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카운트다운] - 스릴러의 재미를 포기한 나쁜 부모의 개과천선

쭈니-1 2011. 10. 4. 06:00

 

 

감독 : 허종호

주연 : 정재영, 전도연, 이경영, 오만석

개봉 : 2011년 9월 29일

관람 : 2011년 10월 1일

등급 : 18세 이상

 

 

꿈 같았던 10월 1일의 마지막 영화

 

개천절이 낀 3일 연휴를 맞이하여 구피에게 특별히 선물 받은 하루의 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의뢰인]을 보고, 쉴 틈없이 연달아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본 저는 여유롭게 일본식 히레까스에 생맥주 한잔을 마시고 휴가날 마지막 영화인 [카운트다운]을 봤습니다.

솔직히 정교한 한국식 법정 스릴러를 기대한 [의뢰인]은 증거불충분한 한국식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여서 실망했고,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굳이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장을 아버지로 둔 범재의 범작이라 지루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카운트다운]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 영화만이라도 의외의 재미를 제게 안겨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 것인지 [카운트다운]도 역시 기대이하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인 [카운트다운]은 정재영과 전도연이라는 톱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에서 [의뢰인]에게 밀리며 고전을 하고 있죠.

 

[카운트다운]을 본 후 이 화려한 캐스팅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 과감하지 못합니다. 전도연은 과감한 배우입니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여배우들이 노출을 두려워할 때 그녀는 자신의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버리고자 [해피엔드]에서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해피엔드]를 찍기 전 전도연은 [접속], [약속], [내 마음의 풍금]으로 3연타석 영화 흥행 대박을 기록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의 선택은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의 선택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뭔가 달랐는데 그런 과감한 선택은 결국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출연한 영화이기에 어쩌면 저는 [카운트다운]에 좀 더 파격적인 전도연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전작이 과감함 면에서는 [해피엔드]를 능가했던 [하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릅니다.

 

 

전도연이 과감함을 포기한 바로 그 순간...

 

그런데 [카운트다운]에서 전도연은 몸을 사립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연기한 차하연이라는 캐릭터가 몸을 사려도 될만한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은 그녀답지 않게 과감하지 못합니다.

과감하지 못하다는 것은 노출씬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출씬이 없어도 캐릭터 자체를 과감하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하연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하연은 사기꾼입니다. 미스 춘향 출신의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몸을 이용하여 남자들의 등을 처먹는 꽃뱀입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간이 필요하다는 태건호(정재영)을 만나게 됩니다. 간 이식 수술을 해주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태건호. 하지만 그녀는 태건호에게 간을 이식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그를 이용할 때까지 하고, 그가 죽건, 말건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과감한 캐릭터인가요? 거친 남자들의 세상에서 자신의 뭄뚱아리 하나로 꿋꿋히 살아 남는 그녀. 지독한 채권추심업체 사원인 태건호를 이용하고, 그의 죽음에 눈꼽만큼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 차하연이 과감하면 할수록 이 영화는 더욱 긴장감이 넘치는 것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영화의 초반까지 그녀는 과감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녀는 과감함을 버리고 관객에게 동정심을 얻으려 합니다.

자신을 이용하고 함정에 빠뜨린 조명석(이경영)에게 복수를 하는 것까지는 그녀의 과감함이 돋보이지만 그 이후에 자신이 17살이 낳고 버린 딸 현지(민)의 존재가 드러나며 그녀는 과감함을 버리고 악녀에서 점차 엄마로 변신합니다.

그녀의 변신은 [카운트다운]을 예상가능한 이야기로 바꿔놓는데, 범죄 스릴러에서 관객이 이야기를 예상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영화의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카운트다운]이 바로 그러한 함정에 빠져 버린 셈입니다.

차라리 현지라는 캐릭터를 없애고, 차하연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하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죽음을 앞둔 태건호에게 감정이입이 된 저는 차하연을 믿지도, 그렇다고 안믿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고,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긴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차하연이 과감한 악녀임을 포기하고 엄마임을 선택함을 바로 그 순간 [카운트다운]은 범죄 스릴러의 재미를 잃고 그저 평범한 이야기로 추락해버린 셈입니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차하연은 더욱 과감했어야 했습니다.

 

 

정재영의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는 그 순간...

