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진
주연 : 이나영, 정재영
개봉 : 2004년 6월 25일
관람 : 2004년 6월 27일
[아는 여자]는 분명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아주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한 남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나오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만나 서서히 사랑을 시작하고, 마지막엔 어김없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합니다. 도대체 이 평범해보이는 로맨틱 코미디가 왜 이토록 관객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이나영과 정재영이라는 매력적인 배우와 장진이라는 걸출한 감독에 있습니다. 결코 어울릴것같지 않던 이나영과 정재영이 각자의 매력으로 독특한 로맨스를 만들어나가면, 장진 감독이 이 둘의 매력을 잘 조화시킴으로써 정말 이상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낸 겁니다. [아는 여자]는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는 소재로 얼마나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 정말 완벽한 예입니다.
1. 이나영 - 익숙함에 의한 편안함.
[아는 여자]에서 가장 멜로 영화다운 것은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존재입니다. [천사몽]이라는 SF영화로 데뷔했지만, [후아유], [영어완전정복]을 통해 멜로 영화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그녀. 그러나 그녀는 결코 예쁘게 포장된 평범한 멜로 영화와는 거리가 먼 배우이기도 합니다.
조승우와 함께 주연을 맡은 [후아유]는 외형상 흔한 멜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멜로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새콤달콤한 사랑보다 주인공들의 불안한 미래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형태와 인주는 현실의 불안한 미래를 피해 사이버 세계속으로 숨어들고, 아바타에 자기 자신을 숨긴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합니다. [후아유]는 현실을 외면하는 가벼운 멜로 영화속에서 납루한 현실에 맞서는 진지한 사랑을 이야기한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멜로 영화였습니다.
[비트], [무사]등 남성적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김성수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멜로 영화인 [영어완전정복]은 우리나라의 멜로 영화중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중의 하나입니다. 멜로 영화의 당연한 법칙인 예쁜 배우라는 편견을 부수고 이나영에게 커다란 안경과 촌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전혀 멜로 영화의 주인공답지 않게 변신시킨 이 영화는 시종일관 오버스러운 연기와 상황으로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이 어이없는 독특함입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의 한가운데엔 이나영이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이나영은 이처럼 멜로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결코 평범한 멜로엔 출연을 하지 않은 특이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나영의 이러한 이력에 [아는 여자]는 연장선안에 있습니다. [아는 여자]의 이연은 [후아유]의 인주와 [영어완전정복]의 영주, 그리고 TV 드라마인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이라는 캐릭터를 섞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연이라는 캐릭터는 편안함을 줍니다. 익숙함에 의한 편안함. 그것이 이나영이 [아는 여자]에서 발휘한 매력이며 그녀만의 색깔입니다.
2. 정재영 - 새로움에 의한 독특함.
정재영이라는 배우를 말하기전에 그의 외모를 먼저 보셔야합니다. 투박하고 거칠은 그의 외모는 어떻게 저 얼굴로 영화 배우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그가 멜로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고 했을땐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잘생긴 배우도 많은데 왜 하필 정재영일까?
[킬러들의 수다]의 카리스마넘치는 킬러 재영, [피도 눈물도 없이]의 무자비한 건달 독불, [실미도]의 684부대 대원 상필... 정재영은 지금까지 그 외모와 걸맞은 거친 배역을 맡아 연기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아는 여자]에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3류 야구선수 동치성으로 나옵니다. 동치성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사랑이란게 뭘까?'라는 질문에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장진 감독은 잘생긴 얼짱 배우들을 전부 제쳐두고 정재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의외로 적중했습니다.
이나영이 익숙함에 의한 편안함이라면 정재영은 새로움에 의한 독특함입니다. 이나영이 그녀의 전매특허인 특유의 연기로 [아는 여자]를 예쁘게만 포장된 멜로 영화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그녀도 이런 엇비슷한 배역이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까지 합치면 벌써 4번째입니다. 아무리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독특한 멜로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주 반복되다보면 오히려 이나영에 의해서 [아는 여자]는 평범해질 위험이 있었던 겁니다. 장진 감독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위한 구원투수로 정재영을 선택한 겁니다.
정재영의 투박한 외모는 오히려 [아는 여자]는 특별한 멜로 영화로 만듭니다. 그가 멜로 영화, 아니 그와 비슷한 그 어떤 영화에도 출연한적이 없다는 사실은 정재영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아는 여자]는 결코 평범한 멜로 영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재영은 여기에서 한술더떠 자신의 숨겨진 멜로 영화적인 재능을 발휘하기까지합니다. 그의 투박한 외모에서 품어져나오는 부드러움은 전혀 예상치못했기에 더욱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출연했던 이전 영화에서의 강렬한 이미지는 동치성이라는 캐릭터와 겹쳐지며 멜로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는 드물게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게합니다. 부드러움과 강렬한 카리스마. 이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는 정재영이라는 배우에 의해 효과적으로 분출됩니다. 결국 정재영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못한 독특한 색깔로 관객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깁니다.
3. 장진 - 상반된 두 배우를 이용한 장진식 사랑에 대한 정의.
가장 멜로적인 여배우 이나영과 가장 멜로답지않은 남배우 정재영. 이 두배우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절묘했습니다. 멜로 영화속에서 익숙함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이나영과 정재영의 만남. 하지만 이렇게 상반된 두 배우는 자칫잘못하면 영화를 엇박자로 이끌어나가는 위험요소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진 감독의 연출력은 이 두배우의 연기를 잘 조화시킴으로써 위험요소를 피해 완벽한 멜로 영화로 만듭니다.
장진 감독...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등 그야말로 기발한 영화만을 만들었던 그가 연출한 멜로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장진이 만든 멜로 영화는 그답게 기발합니다. 비록 평범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나영과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조합도 기발하고, 멜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사랑'에 대한 해석 또한 기발합니다. 장진 감독은 '사랑이 뭐 별거 있나! 낯선 남녀가 만나 이름물어보고, 취미물어보고, 그러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사랑이지'라고 멜로 영화답지않게 담담하게 말합니다. 사랑에 커다란 의의를 두고 있는 치성과 첫사랑의 남자를 위해 그의 주변을 빙빙 도는 이연이라는 사랑에 목매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도 이 영화는 이처럼 사랑에 대해 담담합니다.
이러한 담담한 장진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영화속 영화를 통해 '사랑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외치는 우리 멜로 영화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합니다. 멜로 영화였다가 갑자기 액션 영화로 바뀌고, 멀쩡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쓰러지고 난데없이 전봇대가 두 사람의 사랑을 전해주는 치성과 이연이 함께본 영화를 두고 치성은 '일관성없는 말도 안되는 영화'라고 비꼽니다. 요즘 우리 멜로 영화들이 코미디와 최루성 멜로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비현실적인 환타지에 안주하는 것을 장진식 언어로 이야기한겁니다. (왠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생각나는 군요.)
사랑을 지키기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살해한 한 여자의 에피소드에서는 장진 감독은 담담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좀더 설득력있게 관객에게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녀의 집착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진 감독은 사랑이라는 것이 목숨을 걸만큼 대단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영화들이 '사랑이란?'이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 영화처럼 독특한 방법으로 현실적인 대답을 해준 영화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야! 사랑이 뭐 별거야!'
IP Address : 218.39.52.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