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 같은 소재라도 감독의 역량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쭈니-1 2011. 12. 13. 08:00

 

 

감독 : 김태식, 박철수

주연 : 조선묵, 안지혜, 이진주, 오인혜

 

 

그 해 초여름, 장마가 시작될 무렵 선후배 감독이 만나면서 이상한 영화가 시작된다.

"인간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

김태식은 오래 묵혀온 자작 시나리오 바람 이야기 <XX바캉스>를 꺼내왔고 

박철수는 늘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애제자의 결혼주례를 모티브로 농담을 토해낸다. 

스스로 연기자 길을 포기한 프로듀서 조선묵을 만나면서 대화는 급진전되고...

하용수의 도움을 받아 캐스팅까지 빠르게 진행되었다...

 

VOL#1. XX VACANCE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처음 논의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짧은 영상과 자막으로 소개를 한 후 김태식 감독의 [XX 바캉스]를 꺼내 놓는 것입니다.

뭔가 새로운 시도... 그래서 영화를 보는 그 순간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을 이 영화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불편한 블랙 코미디

 

하지만 김태식 감독이 꺼내 놓은 [XX 바캉스]는 새로움 대신 불편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매우 평범합니다. 중년의 평범남 태묵(조선묵)에게는 뚱뚱하고 보잘 것 없는 아내 복순(이진주)과 아름다운 애인 희래(안지혜)가 있습니다. 하지만 태묵과 희래의 불륜 관계는 복순에게 들통나고 복순은 태묵과 희래에게 복수를 준비합니다.

김태식 감독은 '인간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펼쳐 놓습니다. 태묵과 복순, 그리고 희래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보아 왔던 불륜 드라마에서 단 한치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입니다.

대신 김태식 감독은 독특한 블랙 코미디로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캐릭터는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망가져있고, 에피소드는 과장되어 있습니다. 가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동물로 빗대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캐스팅도 김태식 감독이 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철저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 과한 블랙 코미디는 여자의 몸이, 남자의 몸이 얼마나 추할 수 있는지만 증명해 보일 뿐입니다. 그런 추함과 인간의 바람끼를 배치시키고 싶었던 것이라면 김태식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긴 한데,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철수는 조선묵의 교수 캐릭터 변신을 자신했고

신인 오인혜의 이미지에 만족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VOL#2. XX WEDDING

 

솔직히 김태식 감독의 [XX 바캉스]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과도한 블랙 코미디로 인하여 영화는 불편했고, 주제 의식은 겉돌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 실망할 때쯤 박철수 감독은 오인혜 카드를 꺼내듭니다.

부산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파격적인 노출 드레스를 입고 나와 이 영화의 홍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오인혜는 인간의 추함을 보여주면서 섹스에 몰두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그렸던 [XX 바캉스]에 한껏 불편해진 내 눈을 정화시켰습니다.

 

파격적인 내용 속에 담긴 불륜

 

[XX 웨딩]은 이야기 부터가 파격적입니다. 자신의 제자(오인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던 교수(조선묵). 그런데 그 제자가 결혼을 한다며 주례를 부탁합니다. 자신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제자의 결혼식, 그리고 그 앞에 선 자기 자신. 교수는 도덕적 양심과 신랑에 대한 질투심, 그리고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불안한 심리 상태에 치닫습니다.

영화는 그러한 교수의 심리를 흑백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다가 교수와 제자가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과거 장면에서는 칼러 화면으로 전환됩니다. 이러한 흑백과 컬러의 배치는 꽤 교묘했는데 오인혜의 아름다운 나신을 내세워 제자와 사랑에 빠진 교수의 달콤한 성적 타락을 그려냅니다.

불륜의 추함을 이야기했던 [XX 바캉스]와는 정반대의 화법인데  교수와 제자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고, 그들의 불안한 사랑이 지속되는 가운데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 펼쳐집니다. [XX 웨딩]의 마지막 장면은 꽤 여운이 남는데, 과연 당신이라면 그들의 사랑을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박철수 감독을 관객 앞에 내던져 놓습니다.

 

 

 

그들은 영화 엄숙주의, 영화 형식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김태식 감독도, 박철수 감독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그들은 '인간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스스로에게 그 질문의 답을 하기 위해 각자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태식 감독은 블랙 코미디 속에 불륜 관계에 빠진 세 남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냄으로서 섹스를 탐닉하는 인간의 짐승적인 내면의 추함을 잡아 냈고, 박철수 감독은 중년의 교수와 아름다운 제자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내면과 그러한 외로움 속에서의 관계, 즉 바람도 사랑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다시 관객에게 던집니다.

개인적으로 김태식 감독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박철수 감독은 80년대를 대표하는 멜로 영화 감독으로서의 이력과 90년대 [삼공일 삼공이]로부터 시작한 독특한 영화의 세계를 교묘하게 섞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창조해냈습니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같은 이야기라도 감독의 역량에 따라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 P.S.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평균 이하입니다. 조선묵은 연기 생활을 오래 쉬어서인지 연기가 조금 어색했고, 오인혜, 이진주, 안지혜의 연기도 그다지 특출나지 않습니다. 특히 [XX 웨딩]에서 신랑으로 나왔던 남자 배우의 연기는 재현 배우 수준임을 감안하시고 영화를 보셔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