 

차하연의 예상불가능한 돌발 행동에 영화의 긴장감을 거의 맡겨야할 이 영화는 오히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차하연의 딸인 현지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그녀의 행동을 예상가능하게 만드는 족쇄를 채워놓습니다.

그럼 남은 것은 이제 태건호 밖에 없습니다. 허종호 감독은 태건호에게 해리성 기억장애라는 병을 심어 놓음으로서 그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관객에게 불러 일으키고, 그것을 후반부의 감동 코드로 사용하려 합니다.

5년 전 아들의 죽음과 그에 대한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태건호. 과연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의 어린 아들의 죽음 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걸까요?

꽤 흥미진진한 전개 방식인데 허종호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태건호의 비밀을 공개함으로서 착해진 차하연으로 인하여 풀어진 긴장감을 다시 조이려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태건호의 비밀을 공개하는 방식이 스릴러의 긴장감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릴러에서 비밀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흔합니다. 하지만 장르가 장르인 만큼 그들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은 단서와 증인들이 하나씩 모여 퍼즐이 맞춰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이 정교하면 할수록 그 영화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태건호도 비밀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비밀로 인하여 해리성 기억상실증까지 앓고 있습니다. '비밀이 얼마나 충격적이면 기억을 잃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벗겨 나가는 과정을 보면 단서와 증인에 의한 것이 아닌, 죽은 아들이 남긴 카세트 테잎과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는 태건호의 독백에 의해서입니다. 물론 그렇게해서 밝혀진 아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은 분명 가슴이 아팠지만 [카운트다운]이 스릴러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너무 무성의하게 그 비밀을 풀어해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차하연의 예상불가능한 행동에 족쇄를 채운 것처럼, 태건호의 충격적인 비밀을 싱겁게 공개해버린 허종호 감독은 분명 스릴러 영화에는 재능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능력한 연출력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나쁜 아빠, 나쁜 엄마의 개과천선기

 

스릴러 영화로는 매력적인 팜므파탈 즉 악녀 캐릭터를 구축해놓고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며, 주인공의 과거의 비밀이라는 제법 쓸만한 미끼를 던져 놓고도 싱겁게 미끼를 건져 올린 [카운트다운]은 스릴러 영화로서의 재미는 거의 낙제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이 영화에 대해서 즐길만 한 것은 나쁜 아빠 태건호와 나쁜 엄마 차하연이 좋은 부모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카운트다운]이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인 허종호 감독은 2007년 개봉한 [눈부신 날에]에서 조감독을 맡은 이력이 있습니다. [눈부신 날에]는 나쁜 아빠 우종대(박신양)가 착한 아빠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런 그의 이력 덕분인지 [카운트다운]은 스릴러 영화로는 별 매력을 발견할 수 없는 영화였지만 태건호과 차하연이 좋은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는 꽤 매력적인 드라마의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 태건호가 다운증후군을 앓았던 아들의 귀찮았던 질문에 뒤늦게 하나씩 대답을 해주는 장면은 그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그래도 제 눈시울을 붉히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돈만 알던 차하연이 현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위기에 빠지는 장면도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을 김 빠지게 하긴 했어도 악녀 본능을 이겨낸 엄마 본능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끽하는 이 여유로운 하루를 더 즐기기 위해 [어브딕션]마저 관람하고 갈까 고민했던 저는 아빠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웅이를 생각하며 바쁘게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나쁜 아빠였던 태건호의 참회의 눈물, 나쁜 엄마였던 차하연의 선택을 보며 그들의 개과천선이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이죠.

좋은 아빠, 좋은 엄마는 별 것 없는 것 같습니다. 토요일은 제가 휴가였고, 일요일은 구피가 휴가였는데, 웅이와 하루종일 단 둘이 함께 지내며 공원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피자를 시켜 나눠 먹고, 포켓몬스터 카드 게임도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관심사에 함께 관심을 가져주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좋은 부모의 조건이 아닐까요? 웅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태건호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그런 아빠는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거 스릴러 영화를 보고 스릴은 느끼지 못한 대신 엉뚱한 좋은 아빠 되기의 조건만 깨닫고 왔네요.

 

 

스릴러 영화로는 좋은 캐릭터, 좋은 소재를 가지고,

꽤 괜찮은 드라마를 완성하다.

이거 박수를 보내야 할지, 야유를 보내야할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