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슈렉 2] -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쭈니-1 2009. 12. 8. 16:54

 



감독 : 앤드류 아담슨, 켈리 애스베리, 콘라드 버논
목소리 주연 :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봉 : 2004년 6월 18일
관람 : 2004년 6월 19일


제가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에서는 언제나 '멋진 왕자님과 어여쁜 공주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고 끝을 맺었었습니다. 순진했던 어린 시절엔 나도 그런 멋진 왕자가 되어 못된 마법사를 무찌르고 어여쁜 공주님을 구출하여 행복하게 오랫동안 사는 것을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이 세상엔 동화에서와 같은 멋진 왕자님도, 어여쁜 공주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갔습니다.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듯이 가끔(아니 자주) 드라마나 영화에선 동화속 이야기처럼 멋진 왕자님과 어여쁜 공주님이 말도 안되는 사랑을 이루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TV속, 영화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 비현실적인 행복을 볼때마다 지금의 내 현실이 너무 불행하게 보일 뿐입니다.
2001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해였습니다. 나만의 영원한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던 저는 하루하루를 끔찍한 불행속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제 더이상 제겐 행복따위는 없을거라며 비관에 가득찬 하루하루를 보냈었죠. 그때 제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초록 괴물 슈렉입니다.
동화책을 찢어서 화장실 휴지로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엽기적인 3D 애니메이션은 왕자, 공주 컴플렉스로 인하여 스트레스속에 빠져사는 현대인들에게 속시원한 한방을 날립니다. 이 영화속 왕자는 결코 멋지지 않으며, 공주 역시 여느 동화속 공주와는 사뭇 다릅니다. 슈렉이라는 흉칙한 괴물이 왕자를 제치고 공주를 차지하고 마지막에 마법이 풀린 공주는 어여쁘기는 커녕 슈렉처럼 흉칙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합니다. '못생기면 어때? 왕자가 아니면 어때? 그래도 난 행복한걸!'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전 실연의 아픔을 툭툭 털고 일어섰습니다. 비록 전 왕자처럼 멋지지도 않지만, 평생 나만의 공주일것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영영 떠나버렸지만, [슈렉]을 보고나니 그러한 일따위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몇달후 피오나 공주보다 백배, 천배는 이쁜 구피를 만났고, 생긴 것은 왕자이지만 하는 짓은 슈렉인 귀여운 웅이를 낳았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현실성 없는 왕자, 공주 이야기보다 동화를 뒤집고 패러디하는 엽기적인 괴물 슈렉이 성인이된 제겐 오히려 도움이 된겁니다.


 



