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최동훈
주연 : 박신양, 백윤식, 염정아
개봉 : 2004년 4월 15일
관람 : 2004년 4월 1일
[아홉살 인생] 시사회이후 무려 2주동안이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극장으로 달려갈만큼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주중엔 야근과 주말엔 갑자기 감기에 걸린 웅이 때문에 집에서 꼼짝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많게는 두번 이상 꼬박꼬박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2주일 동안이나 극장에 가지 못하니 온몸이 근질근질 거리더군요. 그러던차에 맥스무비에서 [범죄의 재구성] 시사회가 당첨이 된겁니다.
올해들어서 수많은 시사회에 당첨이 되었지만 이번 [범죄의 재구성] 시사회 당첨은 그 어느때보다도 기뻤답니다. 오랫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못본 탓에 극장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절 설레이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개봉 예정작중에서 최고 기대작으로 꼽을만한 [범죄의 재구성]을 개봉하기전에 먼저 극장에서 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겁니다. 게다가 [범죄의 재구성]의 감독이신 최동훈 감독의 무대 인사까지... 감동이었습니다.
웅이는 여전히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고 장모님은 그런 웅이를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시지만 철없는 아빠인 저는 구피를 꼬셔 극장에서 룰라랄라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그래도 아빠라고 그 자그마한 녀석이 힘들게 기침을 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더군요. 어여 웅이가 커서 같이 손잡고 영화 보라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웅이가 영화보는 것을 싫어하면 어쩌죠? 이거 걱정되네요. ^^;
[범죄의 재구성]은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미 [자카르타]가 한국식 범죄 스릴러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고, [범죄의 재구성]은 그 가능성위에 성공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를 탄생시킨 셈입니다.
[범죄의 재구성]은 여러모로보나 성공한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깔끔한 화면과 스피드한 전개, 배우들의 명연기와 안정적인 스토리 라인이 공존하는 이 영화는 헐리우드의 성공한 범죄 스릴러 영화인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과 비교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범죄의 재구성]은 충분히 박수 받을만 합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같은 토속적인 스릴러와 [올드보이]같은 이국적인 스릴러 모두 골고루 발전하기를 원하는 스릴러 영화의 팬으로써 이 영화의 아쉬운 점 몇가지를 지적하겠습니다. 듣기좋은 한마디 칭찬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쓴소리가 휠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범죄의 재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들의 명연기입니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톱스타인 박신양이 지금까지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건들거리는 양아치 최창혁과 도저히 박신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한 몰골의 최창혁의 형 최창호를 연기함으로써 완벽에 가까운 연기 변신을 보여줬으며, [지구를 지켜라]에서 주인공 신하균보다 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던 백윤식의 카리스마 넘치느 연기와 [장화, 홍련]에서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던 염정화의 섹시한 연기, 게다가 이문식, 천호진 등 든든한 조연들이 뒤를 받쳐주기까지 하니 이 영화의 출연진은 과히 드림팀이라 불릴만 합니다.
최동훈 감독은 이러한 드림팀 배우들을 갖추어놓고 철저하게 분업화를 시킵니다. 박신양과 백윤식이 영화의 기둥을 이룰 카리스마 대결을 펼치는 동안 이문식, 천호진 등 수많은 조연 연기자들이 너무 딱딱해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꿀만한 코미디 연기를 펼치고, 염정아는 섹시한 연기로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이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줍니다. 분명 각각의 배우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이 맡은 연기 분업화를 철저하게 수행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분업화에선 완벽했던 배우들의 연기가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따로 논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문식의 연기는 분명 웃깁니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 영화에서도 신선한 활력을 넣어줍니다. 하지만 이문식의 연기가 완전 범죄를 표방한 한국은행 사기극에 들어가는 순간 그 웃음은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을 헤치는 요인이 됩니다. 도대체 무엇하나 제대로 할줄 아는 것이 없는 그가 이 사기단에 끼어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염정아의 섹시한 연기도 이 영화속 사기극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섹시함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했지만 한국은행 사기극에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마지막 반전에 뭔가 엄청난 일을 해줄것이라 믿었던 관객들의 뒷통수를 오히려 내리칩니다. 그녀는 단지 섹시한 여캐릭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뭔가 위험한 팜므파탈적인 캐릭터를 기대했던 저로써는 오히려 서인경의 백치미는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수많은 든든한 연기자들을 갖추었지만 박신양과 백윤식만이 본 스토리의 주역으로 활동할뿐 나머지 캐릭터들은 영화의 잔재미를 위해 따로 연기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동훈 감독이 이 완벽에 가까운 연기 드림팀을 잘 활용해서 영화의 잔재미뿐만 아니라 기둥 스토리 라인과 마지막 반전에까지 활용했다면 더욱 완벽한 범죄 스릴러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거라는 아쉬움이 드네요.
스릴러 영화의 백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마지막 반전입니다. 정말 관객의 뒷통수를 칠만한 마지막 반전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스릴러 영화들은 전혀 말도 안되는 반전을 내세워 무리수를 두지만 진정한 스릴러 영화라면 아주 작은 하나의 반전만으로도 관객들을 충분히 충격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입니다. 이 두 영화는 충분히 관객들에게 반전을 맞출 기회를 줍니다. 이 영화의 반전들은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것들입니다. [식스센스]의 경우 이 영화를 두번 본 분이라면 이 영화가 얼마나 반전에 대한 힌트를 많이 줬는지 알게 될겁니다. 하지만 처음 본 관객들은 대부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것은 관객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인공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는 눈에 보이는 반전을 스스로 안보이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경우는 그 반대로 어리숙한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주인공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그 결과 반전을 스스로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마지막 반전의 호흡이 짧다는 것입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반전이 밝혀지고 그 반전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마치 관객에게 정신차릴 여유를 주지 않으며 그렇게 거세게 몰아부치는 겁니다.
하지만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반전은 호흡이 상당히 깁니다. 반전이 밝혀져도 영화도 한참 영화를 더 진행시키고서야 막을 내립니다. 그 사이 관객들은 반전에 대한 힌트들을 영화속에서 얼른 눈치채고 '뭐야 시시해'라고 말하는 겁니다. 반전의 마지막 호흡이 길다는 것은 마지막 반전 하나만으로 영화를 충격적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반전이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의 반전은 분명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많은 힌트와 복선들을 영화속에 깔아놓아 쉽게 반전을 눈치채게 만들었죠. 하지만 마지막 반전의 호흡이 짧았다면 그래서 그 마지막 반전 하나로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정도가 되었다면 이 영화는 휠씬 완벽한 범죄 스릴러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 영화의 장점을 말하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복잡할 수도 있는 범죄 스릴러를 무리없이 깔끔하게 처리한 스토리 라인도 수준급이었고, 오프닝씬의 차량 추격씬은 내가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30억이나 들었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하던 최동훈 감독의 그 수줍은 표정을 생각하며 '30억이 들만 하네'라는 답변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수십억이 돈이 도대체 어디에 씌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한국형 블럭버스터를 생각해 보세요. '30억이 들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성공한 셈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신인 감독으로는 드물게 정말 멋진 스릴로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아쉽다고 토로한 것들은 솔직히 다른 관객들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사소하면서도 제 개인 취향적인 것으로 정말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들은 영화를 봤던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동의했을 정도로 객관적인 겁니다.
이 영화를 보며 이제 우리 영화도 코미디 영화뿐만 아니라 스릴러 영화로도 헐리우드의 재미를 뛰어넘을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는 희망이 들었습니다. 최동훈 감독같은 젊은 감독들이 꾸준히 스릴러 영화에 도전한다면 그 꿈은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이루어 질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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