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인 캠피온
주연 : 멕 라이언, 마크 러팔로, 케빈 베이컨, 제니퍼 제이슨 리
개봉 : 2004년 4월 30일
관람 : 2004년 4월 28일
[인 더 컷]은 여러모로 제겐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인 스릴러영화인데다가, [피아노]이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중 한명이 된 제인 캠피온이 메가폰을 잡았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명성을 높였던 멕 라이언이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개봉전부터 화제를 모았었죠. 도대체 [인 더 컷]은 어떤 영화일까? 이 궁금증이 영화를 보는 그 순간까지 절 괴롭혔습니다.
1.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라고 하기엔 너무 밋밋한 영화입니다. 하긴 제인 캠피온 감독이 스릴러를 만들었다길래 '이젠 여성의 문제에 대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관심이 조금 멀어졌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인 캠피온 감독은 역시나 스릴러라는 영화의 외형만을 빌렸을뿐 이전 영화들처럼 여성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해댑니다.
여성 토막 살인 사건이라는 위험한 사건에 휘말린 프레니(멕 라이언)가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르는 말로이 형사(마크 러팔로)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며, 이 영화는 살인에 대한 위협과 섹스에 대한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프레니의 내면을 충실하게 잡아냅니다. 그러는 동안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한없이 느릿하게 진행되고 감독과의 한바탕 치열한 두뇌 싸움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 느닷없는 느릿함에 당황하게 됩니다.
애초에 제인 캠피온 감독은 스릴러 영화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범인은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얼마든지 쉽게 추리해낼 수 있으며, 범인이 왜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동기조차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단지 프레니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위험한 살인 사건이 필요했을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쩌면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 여성의 성적 욕망을 그린 드라마라고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2. 멕 라이언의 노출 연기를 기대하지 말아라.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바로 멕 라이언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입니다. 제인 캠피온이라는 흥행성이 없는 여류 감독의 이름만으로는 일반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당길 수 없었던 이 영화의 수입사는 멕 라이언이라는 대중적인 스타의 노출 연기를 이슈화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케팅 전략은 어느정도 성공한 듯이 보입니다.
멕 라이언...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보니 그녀가 주연한 30여편의 영화중 로맨틱 코미디는 달랑 7편뿐이라는군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멕 라이언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프렌치 키스]등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귀여운 미소를 짓던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써의 멕 라이언의 모습뿐입니다. [도어즈]에서의 멕 라이언은 잘 기억조차나지 않으며, [남자가 사랑할때],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서의 멕 라이언은 너무나도 안어울렸었습니다. 그녀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한정된 장르안에서만 우리들의 스타였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번엔 아예 작정을하고 이미지 변신에 나섰습니다. 최근 그녀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케이트 & 레오폴드]의 흥행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 40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이젠 그녀를 옭아메는 감옥일 뿐입니다. 결국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으며, 죽음의 위험앞에서 욕망에 눈을 뜬 프레니라는 캐릭터는 멕 라이언이 선택한 이미지 변신의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멕 라이언의 파격적인 노출씬이라는 선전문구에 이끌려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이라는 분명 실망할 것입니다. 제인 캠피온은 여성 감독답게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여성의 육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분명 멕 라이언의 노출씬은 있지만 그 노출씬은 야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멕 라이언의 연기 변신에 휠씬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릅니다. 야한 연기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더 넘기 힘든 감옥이 될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3. 제인 켐피온 감독은 과연 [피아노]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10여년전 코아 아트홀이라는 작은 극장에서 혼자 [피아노]라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왜 [피아노]를 그것도 혼자 볼 생각을 했는지는 잘 생각이나지않지만 분명 깐느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영화의 타이틀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땐 영화광은 영화제 수상작을 의무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전 진정으로 영화광이 되고 싶었던 어눌한 20대초반의 청년이었고요. ^^) 깜깜한 극장에서 별다른 기대없이 본 [피아노]는 그러나 제게 가장 충격적인 영화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약한듯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에이다(홀리 헌터)라는 캐릭터에 매료되어 전 하염없이 스크린속에 빨려들어갈듯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피아노]를 본 후 가차없이 용돈을 털어 마이클 니만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담긴 [피아노]의 OST를 샀으며, [피아노]가 비디오로 출시될때는 손꼽아기다려 비디오 가게 아저씨에게 [피아노] 비디오 테잎을 구입할때 제것도 함께 구입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이후의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는 뛰어나긴 했지만 결코 [피아노]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피아노]이전 영화인(그러나 국내에선 [피아노]보다 늦게 개봉된...) [내 책상위의 천사]는 흥미롭긴 했지만 [피아노]처럼 강렬한 충격을 주진 못했으며, 니콜 키드먼과 손을 잡고 만든 [여인의 초상]은 아름답긴 했지만 [피아노]와 같은 강렬한 메세지를 남겨주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인 더 컷], 이 영화 역시 제가 보기엔 [피아노]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인 영화입니다. 멕 라이언의 연기 변신과 스릴러라는 장르의 힘을 빌려 완성한 여성의 감춰진 욕망을 표출시키는 연출력은 분명 제인 캠피온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피아노]에서 느꼈던 강렬함은 느껴지지않습니다.
[인 더 컷]... 스릴러 영화라고 하기엔 당혹스럽고, 멕 라이언의 연기 변신엔 성공적이며, 제인 캠피온 감독의 최고 영화라고 하기엔 약간 부족한 이 영화는 그래도 오랜만에 제인 캠피온의 연출의 힘을 느끼게 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고픈 불쌍한 절 조금은 달래준 영화이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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