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재밌다.

쭈니-1 2009. 12. 8. 16:45

 



감독 : 강석범
주연 : 엄정화, 김주혁, 김가연
개봉 : 2004년 3월 12일
관람 : 2004년 3월 14일


일주일내내 회사 이전때문에 야근하고, 금요일엔 자기 전에 먹었던 바베큐 치킨이 채하는 바람에 토요일 늦게까지 늦잠을 자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화이트 데이 이벤트에 덜컥 당첨되어 토요일 하루종일 방에서 뒹굴거리려던 계획을 버리고 오후엔 홍대로 뮤지컬을 보러갔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파란만장하게 보내고 피곤에 찌들대로 찌들었지만 그동안 기대하고 있었던 [...홍반장]의 개봉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무리였지만 일요일 오전 9시 표를 예매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알람은 7시 30분에 맞춰놓고 피곤에 지쳐 정신없이 잠들었다가 상쾌한 아침 햇살에 눈을 떠보니 글쎄 시간이 8시 30분. 알람을 끄고 잠깐동안만 누워 있으려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어버린 겁니다. 구피와 세수도 못하고 옷만 걸친채 극장으로 달리고 달린 끝에 겨우 9시 정각에 도착 늦지 않게 영화를 봤지만 영화가 끝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목동 거리를 걸으려니 상당히 쪽팔리더군요.
구피는 '화이트 데이가 뭐 이래'라고 투덜거리고 일주일 동안 쌓인 피곤은 폭발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홍반장]은 재미있었답니다. 작년에 재미있게 보았던 [싱글즈]와 비슷한 꽤 고급스러운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싱글즈]와는 달리 도시가 아닌 정감있는 시골을 풍경으로한 이 영화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비교해서 언제나 똑같은 스토리에 똑같은 엔딩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안겨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홍반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귀엽고 예쁜 엄정화가 자신은 외계 별에서 온 공주라고 착각하며 사는 콧대 높은 치과 의사 윤혜진역을 맡았으며, [싱글즈]가 발견해낸 배우 김주혁은 능글맞지만 결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멋진 그러나 촌스러운 홍두식역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합니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혜진과 두식은 티격태격하며 서서히 사랑을 쌓아가고 결국엔 서로의 사랑을 인정합니다.
이렇게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늘어놓고보면 이 영화가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질정도로 식상해 보입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에 엇비슷한 캐릭터들의 행렬이 지겹기도하고, 눈에 뻔히 보이는 라스트 장면이 진부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뻔하지만 재미있고, 진부하지만 라스트 장면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수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영화속 캐릭터 바로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 엄정화와 김주혁의 공이며, 이 뻔한 로맨틱 코미디를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신인 감독 강석범의 능력입니다. 요즘 코미디의 주류인 그 흔한 조폭하나 나오지 않고(어설픈 동네 건달은 나오지만...) 웃기려는 것인지 관객의 비위를 상하게하려는 것인지 모를 화장실 코미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좋습니다. 주류 장르를 취했지만 요즘의 코미디의 경향을 따르지 않은 대담함. [...홍반장]은 그 긴 제목만큼이나 제게도 행복한 미소를 안겨 주었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의 재미가 단지 엄정화와 김주혁의 조화, 강석범 감독의 깔끔한 연출 실력 덕분일까요 물론 그러한 요소도 크지만 제가 느낀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한적한 시골의 포근한 풍경이 어우러진 편안한 웃음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영화들... 각박한 도시에서 휴식같은 시골 마을로 눈길을 자주 돌립니다. 제가 최근에 본 우리 영화인 [그녀를 믿지마세요]도 그랬고, [고독이 몸부림칠 때]도 그랬습니다. 이들 영화들은 지긋지긋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도시인들의 심리를 그대로 꿰뚫으며 영화속에서만이라도 잠시동안 시골 마을의 편안함에 쉬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홍반장]에서도 제 감정이 이입되는 캐릭터는 홍두식이 아닌 도시 여인 윤혜진입니다. 잘나가는 치과 의사였지만 너무 잘난 덕에 병원에서 쫓겨나고 도시의 병원 그 어디에도 갈 곳 없었던 그녀는 마치 운명처럼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합니다. 솔직히 혜진이 번듯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구질구질한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 못합니다. 영화속에선 너무 간결하게 그 과정이 스치듯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왜 바닷가 마을에 치과 병원을 개업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와 감정 이입이 되어 있는 그녀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들어왔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홍반장]은 여기에서부터 준비된 캐릭터인 홍두식을 등장시킵니다. 못하는 것도 없고, 모르것도 없는, 이 엉뚱한 캐릭터는 사사건건 도시 생활에 젖은 윤혜진을 못살게 굴며 시골 생활에 적응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횡포(?)가 밉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속 윤혜진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도 홍두식의 그런 생활 방식을 흠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번듯한 직업은 없지만 작은 소망을 조금씩 이루어 나가고, 부모님과 자신의 키워주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하며 외롭지 않게 생활하는 그의 삶은 번듯한 직장과 많은 사람들사이에 둘러쌓인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외로운 도시인들의 이상이었던 겁니다.


 



이 영화를 즐기면서 저는 홍두식이라는 캐릭터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싸움에 골프에 바둑까지 그야말로 못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엉뚱한 캐릭터는 과연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을까? 하지만 강석범 감독은 끝까지 그의 과거를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가 오픈한 홍두식의 과거는 윤혜진의 친구인 미선(김가연)이 조사한 것이 고작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뭔가 홍두식에 대한 충격적이면서도 감동적인 과거가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저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영화가 끝나자 조금은 허무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본다면 홍두식이라는 캐릭터는 과거가 필요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과거를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하며 홍두식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려 들었다면 어쩌면 시골 생활에서의 완벽한 이상적인 삶인 홍두식이 일상은 그 신비로움을 잃었을 겁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 편안한 휴식과 웃음을 전해주는 신비로운 캐릭터로 족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혜진과 두식이 와인과 소주를 마시며 술자리를 벌이는 장면이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급 와인을 우아하게 먹는 그런 삶을 꿈꿀 것입니다. 마치 혜진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소주 한잔을 편안하게 걸치는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도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성공을 꿈꾸지만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시골 마을의 편안한 휴식같은 삶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정말 힘들고 지칠때 홍두식같은 친구가 나타나 휴식같은 편안함을 안겨주길 바란다면 역시 욕심이겠죠? 도시 생활을 버릴 수 없는 불쌍한 도시인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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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머리속에 맴돌던 생각을 정리해주셧네요^^  2004/03/17   
쭈니 그랬나요? 전 남자님의 글을 보고 내 머릿속을 정리하여 글을 썼는데... 우린 상호 보완적이군요. ^^;  2004/03/17   
구피의꿈 시골로 내려가서 살까? 영화속 세트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정겹기까지 한 시골이 있다면 오늘이라도 달려가쥐...  2004/03/18   
쭈니 돈은 어떻게 벌고? 난 홍반장처럼 만능박사가 아야. 니가 농사지어서 날 먹여살려야해. ^^  2004/03/18   
미니로
영화속에서는 눈여겨 보지 못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와인과 소주를 마시던 탁자가 전선케이블 감아놓는 원통으로 보이네요.  2004/03/21   
쭈니 그러게요. 저도 미니로님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관찰력이 대단하십니다.  200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