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지영
주연 : 조재현, 손창민, 소이현, 이준
개봉 : 2004년 3월 26일
관람 : 2004년 4월 3일
요즘 제 문화생활은 이벤트 당첨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새로운 이벤트 소식이 없나 영화 사이트를 찾아보는 일이며, 시간이 조금 남는 점심 시간때는 본격적으로 이벤트에 뛰어들어 열심히 참가 버튼을 눌러댑니다. 실상이 이러하다보니 내가 어떤 이벤트에 응모했는지 전부 기억하지 못하며, 당첨 메일이 오지 않으면 이벤트에 당첨되고도 그 당첨 사실을 전혀 모르고 넘어가는 일도 있답니다.
며칠전 구피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쭈니야! 너 인터넷으로 뭐 주문하거 있어?"
"아니! 그딴거 없는데 왜?"
"우리 집으로 왠 시계가 니 이름으로 배달됐어! 니가 주문한거 아냐?"
"아닌데..."
시계가 집으로 배달된건 좋지만 나중에 시계값내라는 소릴 할 것같아 불안하여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구피가 무심코 제 이름으로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그것이 당첨되어 커플 시계가 배달되어 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계는 디자인이 영 촌스러워서 지금 저희 집 서랍안 깊숙히 처박혀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며칠후...
"쭈니야! 너 무슨 이벤트 응모했어?"
"이벤트? 수도 없이 많이 응모했지. 그런데 그건 왜?"
"집으로 [맹부삼천지교] CGV 티켓이 배달되어 왔어."
"[맹부삼천지교] 티켓???"
공짜 영화 티켓은 물론 좋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사용할 수 없으니 이번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예전에 '엔키노'에 [맹부삼천지교] 시사회에 응모했었는데 당첨이 되었지만 그 시사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시사회 대신 CGV 영화 티켓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 것입니다. 만약 예정대로 [맹부삼천지교] 시사회가 진행되었다면 당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저는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을텐데, 다행히 시사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공짜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암튼 이러한 이유로 예정에도 없던 [맹부삼천지교]를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목포는 항구다]가 개봉되었을때 저는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인 조재현이 조폭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흥행과는 별 상관이 없었던 조재현이 이젠 흥행에서도 재평가를 받아야하는 시기가 온 만큼 한편 정도의 조폭 코미디 영화 출연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달이 조금 지나고 [맹부삼천지교]가 개봉되자 [목포는 항구다]때보다는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싫어하면서도 조재현의 연기가 좋아서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싶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억지로 봤었는데... [피아노]라는 드라마를 보며 조재현의 연기에 한없이 가슴아파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었는데... 작년 [청풍명월]의 흥행 실패도 조재현보다는 최민수의 탓으로 돌리며 조재현을 두둔했었는데... [목포는 항구다]에 이어 엇비슷한 조폭 코미디 영화인 [맹부삼천지교]가 개봉되었을땐 제가 좋아하는 조재현이라는 배우가 이젠 한물간 조폭 코미디에 매달리는 별볼일없는 배우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맹부삼천지교]를 보자 제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목포는 항구다]는 보지 않았지만 [맹부삼천지교]에서만큼 조재현은 조폭 코미디라는 뻔한 장르에 기대지않고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지키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아낌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맹부삼천지교]는 분명 조폭 코미디입니다. 여전히 정감이 가는 조폭들이 나와서 마치 조폭은 악이 아닌 선인양 행동을 하며, 조폭 두목이 조폭 부하를 사정없이 때리고 구박하는 것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른 조폭 영화와 틀린 것은 조폭 코미디이면서 우리나라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조폭 코미디이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가슴아프게 보여줬던 [두사부일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맹부삼천지교]는 [두사부일체]보다는 오버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은 [두사부일체]보다 현실감있게 풍자합니다. 이것이 제가 조폭 코미디를 싫어하면서도 [맹부삼천지교]만은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분명 그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입니다. 중학생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보며 눈물을 흘렸었는데 제가 결혼을해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된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때와 비교해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맹부삼천지교]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죽은 아내에게 아들 사성(이준)을 서울대에 보내겠다고 다짐한 맹만수(조재현)는 그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가며 사성 뒷바라지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만수의 서울대에 대한 집착은 가만히 드러다보면 정말 어이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의 제일의 대학이 서울대이기때문에 막무가내로 사성을 서울대에 보내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성의 장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으며, 사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없습니다. 단지 배운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만수에게 그래서 고생고생하며 생선장수을 해야하는 그에게 서울대는 사랑하는 아들 사성을 위한 최선이며 최고인 것입니다.
김지영 감독은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의 웃지 못할 코미디적인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서울대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속에서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서울대라는 신기루의 환상속에서 허우적대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이러한 교육 현실속에 내던져진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슬픈 드라마로 포착했다면, [맹부삼천지교]는 이러한 교육 현실속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하는 방법을 몰랐던 우리 시대 부모들의 자화상을 코미디적으로 풀어나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맹부삼천지교]속의 만수의 오버 코미디 연기는 오버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김지영 감독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교육의 현실에 조폭 코미디를 끌어들임으로써 영화를 더욱 오버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속 조폭 코미디 역시 영화의 초반엔 조폭 코미디적인 웃음 코드로 흘러가는 듯하더니 어느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서서히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나라의 웃지못할 교육 현실속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을 연발하는 만수가 조폭 최강두(손창민)의 주류 장르적인 이야기마저 변화시킨 것입니다.
[맹부삼천지교]를 보고 있으면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웃을 처지인지 걱정이 먼저 밀려옵니다. 저 역시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이 영화속 맹만수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결혼을 하기 전에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겠다며 극성을 부리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보며 '대학보다는 아이들의 장기를 살려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된 지금은 제 아들이 대학에 안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과연 그러라고 말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가 그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고 사회에 나가 경력을 쌓겠다며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대학 졸업후 입사한 신입 사원의 급여가 고등학교 졸업후 경력을 쌓은 사원의 급여보다 휠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결국 뒤늦게 대학에 갔었습니다. 전 제 아들이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대에 목숨거는 [맹부삼천지교]의 맹만수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것입니다.
김지영 감독은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한 두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만수처럼 결국 자식이 원하는 일을 믿고 최대한 뒷바라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선택한 자식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최강두와 현경(소이현)처럼 우리나라를 떠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교육 현실이 가장 잘 되었다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것이죠.
이도저도 싫다면 영화 초반의 맹만수처럼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기위해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우리 교육의 현실이고 제가 조폭 코미디와 오버 연기로 가득 매워진 [맹부삼천지교]를 보면서도 제가 웃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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