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두영
주연 : 이동준, 은서우, 김혜리, 임호, 스티븐 시걸
개봉 : 2004년 5월 21일
관람 : 2004년 5월 18일
이동준... 저는 이 배우에 대해서 감회가 남다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저와 이름이 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그가 오현경과 함께 '야망의 세월'(제목이 맞나 모르겠습니다)이라는 드라마에서 재벌 2세 역할을 했을때 저는 친구들에게 곧잘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제 여동생의 이름이 현경이고, 누나의 이름은 현정입니다. 그 당시엔 고현정과 오현경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무릅이니 저희 3남매와 이름이 같은 배우들이 한창 잘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미팅을 나가면 이동준 연기 흉내와 한동준의 노래로 분위기를 띄음으로써 여자아이들에게 절대 제 이름을 잊지 못하게끔 만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이동준은 그 이후 몇편의 실망스러운 영화와 함께 조용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동준마저 신곡 발표를하지 않음으로써 저와 이름이 같은 연예인의 계보는 끊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스의 [클레멘타인]광고를 본 것입니다. 헐리우드의 B급 액션 스타인 스티븐 시걸과 함께 버스의 광고판을 장식하고 있는 이동준의 얼굴을 보며 전 정말 놀랬답니다. 조용히 사라진줄 알았던 그가 언제 헐리우드에 진출했나하고... 하지만 그가 헐리우드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스티븐 시걸이 우리 영화에 출연한 것이더군요.
그 이후 저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영화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과연 이동준은 어떠한 모습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컴백을 할 것인가? 이미 시사회를 통해 [클레멘타인]을 본 관객들의 평이 전부 악평 일색이었어도 제 호기심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동준의 출연 사실만으로도 [클레맨타인]은 분명 제 학창시절의 향수를 자극했으니까요. 하지만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넘쳐나는 썸머시즌에 [클레멘타인]을 돈내고 보기엔 조금 망설여지더군요.
그러다가 드디어 [클레멘타인]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미 [옹박]의 게릴라 시사회에 당첨이 된 저는 [옹박]과 같은 날짜에 [클레멘타인]의 게릴라 시사회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입니다. [클레멘타인] 게릴라 시사회에 응모하려면 [옹박]의 시사회를 포기해야 합니다. [옹박]의 경우는 이미 헐리우드와 차별되는 새로운 태국의 액션 영화로 네티즌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는 영화였기에 포기하기 아까운 영화였지만 그렇다고 [클레멘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접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고민끝에 [옹박]을 포기하고 [클레멘타인]을 선택했죠. 하지만 그런 제 선택은 몇시간후 처절한 후회로 이어졌습니다.
[클레멘타인]을 연출한 김두영 감독의 전작은 [주글래 살래]라는 특이한 제목의 코믹액션영화입니다.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해(볼 계획도 없지만...)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국어문법을 파괴한 제목만으로도 저는 20대 젊은 신인 감독일것이라 단정지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클레멘타인]도 약간은 허술하지만 그래도 젊은 감성이 살아있는 액션 영화일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는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클레멘타인]은 마치 70년대 멜로 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복고풍의 영화였던 겁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김두영 감독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50대의 중견 감독이더군요. 그는 마치 70년대 멜로 영화를 회상하듯이 [클레멘타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70년대풍의 멜로 영화... 사실 그것은 비난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만큼의 간격은 관객의 입장에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년대 빅히트한 멜로 영화인 [엄마없는 하늘아래]라던가, [미워도 다시 한번]를 30여년이 지난 어느날 극장에서 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고전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영화를 본다면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클레멘타인]은 30여년전의 영화도 아닐뿐더러, 관객들 역시 70년대풍의 복고 멜로 영화를 기대하고 온것도 아닙니다. 분명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저처럼 화끈한 현대 감각적인 액션일 겁니다.
