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로렌스 피쉬번, 마리안 꼬띠아르,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
개봉 : 2011년 9월 22일
관람 : 2011년 9월 2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지금 난 감기 바이러스와 전쟁중이다.
금요일... 구피가 회식을 하는 바람에 [컨테이젼]을 밤 11시에 봐야 했습니다. 구피가 [컨테이젼]은 꼭 보고 싶다고해서 함께 봐야 했거든요.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TV에서 해주는 '슈퍼스타 K 시즌 3'의 재방송을 보느라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늦잠을 잤지만 오랜만에 새벽까지 안자고 버틴 것이라 그런지 몸 컨디션이 좋지 않더군요. 하지만 일요일은 저희 아버지의 제사날. 토요일 저녁부터 구피가 제사 음식 준비를 해서 웅이와 놀아주기는 고스란히 제 차지가 되었고, 급기야 퇴약볕에서 웅이와 야구까지 하고 나니 기진맥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요일엔 아버지 제사 때문에 본가에 가야 했고, 제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일요일 밤 11시. 그런데 힘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더니 급기야 온 몸이 으실 으실 추운 것입니다.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아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문제는 몸살 기운이 월요일 아침에 더욱 심해졌다는 점입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라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해야 했는데 몸이 무거워 힘이 들더군요. 출근 길에서도 머리가 여전히 아팠고, 회사에서도 추워서 창 문 다 닫고 혼자 오들 오들 떨었습니다.
우연일까요? 제가 이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컨테이젼]을 보고 나서입니다. [컨테이젼]은 변종 바이러스에 의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전염되고 죽는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로 영화 자체가 워낙 현실감이 있다보니 어느 분의 리뷰 제목처럼 영화를 보고나서 당장 손 씻으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증상이 영화 속의 증상과 비슷합니다. 아직 제 몸의 체온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몸에 열도 있고, 어지럽고, 머리 아프고, 이러다가 정말 영화 속의 베스(기네스 팰트로)처럼 쓰러져 한 순간에 꼴까닥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어릴 때부터 워낙 감기를 달고 살았고, 지금도 그다지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라서 환절기 감기는 꼭 걸리고 넘어가는 편이라 감기에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명백히 [컨테이젼] 때문입니다. [컨테이젼]은 영화를 보는내내 제 불안감을 건드리며 색다른 공포를 안겨주었거든요.
인간의 유일한 천적은 바이러스이다.
최근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영화들이 경고를 했듯이 지금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생물 중에서 유일한 인간의 천적은 바이러스 뿐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빠른 진화로 우수한 두뇌를 가졌고, 그러한 두뇌를 이용하여 인간보다 강력한 신체적 능력을 지닌 동물들을 처단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들도 결국 이겨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왜 인간은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보다 바이러스의 진화(혹은 변종)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수 많은 바이러스를 정복하여 질병을 치료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가 나타나 새로운 질병으로 인간의 개체 수를 줄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다른 생물들보다 빠른 초고속 진화로 지구의 주인이 된 인간. 하지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어찌보면 미개한 생명체에 불과한 바이러스는 그런 인간조차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며 인간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컨테이젼]은 바로 그러한 공포를 잘 잡아냅니다. 홍콩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베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단 한 순간의 접촉 만으로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러한 상황이 결코 허황되지 않습니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고,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명이 사망했으며, 1957년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명 사망, 1968년 홍콩 독감으로 800만명이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2002년 사스, 2003년 조류인플레엔자, 2009년 신종플루까지... 우리 인간들은 현재까지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복해도 새로운 변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바이러스를 과연 우리 인간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인간들이 그에 대처하는 방식들을 현장감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기에 빠뜨릴 음모도 없고, 그렇다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해낼 영웅도 없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이 영화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전쟁을 잔잔하게 물 흐르듯 표현해냅니다.
영웅은 없다.
