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검사]에 꽂히다.
토요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오천항에서 쭈꾸미 낚시를 하고 왔더니 주말 내내 컨디션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20대땐 며칠 밤새고 놀아도 하루 정도만 늦잠자고 나면 컨디션이 회복되었었는데, 이젠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난 것만으로도 주말 내내 비실거리고 있네요.
일요일 저녁. 원래는 영화 보기 딱 좋은 시간인데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저는 거실 쇼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축 늘어진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평소 보지 않았던 주말 연속극도 보고, 오랜만에 [개그 콘서트]도 보고, 그러다가 문득 '아! 오늘 [뱀파이어 검사]하는 날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번 일요일도 쇼파에 거의 쓰러져서 [뱀파이어 검사]를 봤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뱀파이어 검사]가 아니었다면 주말 막장 드라마 속에서 짜증 대폭발이 일어날뻔 했습니다. 진심으로 지상파의 주말 막장 드라마에게서 저를 구원해준 [뱀파이어 검사]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상파의 막장 드라마를 보다보면 정말 짜증 폭발로 TV를 부숴버리고 싶어지더라.
제2화 [죽음의 시나리오]의 요점은 현 한국영화 시스템의 문제 제기일줄 알았다.
제1화인 [프랑스인형이 있는 방]에서 [도가니]가 문제 제기를 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진 자들의 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뤘던 [뱀파이어 검사]. 제2화인 [죽음의 시나리오]의 예고편을 본 저를 이번에는 한국 영화 혹은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2화의 스토리 라인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감독의 살인 사건이고 유력한 용의자로 주연 여배우가 지목된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몇 달전 열악한 제작 환경과 연출진과의 불화로 현장을 이탈한 TV 미니시리즈 [스파이 명월]의 한예슬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배우와 감독의 불화는 지난 일요일 멍한 눈으로 봤던 [개그 콘서트]의 '최종병기 그녀'의 개그 소재로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는 문제이죠. 이번 [죽음의 시나리오]가 바로 그러한 것을 건드릴 것이라 기대한 것이죠.
하지만 [뱀파이어 검사]는 좀 더 거대한 문제를 건드렸습니다. [프랑스인형이 있는 방]에 비해 조금은 가벼운 소재일 것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시청하려 했던 저를 다시금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 정도로 과감한 문제 제기를 이번 [죽음의 시나리오]에서도 시도한 것입니다.
비키니를 입은 여인의 살인 현장를 담은 예고편.
그 과감한 영상만으로도 지상파 막장 주말 드라마와 차별화를 이루었다.
실화 영화에 대한 경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열악한 제작 환경과 그로 인한 감독과 배우의 불화라는 [프랑스인형이 있는 방]과 비교해서 가벼운 소재일 것이라 생각했던 제게 [죽음의 시나리오]가 던지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 제기는 바로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의 문제점입니다.
요즘 [도가니]가 사회적 이슈가 되며 조용히 묻혀질뻔 했던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적 무관심으로 더욱 큰 상처를 받았을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가해자 처벌, 그리고 관련 법령 개정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순기능이죠.
하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이다 보니 영화적 재미를 위해 픽션이 가미되었고, 그러한 픽션으로 인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욕을 먹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비단 [도가니]뿐만이 아닙니다. 몇 년전 개봉했던 [아이들...]의 경우는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영화 속에서 마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는 다른 매체보다 그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시나리오]는 [도가니]의 흥행 성공으로 인하여 앞으로 더욱 거세질 실화 소재 영화 제작 붐에 대해 일종의 섬뜩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 장르의 특성상 사건 해결의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
실제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지만
영화로 실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오만은 배제되어야 한다.
복수 그리고 의무
미제 사건을 영화로 통해서 진범을 밝히겠다는 감독의 오만이 불러 온 살인 사건. 그리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민태연, 유정인, 황순범의 활약상은 각기 캐릭터에 맞게 잘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비록 사건의 진실이 범인의 자수로 너무 허무하게 밝혀진 것이 아쉬웠지만 두번째 에피소드인 [죽음의 시나리오]를 통해 [뱀파이어 검사]는 한단계 진보된 재미와 흥미를 제게 안겨 줬습니다.
일단 앞에서도 언급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실화 영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좋았지만 그런 스토리 라인 속에 민태연 캐릭터를 좀 더 발전시키고, 그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벗기는 설정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제1화에서도 아주 잠깐 등장했지만 뱀파이어에 의해 살해된 듯한 민태연 여동생의 죽음.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과 검사로서의 의무에 갈등하는 민태연. 동생을 살인한 진범을 죽인 범인에게 '부럽다'라고 고백하고 법정에서 그의 죄를 비교적 낮게 구형하는 민태연의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던 민태연의 캐릭터가 좀 더 드러났습니다.
[뱀파이어 검사]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며 민태연의 갈등은 점점 더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복수와 의무 사이에서 방황하는 민태연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앞으로의 에피소드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검사의 의무.
민태연의 갈등은 [뱀파이어 검사]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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