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에일리언 비키니] - 좀 더 과감한 막장이 필요해.

쭈니-1 2011. 10. 20. 10:26

 

 

감독 : 오영두

주연 : 홍영근, 하은정

 

 

제 2의 [지구를 지켜라]?

 

[에일리언 비키니]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또 한 편의 미국의 B급 SF 영화 한 편이 개봉되는 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포스터를 봤을 땐 중국 영화인가? 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이웃집 좀비]를 통해 한국 독립 영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제작사 키노 망고스틴의 두번째 영화더군요.

비록 [이웃집 좀비]는 보지 못했지만 그 순간 저는 은근히 [에일리언 비키니]를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B급 영화와 SF의 만남. 비록 할리우드 SF 영화처럼 정교하고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닐 것이 분명하지만 발랄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똘똘 뭉친 기존의 제도권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영화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저는 [에일리언 비키니]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제 2의 [지구를 지켜라]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한 엉뚱한 청년이 어느 중견 기업의 사장을 외계인이라 믿고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다룬 영화입니다. 비록 개봉 당시 관객들의 완벽한 외면을 받은 영화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저주 받은 걸작으로 자주 언급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과연 [에일리언 비키니]는 제 2의 [지구를 지켜라]가 될 수 있을까요?

 

[지구를 지켜라]와는 또 다른 맛을 내는 재기발랄함

 

1시간 15분이라는 상당히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진 [에일리언 비키니]는 그러한 짧은 러닝 타임 때문인지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초반에 오프닝에 배치하고, 곧바로 위기에 처한  모니카(하은정)를 영건(홍영근)이 구해주더니 곧바로 영건을 향한 모니카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모니카의 정체는 영화의 초반부터 숨기지 않고 까발려지고, 영건과 모니카가 함께 젠가 게임을 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진행을 위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합니다.

처음엔 그런 이 영화의 스피드한 전개가 좋았습니다. 종족 번식을 위해 영건의 정자가 필요한 모니카와 순결서약을 했다며 결혼하기 전까지는 정자를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영건이 벌이는 소동극은 적정한 수준에서 B급 영화의 발랄함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지구를 지켜라]처럼 사회 풍자성 드라마는 부족했지만 [지구를 지켜라]에는 부족했던 코믹한 설정으로 가득 채워져 나름 [지구를 지켜라]와는 또 다른 맛을 내는 한국형 B급 SF 영화의 재미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에일리언 비키니]는 갑자기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합니다.

 

영건이 변하자 영화도 변했다. (스포 포함)

 

초중반까지 액션, SF, 코미디의 짬뽕 장르를 과시하던 이 영화는 갑자기 호러 영화로의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버텨도 너무 버티는 영건에게 짜증을 느낀 모니카가 영건을 죽이려는 순간이 기점인데, 그 순간 영건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와 그런 학대를 못이겨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감춰진 악마적인 내적 부분이 튀어 나온 것입니다.

사실 영건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매력적인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도 순결서약을 지키겠다며 요염한 모니카의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 만큼은 참 매력적이었는데 그의 악마적인 부분이 튀어 나오며 그런 매력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니카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장면부터 피를 흘리며 죽은 듯 쓰러진 모니카를 강간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특히 영건이 모니카를 시간(屍姦 : 시체를 강간함)하는 장면은 이 영화 통털어 가장 어이가 없는 장면입니다.(그 와중에도 멀쩡히 속옷은 입고 있는 영건과 모니카.)

영화가 급변하고 급기야 자신의 정자를 취한 외계인과 영건의 장면이 이어지더니(영화의 오프닝 장면) 마지막에는 중국의 고서에 나온 신선들의 바둑을 구경하다가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몰랐던 어느 나무꾼의 이야기로 뜬금없이 마무리합니다.

그냥 액션, SF, 코미디로 끝을 냈어도 되었는데, 거기에 호러에 대한 욕심을 부리고, 그냥 마무리하긴 아쉬웠는지 뭔가 있어 보이는 중국의 고서까지 끌어들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한 욕심이었습니다.

 

좀 더 과감한 막장이 필요했다.

 

분명 [에일리언 비키니]는 기존의 제도권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B급 영화의 독특함을 자랑하는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B급 영화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일관성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에 갑자기 급변하는 영화의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그러한 일관성의 부족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초중반의 과감성도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어차피 18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라면 최소한 [스피시스] 정도의 노출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영건을 유혹한다면서 모니카는 꼬박꼬박 속옷은 챙겨 입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영건의 모니카 시간 장면조차도 속옷을 챙겨 입고 있는 것을 보며 영건과 모니카의 상황이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TV 코미디쇼를 보는 듯한 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초중반은 과감성이 부족했고, 후반에는 일관성이 부족했던 [에일리언 비키니]. 그래도 오랜만에 제도권 영화가 아닌 비제도권 영화를 보니 뭔가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새로움이 [지구를 지켜라]에서처럼 좀 더 찡한 감흥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