솔직히 이 영화는 심심합니다. 새로운 강력한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인한 인류의 위기라는 재난 영화의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재난 영화들이 가지고 있어야할 미덕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맷 데이먼, 주드 로, 로렌스 피시번 등 할리우드의 스타급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는 만큼 그들의 활약상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을텐데, [컨테이젼]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본 시리즈]에서 멋진 액션을 선보였던 맷 데이먼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고 딸만큼은 지키겠다며 발버둥치는 매우 평범한 가장 미치역을 맡았습니다. 거대 기업체의 중역인 아내와는 달리 실업자 신세로 영화의 초반 주눅든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베스의 죽음과 어린 아들의 죽음 뒤에 종횡무진 활약하며 새로운 영웅으로 등극할줄 알았는데, 고작 그가 한 일이라고는 딸을 집안에 가두는 일 뿐입니다. '난 맷 데이먼이 뭔가 할줄 알았어.'라는 구피의 투덜거림대로 [컨테이젼]에서 맷 데이먼의 존재감은 극히 미비합니다.
상황은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네스 팰트로우는 나오자마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고, 이 영화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에린(케이트 윈슬렛)은 역시 바이러스에 걸려 일찌감치 죽어버리며, 바이러스의 역학조사를 하던 오란테스(마리안 꼬띠아르)는 현지인에 억류되어 있다가 별 활약 없이 조용히 사라집니다.
엘리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챙기는 이기심을 보이고, 숨겨진 음모를 밝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앨런(주드 로)는 오히려 헛소문을 만들어내는 악역일 뿐입니다.
관객들이 재난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그러한 재난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감동 스토리와 재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영웅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런데 [컨테이젼]은 관객에게 '웃기지마.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지면 다들 저렇게 우왕좌왕할걸.' 이라며 썩소를 날립니다.
영화를 보며 기대야할 영웅의 존재가 없으니 그만큼 더욱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재난이 무섭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인지했고, 그 덕분에 [컨테이젼]은 오락성이 다분한 재난 영화 대신 현실성이 섬뜩한 재난 영화가 되었습니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우리들의 불안감이다.
[컨테이젼]은 확실히 현실성으로 인하여 섬뜩하게 느껴졌던 영화입니다. 그러한 현실성은 미국 질병통제센터, 세계보건기구의 대처 방식에서 드러나는데, 영웅의 등장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보다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연에 대처하는 정부 기관의 방식을 무미건조하게 따라갑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정부 기관에서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등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두려움과 불안감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앨런 크럼워드의 행동입니다.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을 가장 먼저 알아챈 그는 언론사가 그의 기사를 보고 섣부른 판단이라고 거부하자 자신의 블로그에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리며 일약 스타 블로거가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그의 의도는 점점 변질됩니다. 그는 일반인들의 불안감에 기생하여 유명해지고, 돈을 법니다. 그 어떤 근거도 없는 그의 주장은 정부의 대처에 불신감을 가진 일반인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결국 그는 거액의 돈을 챙깁니다.
앨런이 그렇게 일반인들의 불안감에 기생하여 일확천금을 노렸듯이 [컨테이젼]에는 일반인들의 불안감을 표현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바이러스의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백인들이 먼저 차지하고 동양인에겐 후순위로 약이 지급될 것이라 생각하여 세계보건기구의 직원인 오란테스를 납치하는 중국인들의 모습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절박함, 불안감이 극명하게 드러난 장면이죠.
치료약을 찾기 위해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치버 박사의 집을 터는 강도단,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집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미치, 상점은 털리고, 사람들은 점점 미처갑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가 저 상황에 있다면 나도 저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집단 패닉 상태. 너무 오랜 기간동안 천적이 없이 지냈던 인간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두려움, 불안감일지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아직도 온 몸에 땀이 나고, 머리는 쪼개질 듯이 아픕니다. 설마 내게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병한 것은 아닌지 살짝 두려운 상황. [컨테이젼]은 바로 그러한 관객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그런 영화입니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유일한 천적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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