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권택
주연 : 조승우, 김민선
개봉 : 2004년 5월 21일
관람 : 2004년 5월 19일
불과 1년전만해도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인 CGV를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영화관람비를 처음으로 인상한 곳이 바로 CGV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않아도 영화비가 너무 많이들어 고민이었는데 CGV에서 영화비를 올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CGV에서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답니다.
하지만 결혼을하고 신혼집을 낯선 곳에 차리고보니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이 바로 목동 CGV더군요. 게다가 조조로 영화를 보면 오히려 다른 극장보다 영화비가 휠씬 절감된다는 사실까지 알게되어 이젠 CGV 멤버쉽 카드까지 만들어놓고 목동 CGV를 열심히 애용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며칠전 CGV에서 리콜 시사회를 한다며 제게 참석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왔습니다. 영화 사이트도 아니고 극장에서 별도로 시사회를 진행하다니... 조금 놀래긴 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시사회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무렵 오히려 참석을 허락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먼저 오더군요. 게다가 시사회 당일엔 핸드폰으로 안내 메세지가 3번이나 왔답니다. 이렇게까지않해도 기쁜 마음으로 시사회에 참석할텐데 조금 오버한다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시사회표를 받은 구피는 샴푸와 비누가 담긴 선물 세트까지 받았다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고, 팝콘과 콜라 무료 쿠폰까지 나눠줘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는 여유까지 부렸답니다. 시사회 시작전에는 CGV사이트에 좋은 의견을 남긴 3명의 회원을 따로 뽑아 데이비드 카터필드의 마술쇼 무료 티켓을 나눠주기도 했고(구피는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서 거의 쓰러질뻔 했답니다.)우연치않게 그날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겐 외식 상품권까지 선물로 주더군요.
이 정도면 거의 감동 수준입니다. 역시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체인은 뭐가 틀려도 틀리더군요. CGV의 슬러건이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이라는데, 그날 저는 확실하게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느꼈답니다. 앞으론 열심히 CGV를 좋아하렵니다. (그래서 다음번엔 데이비드 카터필드 마술쇼 티켓 탈렵니다. 아참! 그땐 마술쇼 안할려나? ^^;)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입니다. 임권택 감독... 그 이름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 영화계의 거목인 그의 영화이니만큼 [하류인생]은 당연히 봐야할것같은 위무감과 너무 무거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하나라는 피하고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들게 만든 영화이기도합니다.
솔직히 저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의 최고 흥행작인 [서편제]는 지루했고, [장군의 아들]도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창]은 불편했고, [춘향뎐]은 판소리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최근작인 [취화선]은 조금 괜찮았는데 [취화선] 역시 임권택 감독때문이 아니라 최민식의 연기 때문에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그런 제게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이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연출변을 남겼다고는해도 역시나 꺼려지는 영화임에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한번 믿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99편의 영화를 만든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의 영화에 영화적 재미를 흠뻑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장군의 아들]이 만들어진지 벌써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만큼 [하류인생]은 최소한 [장군의 아들]보다는 14년이라는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은근히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류인생]은 지금까지 제가 봤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중에서도 (99편중 제가 본 영화는 고작 12편뿐이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물론 가장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개벽]등의 영화는 거의 졸면서 봤지만 [하류인생]은 최소한 졸립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전의 기대치에 비례하여 영화의 만족도를 측정한다면 [하류인생]이 가장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개벽]등의 영화는 별다른 기대를 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치에 비례한 만족도를 측정한다면 꽤 높은 편입니다. ^^)
[하류인생]에서 제가 실망한 부분은 바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최태웅(조승우)의 인생역정을 너무 단편적으로 끊어서 표현한 스토리 라인입니다. 이 영화는 1950년후반 이승만 정권 말기에서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 초반 군사정권 유신시대까지 최태웅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다룹니다. 뭐 여기까진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가슴뭉클한 이야깃거리가 될테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류인생]이 풀어내고 잇는 이야깃거리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 4.19 혁명,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시작인 1961년 5.16군사정변 등 우리나라의 주요한 현대사를 일렬로 나열해놓고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듯 임권택 감독은 기억의 단편들을 에피소드화합니다. 하지만 그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데엔 실패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최태웅이라는 캐릭터 역시 단편적입니다. 그는 처음엔 객기를 부리는 고등학생이었다가, 다음 장면에선 폭력조직의 똘마니로 변하더니,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사채업자의 해결사, 영화사의 제작부장, 군납회사 간부, 군납회사 사장으로 시대적 상황이 바뀔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시대를 건너뛰며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만을 보여주듯이 최태웅 역시 캐릭터의 일관성 없이 당시 상황에 맞는 캐릭터의 성격을 건성건성 건너뛰며 보여줄뿐입니다.
차라리 20여년이라는 너무 많은 세월의 간극을 보여주지 말고 하나의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보여줬더라면 더 일관성있고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짧은 영화의 러닝타임안에 우리나라의 얼룩진 현대사를 모두 보여주겠다는 욕심으로 너무 무리하게 영화를 이끌어나갑니다.
임권택 감독의 욕심은 영화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결말로 영화를 끝내는 실수마저 자초합니다. 에피소드를 일렬로 나열하다보니 일관된 스토리연결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결국 어정쩡한 결말로 이어진 것입니다. 영화가 영화가 끝나고 이것이 정말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지 의심이갈 정도였습니다.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 그리고 그 속에 부각되지 못하는 영화속 캐릭터들... 그 속에서 조승우라는 젊고 유망한 연기자 역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저는 조승우를 좋아합니다. 그의 데뷔작인 [춘향뎐]을 봤을때부터 임권택 감독이 괜찮은 신인 배우를 발굴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와니와 준하]를 보고는 결국 그의 신선한 연기와 마스크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곽재용 감독도 [클래식]을 연출하며 그러한 조승우의 가능성을 봤기때문에 조인성의 출연분을 줄이면서까지 조승우를 부각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하류인생]에서의 조승우는 예전처럼 신선하지도 않았으며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지도 못합니다. 이 영화의 단편적인 에피소드에 끌려다니며 그의 연기마저도 단편적으로 끊어집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주인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영화는 재미있어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승우는 이 영화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단편적인 시대적 배경에 시종일관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연기만을 펼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최태웅이 아닌 시대적 배경이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조승우는 배경을 압도되어 버립니다. 조승우라는 젊은 배우에겐 아직 시대의 아픔을 연기할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한가봅니다.
그에비해 김민선은 괜찮은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쉬움을 남깁니다. 김민선이 연기한 최태웅의 아내 박혜옥은 최태웅처럼 격정의 시대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도 않은채 묵묵히 최태웅의 곁을 지킬 뿐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박혜옥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속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김민선의 가슴을 기습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의 흥행에 간접적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이것이 임권택 감독이 이야기한 '재미있는 영화'인지 궁금해지더군요.
임권택 감독은 권력에 기생하며 살았던 우리 모두 하류인생이었다며 지난 세월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때문인지 묵직했던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단편적이면서도 가벼운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하류시대를 살아야했던 하류인생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위해선 영화도 하류로 찍어야한다고 생각했다면 [하류인생]은 분명 그 기획의도에 충실한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획 의도가 아니라면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 최초의 하류영화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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