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D.J. 카루소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에단 호크, 키퍼 서덜랜드
개봉 : 2004년 4월 15일
관람 : 2004년 4월 15일
요즘 저희 집은 또다시 비상경계령 발령중입니다. 지난 1월에 제가 2주간 실직했을때 내려졌던 비상 경계령이 이번달 제 월급이 60%만 지급되며 다시 발령된겁니다. 저희 집은 비상 경계령이 발령되면 제일 먼저 외식을 줄입니다. 왠만하면 집에서 밥을 먹어야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외출도 줄어듭니다. 먼 곳으로 외출을 하면 자연스럽게 외식을 해야할 상황이 발생되니 외출을 자제함으로써 외식을 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거죠. 그리고 신용카드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를 하며, 더불어 신용카드로 영화 예매를 하는 것도 중지됩니다. 제가 비상경계령이 발령되면 제일 괴로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돈내고 영화 보기 중단'. 상황이 이렇게되면 저는 영화를 보기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합니다. 물론 시사회 당첨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죠. 특히 제가 기대하고 있던 영화가 개봉할때는 그 영화의 시사회에 당첨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로 감나무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멍청한 행동입니다.
[테이킹 라이브즈]... 정말로 제가 기대했던 영화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 영화인데다가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았고, 오랜만에 에단 호크의 말끔한 모습도 볼 수 있으니 제겐 놓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맥스무비 시사회 소식을 듣고 저는 시사회에 당첨되기 위해서 맥스무비의 시사회 당담자에게 애교섞인 협박 메일을 보내는등 정말 별의별 치사한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공정한 우리의 맥스무비 시사회 담당자에겐 그런 치졸한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죠.
그때 저희 회사에서 사원들의 생일날 문화 상품권 만원권 2매를 선물로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일은 1월 14일이지만 주민등록증상 생일은 4월 15일이죠. 저는 그것을 빌미로 4월 15일이 제 생일이라고 버럭버럭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희 회사 동료들도 제 생일이 1월 14일인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 처지가 불쌍했던지 속는셈치고 문화 상품권을 주더군요. 문화상품권을 들고 목동 CGV에서 조조할일과 통신사 카드 할인까지 받아서 결국 5천원에 [테이킹 라이브즈]를 예매했답니다. 만원권 문화상품권을 내고도 5천원을 거슬러 받았고 아직도 문화상품권 만원이 남았으니 이런식이라면 3편의 영화를 더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결국 구피는 '졌다'라는 표정으로 영화를 향한 저희 불꽃튀는 집념에 백기를 들었죠. ^^;
[테이킹 라이브즈]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양들의 침묵]이후 스릴러 영화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엽기적인 살인범과 그 뒤를 쫓는 미모의 FBI 요원이 등장하며, 몇번의 반전과 관객을 향한 함정을 이용해서 관객들의 뒷통수를 치려고 벼르는 아주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대와는 달리 성공적인 스릴러는 되지 못했습니다. 성공적인 스릴러라면 관객과의 두뇌 싸움에서 이겨야할텐데, [테이킹 라이브즈]는 전혀 관객들을 압도하지 못합니다. 또한편의 분위기만 그럴싸한 실망스러운 스릴러가 나온 셈입니다.
1. 안젤리나 졸리... 그녀의 연기에 실망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바로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했던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의 연기입니다. 제가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배우로는 드물게 카리스마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청순함을 무기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위노나 라이더의 연기를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본 콜렉터]에서는 덴젤 워싱턴과의 연기대결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줬으며, [오리지날 씬]에서는 카리스마와함께 섹시함마저 갖춤으로써 영화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과는 달리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의 이름을 확실히 제게 각인시켜 줬습니다. 남들은 모두 뻔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라고 욕했던 [툼 레이더 1, 2]마저도 제겐 안젤리나 졸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액션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런 안젤리나 졸리가 다시 스릴러의 여주인공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솔직히 [본 콜렉터]에서의 안젤리나 졸리는 멋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했습니다. 가슴속 갚은 곳에 상처를 지닌채 어쩔수없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도나위라는 캐릭터는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를 표현하기에 부족했던 겁니다. 저는 [테이킹 라이브즈]야말로 안젤리나 졸리를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의 위치로 올려줄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테이킹 라이브즈]의 일리나는 충분히 그럴만한 캐릭터로 보였던 겁니다.
