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나인 송즈] - 락 음악, 섹스, 그리고 순수의 땅 남극

쭈니-1 2011. 11. 3. 10:22

 

 

감독 : 마이클 원터바텀

주연 : 키란 오브리언, 마고 스틸리

 

* 주의 : 글 내용에 성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어 불쾌감을 줄 수 있음을 밝힙니다. 

 

혹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포르노 영화인가?

 

[나인 송즈]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제가 봤던 모든 제도권 영화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사실적인 섹스를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미국에서 온 21살 여자 리사(마고 스틸리)와 영국인 남자 매트(키란 오브리언)의 짧은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짧은 사랑이라고 표현을 하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강도 높은 섹스 뿐입니다. 그리고 리사는 미국으로 돌아가며 그들의 짧은 사랑은 이별을 맞이합니다.

물론 리사와 매트의 섹스 말고도 다른 장면들이 있긴 합니다. 그것은 리사와 매트가 함께 한 락 음악 콘서트 현장과(물론 매트 혼자 간 콘서트 현장도 있고, 락 음악이 아닌 마이클 니만의 60세 생일 공연도 있긴 합니다.) 리사와 헤어진 후에 갔을 것으로 추정된 매트의 남극 탐험 장면입니다.

그러나 락 콘서트 현장과 남극 탐험 장면은 제게 이미지만 안겨줬을 뿐, 그 어떤 스토리 전개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제게 이러한 이 영화의 방식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죠. '혹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포르노 영화인가?'

 

포르노 영화의 정의?

 

어떤 분은 남녀의 성기가 노출이 되면 포르노 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녀의 성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도권 영화들에게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연윤리위원회(1976년~1998년)라는 참 친절한(?) 가위질 기관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쉽게 접하지 못했을 뿐이죠.

일본 영화계는 내용이 있으면 영화, 내용이 없고 섹스만 있으면 포르노라고 정의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수 많은 일본의 포르노 영화들이 영화의 내용을 담음으로서 그러한 우스운 정의를 비껴갔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영화를 보고 흥분을 느끼면 포르노고 아니면 예술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실제로 삽입했으면 포르노, 삽입하지 않았으면 영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실제 삽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삽입을 했다면 그들은 연기가 아닌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죠.

하지만 [나인 송즈]를 보니 그러한 기준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 삽입이 나옵니다. 하지만 포르노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딱히 이렇기 때문에 포르노가 아니다 라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관객의 성적 환상을 채워주는 말초신경을 자극시킬 섹스의 연속이라는 포르노의 가장 기초적인 법칙에는 맞지 않은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섹스씬

 

처음 [나인 송즈]가 시작되고 곧바로 리사와 매트의 섹스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강도의 섹스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영화의 섹스씬은 점점 강도를 높여갑니다. 남녀의 성기가 노출되고, 구강 섹스 장면이 나오더니 급기야 마지막에 가서는 실제 삽입 장면이 나오고야 마는 형식입니다.  

제겐 [쥬드]라는 영화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안겨줬던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의 영화였기에 제게 포르노와 영화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의 충격을 안겨줄 강도 높은 섹스씬이 나올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애초에 이 영화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고 성기 노출 정도만 예상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화를 보고나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두 배우의 섹스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떤 이야기가 담긴 섹스가 아닌 그저 이미지만 열거된 단순한 섹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섹스를 통해서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이야기도, 주제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냥 포르노 영화가 아닐까요?

 

락 음악, 섹스, 그리고 순수의 땅 남극

 

영화를 본지 하루가 지났고, 여전히 저는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인 송즈]가 안겨줬던 섹스씬의 충격이 하루가 지나는 동안 조금은 벗겨지면서 [나인 송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음악과 섹스의 공통 분모인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쾌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음식과 섹스를 대비시킨 영화들은 꽤 많았습니다. 인간의 1차적인 욕구인 먹는 행위와 섹스를 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자손 번식을 할 수가 없죠.)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먹는 행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섹스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음란하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참 이중적인 잣대이죠.

음악과 섹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은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섹스는 자손 번식을 위한 행위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 행위입니다.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은 그런 음악을 듣고 즐기는 행위와 섹스를 하는 행위를 번갈아 보여주며 두 행위가 기본적으로는 같다라고 항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극 장면 역시 마찬가지인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수의 땅 남극의 이미지를 통해 음악과 섹스를 연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성인이라면 우리는 섹스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순수의 땅 남극처럼 지극히 순수한 행위이고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것이죠. 이것이 하루 동안 제가 [나인 송즈]를 곱씹으며 정리한 결과입니다. 역시 이야기는 없고 이미지만 나열된 영화는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