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퍼펙트 게임] - 그날의 열정을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쭈니-1 2011. 12. 29. 11:38

 

 

감독 : 박희곤

주연 :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개봉 : 2011년 12월 21일

관람 : 2011년 12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2011년 100번째 영화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2011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저는 2011년 한 해동안 극장에서 100편의 영화를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스스로 영화광이라 자부하며 수 많은 영화를 봤지만 대부분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본 것이고, 2차 판권 시장이 무너지고 나서 영화 관람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저는 '영화는 극장에서'라는 원칙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1년에 10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년이 51주라고 한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두번은 극장에 가야했습니다. 주중에는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쁘고, 주말에는 아빠노릇, 남편노릇, 아들노릇 하느라 바쁜 와중에 일주일에 두번이나 극장에 간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평일 저녁마다 극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TV 드라마는 거의 보지 못했고, 소주를 끊음으로서 술 약속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퍼펙트 게임]을 목동 메가박스에서 관람함으로서 계획했던 100편의 영화를 채우고야 말았습니다.

 

제게 100번째 영화로 선택된 것이 [퍼펙트 게임]이라는 것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몸치, 운동치인 까닭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축구, 족구, 농구 등 스포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인 두산 베어스가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것도 어쩌면 2011년동안 10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프로야구 경기를 보느라 평일 저녁은 극장 보다는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올해는 두산 베어스의 최악의 경기들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끓어 올라 의도적으로 프로야구 경기 관람을 피했거든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 한개, 한개에 달려있는 그 수 많은 매력 때문입니다. 경기가 투수전이라면 100개 정도의 공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지만 타격전이라면 여러 명의 투수가 200개, 아니 그 이상의 공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결코 단 한개의 공도 허투루 던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야구 경기를 보다보면 단 한개의 공에 승부가 갈리곤 합니다. 투수의 혼이 담긴 투구와 수십개의 공 중에서 단 한개의 실투를 놓치지 않으려는 타자의 타격. 그들의 수 싸움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감동을 제게 안겨주곤 했습니다.

 

 

1987년 5월 16일...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한국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두고 두고 회자할 만한 명경기인 1987년 5월 16일 롯데와 해태의 사직 경기가 [퍼펙트 게임]의 소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대한민국 대표 에이스로 우뚝 섰던 최동원과 1985년 해태에 입단 한 후 1986년에 24승 6패 6세이브, 그리고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동렬.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이 불세출의 영웅이 운명적인 맞대결을 펼친 것입니다. 이미 두 번의 맞대결에서 1승씩을 주고 받았던 이들은 1987년 5월 16일... 프로야구 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맞대결을 펼칩니다.

경기 소요 시간은 4시간 56분. 15회 동안 롯데와 해태에서 나온 타자의 수는 각각 15명씩 총 30명이었지만 투수는 양 팀의 선발투수인 최동원과 선동렬 뿐이었습니다. 최동원은 15이닝동안 209개의 공을 던졌고, 선동렬은 23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요즘 선발 투수의 한계 투구수가 적게는 100개에서 많아도 130개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최동원과 선동렬은 그 두배에 달하는 공은 던진 셈입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2 대 2 동점이었습니다. 결국 이 전설적인 경기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선동렬과 최동원, 그리고 롯데와 해태 선수들이 보여줬던 그날의 열정은 1982년 프로야구 개막 이후 현재까지 최고의 명경기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퍼펙트 게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그날의 경기를 충실히 재현합니다. 물론 영화이다 보니 약간의 설정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우선 실제 경기에서 선취점을 낸 것은 롯데였습니다. 2회말 4번 타자 김용철의 볼넷, 김민호, 정구선의 연속 안타로 무사 만루 찬스를 맞았고 결국 2득점에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해태가 선취점을 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 경기에서 선취점을 내준 해태는 3회초 서정환의 1타점 적시타로 따라 붙습니다. 영화에서는 김용철(조진웅)의 적시타와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로 2득점을 하며 역전에 성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9회 마지막 공격, 2 대 1로 패색이 짙었던 해태는 대타 김일환의 극적인 2루타로 1점을 보태며 2 대 2 동점이 됩니다. 영화에서는 가상의 인물인 박만수(마동석)가 극적인 동점 홈런을 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박만수라는 무명의 해태 포수가 정말 있었는지 검색을 해봤을 정도로 [퍼펙트 게임]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데 그것이 영화적 설정이라고 하니 약간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이렇듯 [퍼펙트 게임]은 영화적인 설정과 실제 경기를 적당히 섞어가며 1987년 5월 16일의 감동을 충실히 영화 속에 재현해내었고, 그것만으로도 오랜 프로야구 팬인 제게 벅찬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중반까지 영화는 비실비실하다.