하지만 영화속 일리나는 제 기대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일리나는 냉정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강인한 모습보다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진 연약한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안젤리나 졸리의 최악의 영화로 뽑는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이후 최악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마지막엔 어느정도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되찾지만 사랑앞에 울고 웃는 그녀의 나약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제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냉철한 수사력을 발휘하며 사건을 멋들어지게 해결하기보다는 시종일관 범인에게 끌려다니며 나약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일리나를 보며 영화를 보는내내 한숨과 실망감만 밀려왔었답니다.
2. 넌 공포 영화가 아니란다.
[테이킹 라이브즈]를 보다보면 여성 관객들의 비명 소리를 여러번 듣게 됩니다. 물론 스릴러 영화는 어느정도 공포 영화와 비슷합니다. [고티카]처럼 공포 영화인지, 스릴러 영화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영화도 여러편 존재합니다. 하지만 [테이킹 라이브즈]의 문제는 스릴러다운 스릴을 관객에게 선사하지 못하고 음산한 음악과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체들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엽기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테이킹 라이브즈]를 보며 분명 깜짝 깜짝 놀라지만 그 장면이 지나고나면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관객을 놀라게 하려면 그것은 심리적인 공포를 이용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차'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정교한 장면들만이 스릴러 영화에서 관객들을 놀라게할 자격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테이킹 라이브즈]는 전통적인 공포 영화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산한 음악이 흐르고 깜깜한 모텔방에서(도대체 왜 불은 켜지 않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수색을 하고 있는 주인공, 그때 천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얼굴이 일그러진 시체... 이쯤되면 분명 여성 관객들은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저는 이쯤에서 시체가 튀어나올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시체가 나오는 장면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사건의 진행과 전혀 상관없는 단지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위한 단순한 장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되면 '이게 뭐야'라는 푸념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스릴러 영화는 공포 영화보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합니다.
[테이킹 라이브즈]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관객을 놀라게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좀더 치밀한 장면들과 그에 어울리는 심리적 공포를 관객에게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공포는 당장은 관객들의 비명을 얻어낼 수 있을테지만 스릴러 영화의 치밀함엔 흠집만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D.J. 카루소 감독은 알아야 할것입니다.
3. 투명한 스릴러??? 그건 절대 자랑이 아니다.
제가 출근하며 보는 아침 무료 신문에서 [테이킹 라이브즈]의 단점을 '범인이 누군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투명한 스릴러 구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투명한 스릴러... 왠지 멋진 말처럼 들릴테지만 스릴러 영화에 있어서 투명하다는 말은 '맥빠진'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스릴러 영화는 최대한 불투명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너무 모든 것을 막아버린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영화가 될테지만 너무 투명해버리면 스릴러 영화의 맛을 모두 잃어버리는 맥빠진 영화가 되고 마는 겁니다. 잘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면 투명과 불투명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관객들에게 스스로 사건을 해결할 최소한의 단서만 남겨둔채 가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테이킹 라이브즈]는 너무 투명합니다.
아무리 스릴러 영화에 약한 관객이라도 이 영화에 승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스릴러 영화를 몇편만 보았다면 [테이킹 라이브즈]의 전통적인 속임수에 넘어갈 관객은 거의 없을 겁니다. [테이킹 라이브즈]는 처음부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속임수로 관객과의 두뇌싸움에서 이기려 덤빕니다. 처음엔 이 속임수가 너무 뻔해서 뭔가 다른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테이킹 라이브즈]는 점점 뻔해지기만 할뿐 전혀 새로운 반전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테이킹 라이브즈]가 자신만만하게 내세운 마지막 반전은 첫번째 반전과 비교한다면 조금 새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관객의 뒷통수를 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결국 [테이킹 라이브즈]에게 [본 콜렉터]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와 스릴러의 탄탄한 구성을 기대했던 저는 오히려 [본 콜렉터]때보다 몇단계나 뒷걸음질친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와 헐리우드 스릴러의 한계만 보고말았습니다. 영화속 범인들은 점점 엽기적이고 치밀한 완전 범죄를 꿈꾸는데, 정작 영화는 그와 반대로 완벽한 스릴러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니...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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