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엘리어트 레스터
주연 : 제이슨 스타뎀, 패디 콘시다인, 에이단 질렌
또 제이슨 스타뎀이다.
'또 제이슨 스타뎀?' [블리츠]의 개봉 소식을 듣고 제가 처음 내뱉은 말입니다. 그냥 제 느낌인지 몰라도 제이슨 스타뎀의 영화는 국내에 줄기차게 개봉하는 듯합니다. 올해만 해도 [메카닉]과 [킬러 엘리트]가 개봉했으니 [블리츠]까지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개봉하였습니다. 할리우드의 그 어떤 스타 배우보다도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가 제이슨 스타뎀인 셈이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들 중에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그다지 없다라는 점입니다.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했던 [익스펜더블]을 제외하고는 그가 출연한 그 수 많은 액션 영화들 중에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으니 말입니다.
[블리츠]도 마찬가지인데, 액션 영화를 꽤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설정 자체가 너무 평범하게만 보였습니다. 그것은 [블리츠] 뿐만이 아니라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을 맡은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한데, 아무래도 냉혹한 킬러나 범죄자라는 캐릭터만 주로 맡은 제이슨 스타뎀의 고정화된 이미지가 영화 자체를 평범하게 만드는 듯 보입니다. [블리츠]에서 제이슨 스타뎀은 비록 범죄자가 아닌 경찰이지만 설정 자체가 범죄자나 다름없는 폭력적인 경찰 역이었고, '또?'라는 식상함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저를 지치게 하였습니다.
폭력 경찰과 두뇌적 연쇄살인마의 대결
[블리츠]는 톰 브랜트(제이슨 스타뎀)의 폭력으로 시작합니다. 거리의 부랑아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톰 브랜트. 결국 그는 그러한 폭력 성향 때문에 경찰 생활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신 감정을 맡고 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협박하듯이 말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 뿐이고, 만약 경찰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긴 영화의 초반 보여준 그의 모습은 그가 연쇄 살인마로 돌변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경찰만을 상대로 한 연쇄 살인이 벌어집니다. 자신을 '블리츠'라고 칭한 이 미친 연쇄 살인마는 신문사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앞으로 경찰 여덟명을 더 죽이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브랜트와 절친한 사이였던 동료 경찰 로버트마저 '블리츠'에게 살해당하며 분노에 휩싸인 브랜트와 '블리츠'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
폭력 형사와 두뇌적인 연쇄 살인마의 대결... 이 흥미진진해 보이는 대결을 위해서 [블리츠]가 갖추어야할 것은 치밀합니다. 힘으로만 따진다면 '블리츠'는 브랜트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블리츠'에겐 브랜트가 가지지 못한 영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리츠'가 두뇌적으로 브랜트를 농락해 나간다면, 그래서 브랜트와 '블리츠'의 대결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진정한 맞수가 된다면 [블리츠]는 영화적 재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블리츠'는 그다지 영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블리츠]는 그러한 치밀함을 갖추지 못합니다. 영화는 일찌감치 '블리츠'의 정체를 밝힙니다. 베리 바이스(에이단 질렌)는 교도소를 몇 번이나 다녀온 잡범이며, 당구장에서 브랜트의 폭력에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잡아들인 경찰들과 브랜트를 상대로 복수에 나선 것이죠. 뭐 좋습니다. 모든 스릴러 영화가 '범인 잡기 게임'에 몰두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블리츠'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바이스는 브랜트를 능가할 영리함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베리 바이스는 감정이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냉혹한 연쇄살인마는 아닙니다. 그는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지극히 감정적인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의 감정에 치우친 복수극은 그래서 허점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경찰이 좀 더 일찍 그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는 제가 흔히 봐왔던 무시무시하고 치밀한 연쇄 살인마하고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동료 경찰인 로버트가 살해당한 상황에서도 전혀 감정의 기복이 없는(캐릭터 자체가 그런지, 제이슨 스타뎀의 연기력이 그 따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랜트가 더 연쇄살인마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박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사람과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여러분은 누가 더 무섭나요? 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결국 그러한 까닭에 브랜트와 바이스의 대결은 애초부터 한쪽으로 치우치고 말았습니다.
법으로 안되면 폭력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바이스는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는 되지 못합니다. 자신이 예고와는 달리 달랑 세 명의 경찰만 죽였을 뿐이고, 네번째 경찰의 살인 시도에선 주변의 방해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마저 저지릅니다. 그런 그의 어리숙함은 영화의 중반 브랜트와 내쉬(패디 콘시다인)에게 붙잡히며 당연한 결과를 맞이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납니다. 치밀하지 못한 그의 범죄를 본 터라 그가 흘린 증거가 수두룩할 것으로 보이는데 [블리츠]는 바이스가 너무 치밀해서 증거가 없다며 어거지를 씁니다.
문제는 그러한 어거지는 브랜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결말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폭력적인 브랜트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차분한 성격의 내쉬가 이전에 했던 행위를 복선으로 깔은 다음에, 브랜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결말을 펼쳐 놓은 것입니다. 너무 뻔해서 힘이 탁 풀려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젊은 시절 게리 올드만을 연상하게 하는 에이단 질렌의 연기는 인상적이었지만 무표정한 제이슨 스타뎀의 무차별한 폭력을 압도하기엔 부족해 보였으며, 영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경찰인 폴스라는 캐릭터는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을 방해합니다. 그나마 요즘 [삼총사 3D], [신들의 전쟁]으로 뜨고 있는 루크 에반스의 예상하지 못했던 등장만이 반가웠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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