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우마 서먼, 데이빗 캐러딘, 마이클 매드슨, 대릴 한나
개봉 : 2004년 5월 14일
관람 : 2004년 5월 15일
드디어 [킬빌 Vol.2]를 봤습니다. 작년에 [킬빌 Vol.1]를 극장에서 놓친 후 두고두고 후회를 했었는데... 그래서 [킬빌 Vol.2]만은 극장에서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었는데... 결국 어렵게 그 결심을 이루어 냈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킬빌]은 원래 한편의 영화였으나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어쩔수없이 2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두편의 [킬빌]은 각각 한편의 영화로 취급할 수 있는 다른 속편 영화들과는 다릅니다. 마치 [킹덤]처럼, 그리고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처럼, 두개의 [킬빌]은 따로 떨어뜨려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한편의 영화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킬빌 Vol.2]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먼저 [킬빌 Vol.1]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킬빌 Vol.1]은 마치 액션 영화의 종합 선물 세트같은 영화였습니다. 처음부터 브라이드(우마 서먼) 결혼식장의 처참한 대학살 장면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마치 무한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자극적이면서 현란한 액션씬의 향연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그 방식도 다양하여 그린(비비카 A.폭스)과의 결투는 평화로운 미국의 중년층 가정을 무대로 감각적인 액션씬으로 이루어 졌으며, 오렌 이시(루시 리우)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오렌과의 최후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헌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킬빌 Vol.1]에서 관객에게 그냥 이 다양한 액션 선물 세트를 즐기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에게 제시하는 설정이라고는 단지 브라이드가 결혼식장에 빌(데이빗 캐러딘) 일당에 의해 철저하게 짋밣혔으며 이제는 그 복수를 하려한다는 것 뿐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거부한채 단지 액션씬만을 풀어헤칠 뿐입니다. 그렇기에 [킬빌 Vol.1]은 시각적인 쾌감이 대단한 영화이지만 스토리가 상당히 부족한 영화였습니다. 복수라는 것은 단지 복수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수라는 그 자체는 상당히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기에 그 스토리와 함께 복수가 어우러졌을때 관객들은 복수의 쾌감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킬빌 Vol.1]이 시각적인 쾌감을 위해 스토리를 상당 부분 포기했다면 [킬빌 Vol.2]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킬빌 Vol.2]는 관객들이 [킬빌 Vol.1]를 보며 궁금해했던 이야기들을 비로서 풀어 놓습니다.
[킬빌 Vol.2]는 브라이드의 친절한 상황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전편인 [킬빌 Vol.1]이 생략했던 드라마적인 부분을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액션씬이 전편에 비해 상당 부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한 전편과의 차이점은 영화 전반적인 부분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장의 대학살씬의 경우, [킬빌 Vol.1]은 모든 것을 생략하고 피투성이가 된 브라이드를 비춥니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단 한발의 총성으로 짧막하게 끝내버립니다. [킬빌 Vol.1]의 결혼식장 대학살씬은 브라이드가 빌 일당에게 복수를 결심하게된 원인이 되기도 한 중요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당 부분을 생략해버리고 브라이드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짓습니다. 하지만 [킬빌 Vol.2]는 처음부터 꼼꼼히 상황을 설명합니다. 결혼식장의 대학살은 알려진대로 결혼식이 아닌 결혼식 리허설이었다는 설명부터 시작하여 브라이드와 빌의 대화씬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도착하는 4명의 킬러들... 조금 지나치게 길다고 느껴질 정도로 결혼식장 대학살 장면이 길게 펼쳐지지만 막상 4명의 킬러들에 의해서 처참한 대학살 장면은 생략되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결투씬도 이 두 영화가 한편의 영화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 다릅니다. 오렌 이시 일당과 브라이드의 결투씬으로 이루어진 [킬빌 Vol.1]의 클라이막스는 국내 심의에서 짤려나갈 정도로 처참함 그 자체입니다. 무더기로 덤벼드는 오렌 이시의 '죽음의 88인'들의 육체가 잘려나가고 여기저기에 피가 난무합니다. '헤모글레빈의 시인'이라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별명에 걸맞게 피가 화면 가득 채워집니다. 물론 곧바로 이어지는 눈내리는 정원에서의 오렌 이시와의 결투 장면은 감각적인 면이 돋보였지만, 그보다도 '죽음의 88인'씬의 그 처참한 액션씬은 [킬빌 Vol.1]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었습니다.
그에비해서 [킬빌 Vol.2]의 빌과 브라이드의 마지막 결투씬은 관객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제목 자체가 '킬빌'이기에 빌을 죽이는 마지막 결투야말로 이 영화가 추구하는 최고의 클라이막스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빌과 브라이드는 클라이막스답지 않게 대화로 시작하여, 짧게 결투하고, 우아하게 마무리짓습니다. 오히려 빌과의 결투씬보다도 그 이전의 전반적인 드라마 부분을 강조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약 [킬빌 Vol.1]의 시각적이 쾌감에 이끌려 [킬빌 Vol.2]를 선택한 관객이라면 그렇기에 상당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편과는 전혀 다르게 액션에 그리 많은 비중을 두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킬빌 Vol.1]이 드라마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실망하신 분이라면 [킬빌 Vol.2]는 정말 나무랄데없는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이 두 영화는 서로 같은 한편의 영화이면서도 서로 완벽하게 다르며, 그럼으로써 서로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이상적으로 수행해 냅니다.
제 개인적으로 [킬빌 Vol.1]보다 [킬빌 Vol.2]에 더 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시각적인 쾌감의 면에서 [킬빌 Vol.1]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멋진 음악과 함께 이루어지는 잔인한 액션씬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능력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이전 영화들을 그리 재미있게 보지 못했기에 그가 왜그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빌 Vol.1]은 뭔가가 부족했던 영화였습니다. 브라이드가 처참한 복수의 길을 나섰지만 너무 많은 스토리가 생략된 나머지 도대체 브라이드와의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브라이드가 복수를 완성해가는 장면에서 복수의 쾌감보다는 시각적 쾌감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킬빌 Vol.2]에 이르러서 드디어 복수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브라이드와 빌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됨으로써 단순한 시각적 쾌감에서 벗어나 그들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에 동감하며 감정이입을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제가 보기엔 [킬빌 Vol.1]은 박찬옥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비슷하다면, [킬빌 Vol.2]는 [올드보이]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쿠엔틴 타란티노가 심사위원장으로 임명된 칸 영화제에서 박찬옥 감독의 [올드보이]가 경쟁부분에 선정되어 쿠엔틴 타란티노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복수는 나의 것]이 잔혹한 복수에 대한 장면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던 것과는 달리 [올드보이]는 드라마적인 부분에 치중했던 것에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수가 끝난 후 속시원한 쾌감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아픈 여운이 남는 것도 [킬빌 Vol.2]와 [올드보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일 겁니다.
어쩌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복수의 허무함을... [킬빌 Vol.1]이 복수를 향해 무한질주하는 액션으로 영화를 시종일관 끌고갔지만, 그가 막상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킬빌 Vol.2]에서 복수를 마치고 울부짓는 브라이드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점에서 [킬빌]은 단순한 액션 영화에서 벗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고의 영화라고 자부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진정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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