨의 결혼을 왓슨과 홈즈의 갈등과 더불어 모리아티 교수의 음모와 결부시키는 영리함을 보여주는데, 덕분에 영화는 시종일관 앞을 향해 달리는 느낌이지만 캐릭터의 생생함과 적당한 웃음이 함께 버무러져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홈즈와 왓슨의 관계는 전설적인 버디 무비 [리쎌웨폰]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아무도 못말리는 미치광이 영웅과, 그와 티격태격하며 뒤치닥거리를 하는 조력자의 모습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홈즈와 왓슨의 버디무비로서의 재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역시 왓슨의 결혼식 장면과 함께 이어진 신혼 여행 기차 안에서의 액션씬입니다.
홈즈를 협박하기 위해 왓슨 부부의 목숨을 위협하는 모리아티 교수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기차 안에서의 액션은 긴장감 보다는 '하하호호' 웃으며 이 둘의 파트너쉽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왓슨은 무기 창고에서 결정적인 위기에 빠진 홈즈를 구해내기도 하고, 스위스의 정상 회담에서는 홈즈과 모리아티 교수와의 일대일 결전을 벌이는 동안 심(누미 라파스)과 함께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암살자의 음모를 막아내는 등 홈즈 이상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왓슨의 활약은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셜록 홈즈]라는 프랜차이즈 시리즈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을 통해 앞으로의 시리즈에서 펼쳐질 무궁무진한 새로운 재미의 여지를 남겨 놓은 셈입니다.
속편의 의무에 충실하다.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속편의 의무에도 충실합니다. 속편은 대개 전편보다 스케일이 커지고 등장 인물이 많아집니다.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이 전편보다 스케일이 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등장 인물은?
일단 모리아티 교수의 음모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집시 심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을 위한 단편적인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기에 제외시키도록 하죠.
악당인 모리아티 교수는 원작에서의 명성을 봤을 때 앞으로도 계속 홈즈를 괴롭힐 것으로 보입니다.(홈즈도 살아서 돌아왔는데 모리아티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죠.) 모리아티 교수를 한번 쓰고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즈(스티븐 프라이)의 새로운 등장도 반갑습니다. 원작에서 정부 부서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 그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도 셜록 홈즈의 형제답게 괴짜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사건 해결을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든든한 조연 캐릭터로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왓슨과 결혼한 메리 역시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만만치않은 포스를 내뿜었습니다. 앞으로 그녀는 홈즈와 티격태격하며 왓슨을 사이에 두고 재미난 경쟁을 펼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아이린(레이첼 맥아덤즈)의 서두른 퇴장입니다. 전편에서 괴짜 홈즈를 당황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던 아이린은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에서 초반에 잠깐 맹활약을 하고는 자취를 감춤으로서 제게 아쉬움을 남겨 줬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리아티 교수는 그녀를 제거했음을 홈즈에게 시사했지만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렇게 일찍 포기할 바보같은 영화 제작자는 없죠.
원작에서도 아이린은 홈즈의 여자로 인기를 끌었으며 일부 팬들은 홈즈가 모리아티와 함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후 재등장할 때까지 종적이 묘연했던 3년간 홈즈와 아이린이 재회했고 아이린이 홈즈의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3편에서는 분명 아이린이 재등장할 듯.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은 여전히 명탐정다운 기발한 추리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으로 재탄생한 홈즈의 변신을 인정하면서 영화를 본다면 원작과 영리하게 맞닿은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홈즈의 액션 히어로의 변신을 아쉬워 해봤자 소용없다.
영화를 즐기려면 그러한 변신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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