이동준과 스티븐 시걸, 이 두배우의 존재가 그러한 제 헛된 기대감을 부추긴 겁니다. 하지만 태권도 세계 챔피언을 3회나 거머쥔 이동준과 장 끌로드 반담과 함께 헐리우드의 B급 액션 영화의 간판인 시티븐 시걸이라는 이름을 내건 영화에 어찌 화끈한 액션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관객이 잘못된 기대를 한 결과가 아닌 제작진이 관객들에게 잘못된 기대감을 부추긴 결과이며, 관객의 기대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의 무능력 탓입니다. 김두영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각본까지 맡았으니 더욱 할말이 없겠네요.
[클레멘타인]에서 특히 실망스러운 사람을 한명대라면 이동준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름인 동준을 버리고 준리라는 엉뚱한 이름을 크레딧에 올린 것부터가 맘에 들지 않더니만, 태권도 세계 챔피언이라는 명성이 아까울 정도로 무거워진 몸매와 둔탁해진 액션은 그에 대한 제 관심마저도 빼앗아갈 정도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이 영화는 액션 영화가 아닌 멜로 영화로 보는 것도 이동준의 액션이 워낙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사투리를 써가며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은 가상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배우의 노력만으로 영화의 재미를 느낄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의 연기력이야 어차피 기대할것도 별로 없었지만 액션마저도 실망스러울줄이야...
이동준의 액션 연기에 대한 실망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며, 이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이 가장 기대를 많이 걸었던 스티브 시걸과의 마지막 한판 대결에서 극에 이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태권도 세계 챔피언이었다는 이동준과 언제나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전세계에 고정팬을 거느리고 있는 스티브 시걸의 한판승부는 누가뭐래도 빅이벤트임에는 분명합니다. 게다가 스티브 시걸이 시시한 악당 연기에 그칠 배우는 아닐테니, 지금까지의 어이없는 복고풍 멜로를 한방에 날려버릴 뭔가 화끈한 액션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객의 기대 역시도 몇분되지도 않는 짧은 라스트 액션씬앞에서 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동준과 스티븐 시걸의 마지막 액션씬이 어이없게 끝나자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불만을 꾹 참고 묵묵히 관람하던 많은 관객들의 술렁거림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더군요. 영화를 보며 나오던 어떤 분의 이야기처럼 '마지막 한방이라도 멋있었다면 모든 것을 용서했을텐데...'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제 옆에서 영화를 보시던 여성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많이들 우시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울면서도 자신들이 이 어이없는 영화에 울고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운지 서로를 쳐다보며 웃으시더군요. 마치 울면서 웃는 듯한 이상한 풍경이 연출되었답니다.
이 이상한 풍경을 연출시킨 장본인은 다름아닌 9살된 아역 배우 은서우의 연기입니다. [폰]으로 얼굴을 알린 이 당찬 아역 배우는 [클레멘타인]에서도 능청스러운 연기로 유치한 영화의 분위기에 당혹스러워하는 관객들을 울리고 웃깁니다. 이동준보다도 더 능수능란한 사투리 연기와 앞니가 전부 빠진 귀여운 외모로 눈둘곳을 잃고 헤매는 관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더니만, 마지막엔 리얼한 눈물연기로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관객의 눈에서 눈물을 빼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클레멘타인]이 관객을 울린 것이 아니라 은서우라는 아역배우가 관객을 울렸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상 관객들은 눈물을 흘린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코웃음을 칠 뿐입니다. 하지만 9살의 어린 배우 은서우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자 영화에 코웃음을 치던 관객들마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정말 굉장한 광경이었죠.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자신이 울고 있다는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당혹스러운 웃음 소리가 시사회장을 가득 메우더군요. 물론 은서우가 '클레멘타인', '캔디캔디'등 노래를 부르던 장면은 너무 오버였지만 어찌 그것이 은서우의 잘못이겠습니까? 어이없는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잘못이지...
결국 [클레멘타인]은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드라마는 70년대풍으로 시대착오적이며, 김보성, 임혁필을 기용한 코미디는 느닷없이 튀어나와 영화의 분위기만 깨놓는 악영향만 끼쳤습니다. 김두영 감독이 이 영화에서 잘한 것은 은서우라는 아역 배우 캐스팅뿐이니... 이만하면 올해 개봉된 우리 영화중 최악의 영화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쓸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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