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주연 : 데니스 퀘이드, 제이크 길렌할
개봉 : 2004년 6월 3일
관람 : 2004년 6월 5일
[투모로우]는 전형적인 썸머시즌용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등 스토리보다는 스펙타클에 더 심혈을 기울이기로 유명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거대한 재난 영화는 엇비슷한 썸머시즌용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그렇듯 '스토리가 없는 멍청한 영화'라는 비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재미있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투모로우]에 원했던 것은 짜임새있는 스토리 라인이 아닌 거대한 스펙타클이었으니 말입니다.
1. 언제나 그렇듯 스토리는 없다.
매번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개봉할때마다 어김없이 쏟아지는 비난입니다. 물론 스토리가 살아있는 잘만든 블럭버스터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블럭버스터들은 스토리를 거의 배제한채 스펙타클 보여주기에만 연연합니다. 특히 썸머시즌에 개봉되는 블럭버스터들에서 그러한 경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스펙타클을 위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중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더라도 그러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계생명체의 지구 침범'이라는 간단한 소재만으로 거대한 스펙타클을 만들어낸 [인디펜던스 데이]가 그러했습니다. 일본에서 창조된 '고질라'를 헐리우드적인 소재로 발전시킨 [고질라]는 [인디펜던스 데이]보다 심한 경우입니다. 아예 'Size does matter'(문제는 크기)라고 대놓고 주장한 이 영화는 기대만큼의 흥행 실적을 올리지못함으로써 아무리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라도 스토리를 너무 심하게 무시하면 실패한다는 교훈을 남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는 스펙타클보다 스토리를 위주로 만든 [패트리어트 - 늪속의 여우]라는 이례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멜 깁슨과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조합이라는 엄청난 기대와는 달리 평범한 흥행 실적을 고려해볼때 관객들은 여전히 그의 영화에 스토리보다는 스펙터클을 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투모로우]는 너무 스토리를 무시해서 실패했던 [고질라]와 너무 스토리에 치중해서 실패했던 [패트리어트]의 교훈을 발판삼아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고질라]와 [패트리어트]의 중간 지점을 자신의 대표작인 [인디펜던스 데이]와 비교적 스토리에 충실했던 미미 레더 감독의 재난 블럭버스터 [딥 임팩트]에서 찾아 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보다는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딥 임팩트]보다는 정교한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투모로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토리 라인은 부실해보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영화는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2. 언제나 그렇듯 '팍스 아메리카'를 외친다.
[투모로우]의 오프닝씬은 넓은 남극의 빙하를 하늘에서부터 유유하게 담아내던 카메라가 결국 펄럭이는 성조기를 담아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시작부터 성조기가 나오니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전에 '팍스 아메리카'를 과도하게 부르짖음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먼저 떠오릅니다.
솔직히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이미 그러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UFO를 향해 전투기를 타고 용감하게 돌진하던 미국 대통령을 보며 '해도해도 너무 한다'라는 식의 푸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인디펜던스 데이]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이 영화가 허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SF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그 상상력이 미국의 영광으로 귀결되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외치는 '팍스 아메리카'는 [진주만]이나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미화하며 완성해낸 공허한 외침과는 분명 틀립니다. 최소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있던 사실을 훼손하지는 않으니말입니다.
[투모로우]는 전형적인 SF영화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제 2의 빙하기가 온다면'이라는 상상력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분명 과학적인 근거가 희박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자유로운 상상력속에서 만들어진 만큼 과학적인 근거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상상력을 얼마나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영상으로 옮기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의 '팍스 아메리카'는 최소한 제겐 별로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 2의 빙하기를 피해 멕시코로 불법 입국하는 장면에선 헐리우드 영화로선 드물게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과감함마저 보입니다. 결국 [투모로우]의 '팍스 아메리카'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관객을 겨냥해서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비교해서는 더욱 똑똑해진 셈입니다.
3. 언제나 그렇듯 해피엔딩으로 끝이난다.
지구에 빙하기가 몰어쳐왔을때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은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투모로우]에서 재현된 제 2의 빙하기때엔 인류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과오를 깨닫고 다시 일어설 것을 약속합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침범했던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그랬습니다. 외형상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희망을 찾아내고 그 작은 희망을 해피엔딩으로 연결시켰습니다. [고질라]에서도 그랬죠. 도저히 처치 불가능할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괴물 고질라는 결국 인간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함으로써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귀결됩니다.
미국의 관객들이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흥행을 위해 만든 블럭버스터는 그러한 관객의 입맛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트로이]처럼 비극으로 끝을 맺는 블럭버스터도 있지만 [트로이]에서마저도 파리스와 헬렌의 탈출을 허용함으로써 완전한 비극으로 영화를 끝맺음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투모로우] 역시 뻔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끝맺음합니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같은 무시무시한 추위속에서 일련의 사람들은 죽음을 극복하고, 아들을 구하기위해 아버지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길을 떠나 아들 구출에 성공합니다. 너무 뻔하다고요? 하지만 그러한 뻔함은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이기에 용서가 되는 겁니다.
[투모로우]는 정말 너무 뻔한 전형적인 썸머시즌용 블럭버스터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토리보다는 스펙타클한 영상이 먼저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팍스 아메리카'를 은근히 내세우며, 언제나 그렇듯이 뻔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런 뻔함속에서 썸머시즌 블럭버스터는 이래야한다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전략은 적중합니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특수효과의 향연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으며, 얼음으로 뒤덮힌 미국의 모습은 더위를 잊게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면 새로운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솜씨는 여전하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뻔한 감동은 [인디펜던스 데이]의 뻔뻔스러운 감동보다 휠씬 나아졌습니다. 썸머시즌 블럭버스터 영화가 어떠해야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투모로우]같아야 한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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