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을 보고 반하다.
지난 11월 16일... 저는 OCN의 초대로 [특수사건전담반 TEN](이하 [TEN])의 제작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TEN]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조안을 비롯한 배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회사에 하루간 연차 휴가를 내고 참석하게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날 저를 사로 잡은 것은 새로운 여신으로 등극한 조안의 미모 외에도 제작발표회장에서 상영한 [TEN]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감각적으로 찍은 [TEN]의 예고편은 근래 TV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실적인 범죄 현장 장면과 세개의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치밀한 구성, 그리고 각각 서로 다른 소속이었던 여지훈(주상욱), 남예리(조안), 백도식(김상호)이 '특수사건전담반 TEN'에서 하나의 팀을 이루게 되는 사연으로 이루어져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날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3시간 정도 후, 2시간으로 편성된 [TEN]의 1화를 극장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시사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그 시사회는 신청을 하지 않는 바람에 볼 수 없었는데, 내가 왜 신청하지 않았는지 두고 두고 후회가 될 정도로 [TEN]의 예고편은 매력적이었습니다.
[뱀파이어 검사]와는 같은 듯 다른...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11월 16일은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저는 11월 18일 밤 12시에 첫 방영되는 [TEN]을 기다리게 된 것이죠.
금요일 밤이긴 했지만 토요일 아침 일찍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일찍 자야만 하는 상황. 그러나 저는 [TEN]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영화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고, [TEN]을 제작한 OCN의 또 다른 스릴러 [뱀파이어 검사]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저로서는 [TEN]은 [뱀파이어 검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스릴러에 대한 제 흥미를 채워줄 것이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일단 새벽 2시 30분까지 맥주 한 캔과 함께 집중력을 발휘하며 본 [TEN]의 첫 느낌은 [뱀파이어 검사]와는 비슷한 장르의 케이블 드라마이면서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뱀파이어 검사]와 비슷한 점부터 설명하면... 팀의 구성이 비슷합니다. [뱀파이어 검사]는 주인공인 민태연(연정훈)을 축으로 노련한 강력반 형사 황순범(이원종)과 신참 여검사 유정인(이영아), 그리고 팀의 막내(김주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TEN]도 마찬가지인데 팀의 구성이 너무 비슷해서 오히려 식상할 지경이었습니다.
개성강한 캐릭터와 엽기적인 사건의 만남.
[뱀파이어 검사]와는 팀 구성이 너무 비슷해서 [TEN]도 [뱀파이어 검사]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TEN]은 팀 구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뱀파이어 검사]와 확실히 차별화된 면모를 과시합니다.
우선 [뱀파이어 검사]는 뱀파이어가 된 검사라는 소재에서 드러나듯 판타지 영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초점은 민태연의 활약과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미스터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다른 사건으로 에피소드가 구성되어 있지만, 그러한 에피소드와는 별도로 민태연과 뱀파이어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전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민태연 외에 다른 캐릭터는 그저 민태연을 보조하는 것에 그치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TEN]은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은 여지훈이지만 그는 그저 [TEN]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남예리와 백도식은 여지훈을 보조하는 캐릭터가 아닌 그 자체로도 하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TEN]는 '1화 테이프 살인사건'에서는 여지훈은 물론 남예리, 백도식의 캐릭터 설명을 꼼꼼하게 해냅니다. 그들의 각기 다른 개성 만큼이나 서로 다른 수사 스타일에 극의 내용을 집중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이죠.
이렇게 각기 개성이 다른 세 캐릭터들은 서로의 개성에 맞는 세개의 사건을 맞게 되고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지면서 서로의 개성으로 각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팀 플레이를 선보입니다. 판타지에 가까운 [뱀파이어 검사]와는 또 다른 진정한 수사극인 셈이죠.
눈물을 위해서 치밀함은 포기했다. (이후 스포 포함)
하지만 이렇게 좋은 캐릭터와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테이프 살인사건'은 단점도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일단 '테이프 살인사건'은 고아인 쌍둥이 자매의 사연으로 보는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마지막 서로간의 배려와 희생으로 사건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장면에서 저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여기까지는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감동을 위해 '테이프 살인사건'은 치밀함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테이프 살인사건'에서 가장 큰 사건은 어느 호스티스의 살인사건입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 청테이프로 얼굴을 칭칭 감긴채 죽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7년전 미결 해결과 같은 방식의 살인 사건으로 경찰청에서는 살인마가 돌아왔다며 바짝 긴장을 합니다.
'테이프 살인사건'은 바로 이 부분에서 영특하게 연쇄살인마의 존재 가능성을 대두시키며 시청자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여기에 발맞춰 여지훈은 7년 전에는 손가락 절단이 없었던 살인 사건이 손가락 절단으로 발전한 것에 대해서 인상깊은 말을 합니다. '살인마가 더욱 강력해져서 돌아온 것이거나, 아니면 더욱 강력한 살인마가 나타난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모든 초점은 살인마의 등장으로 몰아 부치는 것이죠.
살인마의 등장? 그러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다.
만약 [TEN]이 이끄는 의도대로 끌려갔다면 당신은 '테이프 살인사건'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작진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스릴러를 좋아하고, 스릴러를 보면 마치 내가 셜록 홈즈라도 되는 것마냥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는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왜 손가락을 잘랐을까요? 그것도 살인 후가 아닌 살인 전에... 원한관계? 아니면 변태 살인마라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스릴러를 별로 보지 못한 분이거나, 순진한 것입니다. 범인이 손가락을 자를 이유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 피해자의 신원 즉 지문을 없애기 위해서...
그런 제 예상에 걸맞게 '테이프 살인사건'의 중반부에 피해자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나타납니다. 그럼으로서 손가락 절단이라는 의문이 쉽게 풀린 것입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얼굴이 같기 때문에 지문만 없앤다면 피해자와 용의자의 신분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것이죠. 너무 쉬운 트릭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의문점이 발생합니다. 범행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빠르게 마무리해도 범행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범인은 피해자의 손가락을 절단했고, 용의자는 옷에 피하나 묻지 않은채 깨끗하게 범행이 벌어진지 몇 분되지 않아 CCTV에 찍힙니다.
그러한 의문은 피해자가 살해된 것이 아닌 자살이라는 틀에 맞추면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살아 있을 때 손가락을 자른 점, 범행 시간이 촉박한 점, 피해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던 점 등이 모두 피해자는 살인이 아닌 자살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기대 역시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의 미스터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해자의 잘려 나간 손가락이 어디로 사라졌느냐에 대한 의문입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면 그 손가락은 집안 어딘가에서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테이프 살인사건'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도 잘려나간 손가락은 잊혀진채 더 이상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제작진의 단순 실수이거나 아니면 잘려나간 손가락에 대한 처리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제작진이 그냥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넘겨버렸거나 둘 중 하나겠죠.
이렇듯 '테이프 살인사건'은 제작진이 이끄는대로 즐길다면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잘 다듬어진 감성 스릴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점을 풀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본다면 반전이 너무 쉽고, 결정적인 틈새마저 보이는 치밀함이 부족한 스릴러가 될 것입니다.
기대했던대로 완벽한 스릴러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일단 주연 캐릭터가 너무 멋집니다. 민태연 외에는 기대되는 캐릭터가 없었던 [뱀파이어 검사]에 비해 [TEN]의 캐릭터 구성은 가히 최고라고 할만합니다. 캐릭터가 탄탄한 드라마는 이야기의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테이프 살인사건'은 저를 이기지 못했지만 '2화 낯선 자들의 방문'은 분명 치밀함에서도 저를 이길 수 있는 완벽한 스릴러 드라마가 될 것이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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