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슬리핑 뷰티] - 무엇을 위한 자학적 에로티즘인가?

쭈니-1 2011. 11. 30. 11:04

 

 

감독 : 줄리아 리

주연 : 에밀리 브라우닝, 레이첼 블레이크

 

 

리뷰쓸 때 가장 난감한 경우...

 

1990년부터, 그러니까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저는 영화를 보면 습관적으로 리뷰를 썼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쓴 리뷰를 보면 그냥 영화의 내용을 쭈욱 늘어 쓰고는 마지막에 '재미있었다,' 혹은 '재미없었다'라고 쓴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점차 시간이 지나갈 수록 왜 재미있었는지 혹은 무엇때문에 재미없었는지 자세하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영화 리뷰를 쓰다보면 조금 난감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입니다. 뭔가를 써야 하는데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라고 쓰자니 재미없는 이유라고는 '어려워서...'라는 것 밖에 없어 리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할지 난감해집니다.

 

[나인 송즈] 그리고 [슬리핑 뷰티]

 

올해 제게 그런 난감한 경험을 안겨준 영화가 딱 두 편이 있었으니 바로 [나인 송즈]와 지금 리뷰를 쓰려고 하는 [슬리핑 뷰티]입니다.  

[나인 송즈]를 보고나서 제 머리 속은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대개 영화를 보면 그 영화에 대해서 실망했던 점, 좋았던 점이 머리 속으로 주루룩 정리가 되는데 [나인 송즈]를 본 후에는 '당혹스럽다.'라는 느낌만 들 뿐이었습니다. 분명 제가 본 것이 포르노가 아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충격적인 실제 섹스씬 뿐이었거든요. 결국 저는 [나인 송즈]의 리뷰를 쓰기 위해 열심히 영화의 정보를 찾아서 읽고, 다른 분들의 리뷰를 참고하며 어렵게 [나인 송즈]를 정리하고 리뷰를 쓸 수가 있었습니다.

[슬리핑 뷰티]도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를 본 이후 저는 [나인 송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하여 스톡홀롬국제영화제,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였지만 저는 줄리아 리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 영화적 교양은 얕다.

 

이쯤에서 인정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워낙에 오락 영화만 편식을 하다보니 제 영화적 교양은 얕은 수준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나인 송즈]도, [슬리핑 뷰티]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보통의 일반 관객 수준이라고 한다면 이 두 영화의 감독이 평론가, 혹은 영화적 교양 수준이 높은 일부 관객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관객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슬리핑 뷰티]가 그러한데, 이 영화는 상당히 정적입니다. 영화 음악이 최대한 자제되었고,(장담은 못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영화 속에 배경 음악 따위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영화의 스토리 전개도 상당히 모호합니다. 게다가 캐릭터에 대한 설명마저 불친절하니 영화를 쫓아가기가 버거워집니다.

 

무엇을 위한 자학적 에로티즘인가?

 

그래도 [슬리핑 뷰티]에 대한 리뷰의 제목을 나름대로 지어본다면 '자학적 에로티즘'이라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루시(에밀리 브라우닝)는 가난한 여대생입니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학비와 방세를 내기에도 버겁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줄리아 리 감독은 그녀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치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무표정한 얼굴로 의미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모습만 비출 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루시가 높은 시급을 위해 상류층의 섹슈얼 파티의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것에 그 어떤 동정심도 유발되지 못합니다. 상류층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불쌍한 여대생? 제게 루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상류층의 섹슈얼 파티로 번 돈중 지폐 한 장을 불에 태우는 장면이나, 집을 얻기 위해 좀 더 시급이 좋은 '슬리핑 뷰티'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장면등에서 그녀는 사회적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인 동참자로 보였을 뿐입니다. 마치 스스로 상류층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루시의 울부짖음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캐릭터 설명에 불친절했던 줄리아 리 감독의 연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제가 루시라는 캐릭터에 공감을 느낄 만한 그 어떤 최소한의 장치도 줄리아 리 감독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으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 루시의 울부짖음이 뜬금없이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자기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납득이 안갔고(그녀의 무표정은 오히려 그런 자학적 상황을 즐기는 듯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깨어났을 때의 뜻밖의 상황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했던 루시가 한꺼번에 지제했던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써커 펀치]에 이은 에밀리 브라우닝의 묘한 매력은 돋보였지만 줄리아 리 감독이 저와 같은 관객을 위해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만 남았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