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행오버 2] - 내 안에의 악마가 꿈틀거린다.

쭈니-1 2011. 11. 1. 10:31

 

 

감독 : 토드 필립스

주연 : 브래들리 쿠퍼, 에드 헬름스, 잭 가리피아나키스

 

 

내가 소주를 끊은 이유

 

전 담배를 피우지 못하지만(안피우는 것이 아니라 못피우는 겁니다.) 술은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아니고 그냥 술 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술 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술을 마시게 되는데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내 주량을 잘 알고 있어서 적당히 취할 만큼만 스스로 조절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제 주량이 전부 채워지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필름이 끊기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저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의 이야기로는 겉보기에는 멀쩡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그로인하여 친구들과 다툼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지난 5월 소주를 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술 자리를 나가더라도 될수 있으면 맥주만 마시고 어쩔수 없이 소주를 마시게 되더라도 바짝 긴장을 하며 홀짝 홀짝 나눠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긴장을 하며 마시는 술 자리가 즐거울리가 없으니 요즘은 술 자리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했고요.

 

우리나라에는 먹히지 않는 제대로 필름 끊긴 녀석들

 

2009년 6월 5일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더 행오버]라는 낯선 영화가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 행오버]의 놀라움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려 9주간 10위권에 오르는 위력을 발휘하더니 미국에서만 누적  2억7천7백만 달러라는 흥행 대박을 기록했습니다. 스타급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총각 파티 도중 필름이 끊긴 세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국내 개봉은 무산되고 말았었죠.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제작사는 곧바로 2편 제작에 돌입했고 2011년 5월 26일 개봉한 [행오버 2]는 미국에서만 2억5천4백만 달러를 기록하며 역시 흥행 대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국내 개봉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봉 첫 주 9위라는 아쉬운 성적만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미국에선 열광중인 제대로 필름이 끊긴 녀석들의 소동담이 우리나라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결혼은 신성한 것이라는 우리나라의 인식으로서는 결혼 전 총각파티 문화를 미국식 화장실 섹스 코미디로 풀어나간 이 영화의 소재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1편과 다른 장소, 같은 진행

 

하지만 저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1편도 재미있었고, 2편도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최근 소주만 마시면 필름이 끊겼던 제 개인적인 경험담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재미있는 것은 1편은 라스베가스, 2편은 방콕이라는 장소로 차별화를 두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진행 방식이 비슷하더라는 겁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번에도 역시 괴짜 앨런(잭 가리피아나키스)이 다른 친구들 몰래 타 놓은 마약 때문이었고, 누군가는 또 실종되었으며(1편은 신랑, 2편은 신랑의 예비 처남), 방에는 어김없이 영문을 모른 동물 한마리가 있습니다.(1편은 호랑이, 2편은 원숭이) 소심한 스튜(에드 헬름스)는 역시나 가장 많이 망가지고 자신의 신체에 또 뭔가를 합니다.(1편은 이빨 뽑기, 2편은 얼굴에 문신새기기) 그리고 소동 이후 스튜가 자신을 억눌렀던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한방을 먹이는 것도 똑같습니다. (1편은 아내, 2편은 예비 장인)

어쩌면 저렇게 전편과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문화의 차이로 인해서 벌어지는 소동을 추가하며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된 속편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정도면 성공적인 속편이라도 평하고 싶네요.

 

내 안의 악마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 말도 안되는 소동극 끝에 스튜는 미지근한 쌀죽과도 같은 남자라는 예비 장인의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과감해집니다. 언제나 착하고 정형화된 인생을 살던 그는 1편에 이어 2편의 소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 깊게 자리잡은 억눌린 악마가 되살아 난 것이죠.

어쩌면 제가 술을 마시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좀 더 과감해지고 용감해집니다. 언제나 집과 회사를 오고가는 틀에 박힌 생활 속에 술은 그 틀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니까요. 그래서 다음날이면 숙취에 괴롭지만 어김없이 다시 술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술을 마시면 깨어나는 내 안의 악마를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 입니다. [행오버 2]처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점점 커지겠죠. 하지만 잘 제어를 한다면 분명 스트레스 탈출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주를 끊은지 이제 5개월이 지났습니다. 물론 지난 5개월 동안 맥주는 꾸준히 마셨고, 소주도 어른들이 권할 때 조금씩 마시긴 했지만.. 소주를 끊고 나니 친구들과의 술 자리도 끊게 되었고, 내 안의 악마도 밖으로 나올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착한 쭈니가 아닌 악마같은 쭈니도 그리워집니다. [행오버 2]를 보고나니 갑자기 소주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이유입니다.(구피가 알면 그딴 영화는 왜 봤냐고 펄쩍 뛰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