엽기적인 초록 괴물 슈렉이 3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피오나 공주와의 행복한(그러나 엽기적인) 허니문 여행을 마치고 장인, 장모가 사는 겁나먼 왕국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완벽하게 뒤집으며 처음 등장한 [슈렉]도 속편의 법칙만큼은 뒤집지 못합니다. 3년만에 돌아온 [슈렉 2]는 전형적인 속편 영화의 모양새로 우리 앞에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전편보다 한층 다양해진 캐릭터들이 영화속에서 북적대며, 3년동안 발전된 3D 애니메이션 기술은 [슈렉 2]의 스케일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킵니다. 하지만 스토리 라인은 전편과 비교해서는 오히려 평범해진 느낌이 들며, 전편의 기발한 뒤집기도 [슈렉 2]에 와서는 많이 약해진 느낌입니다. 결국 규모는 커졌지만 영화적 재미는 작아지는 헐리우드의 악질적인 속편의 법칙이 [슈렉]마저 옭아맨겁니다.
[슈렉 2]에서 부쩍 늘어난 캐릭터들이 바로 이러한 속편의 법칙을 대변합니다. 전편의 숏다리 영주 파콰드(존 리스고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꽃미남 외모를 자랑하는 프린스 챠밍(루퍼트 에버렛)이 슈렉의 라이벌로 새롭게 부상하고, 뚜렷한 악이 부재했던 전편에 비해 [슈렉 2]에서는 요정 대모(제니퍼 손더스)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하여 완벽한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영화를 이끕니다. 개봉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장화신은 고양이(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수다쟁이 당나귀(에디 머피)와 더불어 슈렉의 모험에 양념 역할을 해냅니다. 이렇게 많아진 캐릭터들을 보며 뒤집기의 묘미를 보여준 [슈렉]조차도 속편의 법칙앞에선 어쩔수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전혀없습니다. 비록 [슈렉 2]이 속편의 법칙을 뒤집지는 못했지만 전편이 가지고 있던 유쾌한 패러디와 뒤집기 정신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전편이 동화 뒤집기의 진수라면 [슈렉 2]는 선과 악을 뒤집습니다. 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프린스 챠밍은 멍청하고 비열한 마마보이이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는 요정 대모는 자상한 미소속에 음흉한 음모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과 악을 뒤집은 이 영화는 외모지향적인 우리들의 선입견을 깨부숨으로써 오히려 속시원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신선한 충격으로 기억되는 [슈렉]과 비교한다면 [슈렉 2]는 어쩌면 평범한 애니메이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전편의 영화적 재미가 워낙 강력했기에 관객들은 3년동안 부풀어오를대로 부풀어오른 기대감을 안고 [슈렉 2]를 기다렸으며, 그러한 너무 거대해진 관객의 기대감과 속편의 법칙이라는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강적을 만난 [슈렉 2]는 다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서 뛰어난 영화적 재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에 비해 실망스럽다'라는 관객의 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아직 갖난 아기인 웅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웅이도 아름다운 동화를 듣고 보며 자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 아이들의 특권입니다. 세상의 근심 걱정에서 보호받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찬 동화속 세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특권. 하지만 아주 가끔은 아름다운 동화속 세계가 아닌 만만치않은 현실의 세계에서도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의지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아직 걷지도 못하는 웅이에게 어서 빨리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느낀 현실의 아픔만큼 웅이도 커가면서 느낄 것이기에 [슈렉]의 넉넉한 교훈은 분명 소중합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앞으로도 계속 [슈렉]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슈렉]의 새로운 속편이 만들어질때마다 어쩌면 [슈렉]은 속편의 법칙에 더욱 깊숙이 얽매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몇년후 웅이의 손을 잡고 극장에 앉아 [슈렉]을 보고 있을 생각을하니 벌써부터 행복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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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
전편에 비해 페러디의 강도가 높아졌고, 더욱화려해진 케스팅~
아쉬운점이라면 영화시간 92분이 너무 짧다는 거에요~
ㅜ.ㅜ
 2004/06/23   
쭈니 애니메이션에서 러님타임은 곧 돈과 직결하죠. 아마 그것이 90분이 넘는 애니메이션이 없는 이유일겁니다.  2004/06/23   
아랑
글서 만화영화는 다 짧구나...  2004/06/25   
쭈니 '아마' 이 부분을 주목해주세요. 그냥 제 추측이라는 이야깁니다. ^^;  2004/06/25   
어제 만난 아줌마가 그러더군요.
92분이라서 안봤다고.
대체로 120분이 넘어가면 허리가 아포소....영화보기를 조금 망설이게 되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터라...
왜? 라고 물었더니, 넘 짧아서 돈아깝쟈나....-ㅁ-;;;
역시 아줌마는 강했습니다!!!
암튼,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 흥미롭고 재밌는 슈렉투!!
역시 1편만큼 신나지는 않더군요~~
 2004/06/30   
쭈니 저도 예전엔 짧은 영화보다 긴 영화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긴 영화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망설여집니다.
영화는 110분정도가 제일 알맞은것 같습니다.
90분은 조금 짧긴 하죠. ^^
 2004/06/30   
ssook
전편만한 감동은 아니었지만.....이번것도 역시나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화신은 고양이]이가 기억에 남는데..
제겐 느끼함의 대명사격이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능글능글하면서도 귀여운 고양이 목소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었죠..
 2006/04/03   
쭈니 3편이 나온다면 아마 장화신은 고양이의 역할이 커져도 재미잇을듯 합니다. ^^  200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