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손영성
주연 : 하정우, 박희순, 장혁, 성동일
개봉 : 2011년 9월 29일
관람 : 2011년 10월 1일
등급 : 15세 이상
최악의 9월을 보내고 10월을 맞이하다.
9월 한 달은 제겐 병원만 들락거렸던 최악의 한 달이었습니다. 웬만해선 병원에 안가지만 비염이 심해서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에 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병을 이틀분 조제를 받았는데, 약이 제 몸에 맞지 않는지 약만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더군요. 결국 이틀 후에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제게 조제해준 약에 약을 하나 더 추가해서 처방전을 써주더군요.
하지만 이번엔 그 약만 먹으면 약이 가슴에 탁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겁니다. 그래도 무시하고 조제한 이틀 분 약을 꾸준히 먹었고, 약을 다 먹자마자 이번엔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두통 때문에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간단한 종합 감기약으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감기 기운을 물리쳤지만 이번엔 속이 너무 쓰려서 물조차 맘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회사 근처 종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비염으로 먹었던 약이 식도에 걸려서 염증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그래서 요즘은 식도염 약 일주일치를 처방받아 매일 먹고 있습니다. 만약 일주일이 지나도 회복이 안되면 위내시경을 받아보자고 하셨는데... 다행히 약 먹은지 이틀 정도 지난 요즘은 속이 쓰린 것이 점차 좋아지고 있답니다.
이처럼 단 며칠 만에 여러가지 병으로 여러 병원과 여러 약을 먹은 것은 처음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온갖 병과 온갖 약으로 9월을 보내니 당연히 제 컨디션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래도 10월의 첫째날부터 삼일 연휴가 있어서 컨디션을 회복할 기회를 얻은 것이 불행중 다행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연휴에 앞서 구피에게 딱 하루만 제게 휴가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연휴 첫날인 토요일은 제 휴가, 일요일은 구피의 휴가, 연휴 마지막날인 월요일은 웅이를 데리고 함께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제 황금 휴가날.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영화 보기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해서 [의뢰인], [코쿠리코 언덕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루에 몰아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형 법정 스릴러...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제가 첫번째 영화로 선택한 [의뢰인]은 한국형 법정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입니다. 개봉 첫 주, 비록 [도가니]에는 밀렸지만 같은 날 개봉한 [카운트다운]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박스오피스 2위가 확실시되는 이 영화는 관객 평점도 꽤 좋은 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저는 [의뢰인]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법정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하정우, 장혁, 박희순이라는 연기력을 갖춘 3인방의 연기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대가 크면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안타깝게도 [의뢰인] 역시 마찬가지인데, 제가 사건의 검사, 변호사, 배심원이 되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몰입하는 동안 이 영화는 제게 실망스러운 증거물들만 제출하면 물증보다는 심증에 기대어 사건을 해결하라고 저를 유도합니다. 그러나 심증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확정할 수는 없는 법.
그것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릴러, 특히 법정 스릴러의 경우는 더욱더 진실을 밝혀낼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의뢰인]에는 증거는 없고, 여기 저기 사건에 대한 정황과 끼워맞추기만이 난무합니다.
일단 처음부터 하나씩 [의뢰인]의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죠. 이 사건의 포인트는 피해자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피가 확실한 다량의 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추정할 뿐, 시체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이 남편인 한철민(장혁)이 체포됩니다. 너무나도 빠른 검찰의 사건 진행. 분명 그 뒤엔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검찰은 정황상 한철민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살인 현장에 누가 강제로 집에 침입한 흔적이 없다는 것과 피해자인 서정아가 죽기 삼일 전 어머니를 찾아가 남편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아파트 CCTV는 담당 형사가 일찌감치 빼돌린 후였고, 한철민을 봤다는 증인도 이후 나타나지 않습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유력한 증거임에 분명한 CCTV와 증인을 검찰 스스로가 뒤로 빼돌려버리는 상황. 이쯤되면 저는 검찰이 숨기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검찰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이상 관객은 한철민의 무죄와 검찰의 음모에 진실의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정시키기 위해선 한철민의 변호사인 강성희(하정우)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과 마찬가지로 강성희 역시 증거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는 법정 스릴러? (스포 포함)
[의뢰인]은 참 이상한 법정 스릴러입니다. 검찰도, 변호사도 뭔가 그럴듯한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제시한 증거, 증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정황들 뿐입니다.