 

[슈퍼스타 감사용]을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프로야구 소재의 영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퍼펙트 게임]은 분명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영화를 바라본다면 [퍼펙트 게임]은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허점이 많이 보입니다.

스포츠 영화는 일반적으로 다이나믹한 힘을 원천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경기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힘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퍼펙트 게임]은 후반까지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야구 영화라고 할지라도 야구 경기 장면만을 잡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퍼펙트 게임]도 당연히 경기 외의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러한 장면들 가운데 스포츠 기자인 김서형(최정원)과 그의 선배 기자는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마치 산으로 가는 느낌입니다. 선배 기자는 왜그리 비실비실한지 긴장감을 팍 느끼고 있다가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힘이 팍 풀려 버립니다. 김서형은 전형적인 열혈 여성 캐릭터로 남성 위주의 스포츠 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함이 마땅한데 너무 전형적이고 겉도는 느낌만 안겨줄 뿐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선동렬과 최동원의 경기 외적인 장면들 역시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불꽃 투혼을 펼치던 그들이기에 경기장 밖에서도 뭔가 치열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양동근과 조승우라는 최고의 배우들은 마치 선동렬과 최동원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주눅든 연기만을 선보일 뿐이었습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사투리도 마찬가지인데 거의 대부분의 배우들이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의 사투리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뭔가 굉장히 인위적이고 억지로 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산의 야구 열기를 드러내는 관중씬도 뭔가 부자연스럽고 힘이 안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열혈 롯데팬인 서형의 친구 민경(쥬니)와 경기에서 난동을 피우는 진상 관중들 장면을 보면서 [해운대]의 설경구가 그리워졌습니다. 민경을 비롯한 진상 관중들이 어색한 사투리를 쓰면서 난동을 피우는 장면은 부산의 야구 열기가 느껴지기는 커녕 오히려 부자연스러움만 느껴졌으며, 결국 영화에 대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퍼펙트 게임]은 후반부 하이라이트인 선동렬과 최동원의 맞대결 장면에서 그동안 꾹꾹 참았던 힘을 한꺼번에 발산시키는데 그러한 힘을 영화 전반에 걸쳐서 조금씩 분산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감독이 욕심이 많다.

 

[퍼펙트 게임]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박희곤 감독의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그는 선동렬과 최동원의 맞대결만으로는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요소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놓았는데 그 결과 이 영화는 잡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용철과 김일권의 코믹한 대립입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코미디에 대한 격한 사랑을 감안한 듯한 설정같은데 아무래도 박희곤 감독은 코미디 영화에는 재능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분명 김용철과 김일권은 '킥킥'거릴 정도의 웃음을 안겨주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김용철과 김일권이 웃음을 담당했다면 가상 인물인 박만수는 영화의 감동을 드러내려 시도한 캐릭터입니다. 만년 후보 포수인 그는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그런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피땀흘리며 연습하는 장면을 보며 '아! 마지막에 그가 동점 홈런 정도를 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김없이 그런 제 예상이 맞아 떨어져 조금 식상했습니다. 그리고 박만수가 해태 선수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은 너무 낯뜨겁더군요.

 

난데없이 정치적 음모가 튀어 나오기도 하고, 화장실 유머와 인위적 감동을 섞여 들어간 [퍼펙트 게임]은 차라리 박희곤 감독이 진중하게 한가지에 매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용철의 만년 2인자에 대한 설움을 좀더 심도깊게 잡던가, 아니면 김용철을 코믹한 캐릭터로 만들려면 좀 더 제대로 박장대소를 터트릴 대박 장면을 만들던가, 그것이 힘들다면 1980년대 사회적 분위기를 제대로 묘사해서 정치적 음모를 제대로 그려 넣던가 했어야 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최동원의 중압감과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아직 최동원에게는 안된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던 선동렬의 방황이라도 제대로 잡았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박만수에 의한 감동 코드는 조금 뻔했지만 제대로 표현된 것 같아서 최악의 잡탕은 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최동원과 선동렬이 펼친 그날의 불멸의 경기가 안겨주는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가 재미있었나?'라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소재는 좋았는데 그것을 연출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987년 5월 16일. 선동렬과 최동원이 마운드에서 죽기 살기로 던졌던 그날의 열정을 제대로 잡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날의 열정을 잡아 보겠다고 시도라도 한 것에 만족해야 할 듯.

 

 

어쩌면 1987년 5월 16일 최동원과 선동렬이 보여줬던 그날의 열정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영화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박희곤 감독이 조금 욕심을 버리고

그들의 맞대결에 모든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