그저 영화가 제시한 상황을 즐기며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그러한 정황 만으로도 충분히 [의뢰인]을 즐길 수 있지만, 저처럼 스릴러 영화만 보면 진실을 밝히겠다고 덤벼드는 관객에겐 실망만 안겨줄 뿐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면 영화는 용의자인 한철민의 시선으로 시작됩니다. 아내의 살해 현장에 나타난 한철민.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집에 들어섰다가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런 첫 장면은 관객에게 한철민이라는 캐릭터에 잠깐이지만 감정이입을 하게끔 유도를 함으로서 한철민의 무죄를 믿으라고 강요합니다. 손영성 감독은 왜그랬을까요?
조금은 얕은 수지만 자칫 잘못하면 감독의 수에 넘어갈 수도 있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손영성 감독은 여기에서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한철민이 자신의 변호사로 강성희를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최근 상영되었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도 나왔던 설정인데 용의자가 변호사를 직접 선임했다는 것은 변호사를 이용해서 사건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뢰인]에는 굳이 한철민이 강성희를 고용할 이유가 전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손영성 감독은 어정쩡하게 할리우드 법정 스릴러를 따라하다가 그 의도를 관객인 제게 들키고 만 것이죠.
바로 그 장면 하나로 저는 영화 초반 잠시 한철민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던 함정을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고, 한철민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사인 안민호(박희순)가 한철민이 범인이라는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 그 가운데 검찰이 한철민을 범인이라 확신하고 서둘러 체포한 이유가 속속들이 밝혀집니다. 그런데 1년 전에 벌어졌다는 강간피살 사건 역시 정확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검찰은 말장난만 계속 하고 있는 셈이죠.
여기에서 강성희 역시 말장난에 뛰어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증거는 없고 말장난만 난무하는 법정 스릴러라니... 처음부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영화에 집중했던 저로서는 허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마지막 반전 장면인데, 우스운 것은 이 부분 역시 정확한 증거는 없고 정황만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시체는 보여주지 않고 '결국은 한철민이 범인이더라'라는 정황만 끝까지 펼쳐 놓은 셈입니다.
캐릭터는 매력적인...
명백히 [프라이멀 피어],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적당히 베낀 흔적이 역력한 [의뢰인]은 베낄려면 좀 제대로 베꼈으면... 하는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법정 스릴러가 어려운 것은 다른 스릴러 영화보다 더욱 꼼꼼하게 치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증거는 없고 말장난만 난무하는 [의뢰인]은 법정 스릴러 영화로는 점수를 거의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의뢰인]은 매력적인 부분이 꽤 있는 영화이긴 합니다. 일단 법정 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이 영화의 도전 정신은 박수칠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법정 영화는 법정 코미디를 표방한 [박대박]이후 그 명맥이 끊겼었습니다. 그 만큼 우리 영화계도 법정 스릴러 영화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치밀해야 하며 자칫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인하여 지루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시도를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뢰인]은 도전을 했고, 그 도전만으로도 분명 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그래서 첫걸음마임을 감안해서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높은 평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영화엔 그냥 혹평을 하고 지나치기엔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니고 있습니다.
뺀질거리면서도 정의감에 불타는 강성희라는 캐릭터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맞서는 검사 안민호는 저명한 법조인인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은 강성희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보이며 팽팽한 대립을 보여줍니다.
서로 추구하는 정의는 같지만 정의를 위한 방법에서 틀렸던 강성희와 안민호는 이번 사건에서는 증거 대결을 벌이지 못하는 바람에 김 빠진 맥주처럼 결말이 시시했지만 만약 제대로된 사건으로 맞선다면 멋진 긴장감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사건 해결을 위해 물불안가리는 강성희의 사무장 역에 김성령, 돈이라면 어떤 사건도 물고 올 브로커 역에 성동일 등 조연 캐릭터들도 알맞게 구성되어 이 영화가 일회성이 아닌 시리즈로 진행된다면 더욱 재미있겠다는 기대를 안게 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기에 이 영화의 허술한 진행이 더욱 아쉬웠습니다.
[의뢰인]은 증거 불충분한 주제에 사건을 들고 관객 앞에 나선 죄로 유죄이지만,
초범인 점과 캐릭터가 매력적인 점을 정상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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