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R. 엘리스
주연 : 사라 팩스톤, 더스틴 밀리건, 엘리사 디아즈, 캐서린 맥피
개봉 : 2011년 9월 15일
관람 : 2011년 9월 15일
등급 : 15세 이상
여름 다 지나서 왠 상어 영화냐고?
9월 들어서 워낙에 극장 나들이를 못했더니 온 몸이 근질근질... 기대작중 아직 [챔프], [파퍼씨네 펭귄들]을 보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극장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생기질 않고 있습니다. 여름 다 지나서 뒤늦게 귀차니즘이 발동했달까...
사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도 그다지 땡기지 않았습니다. 여름 다 지나서 개봉하는 여름 공포 영화 [샤크 나이트 3D]도 그렇고, [나넬 모차르트], [모차르트 타운], [미싱 : 심해미인]은 어차피 상영하는 극장을 찾을 수도 없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아프다며 온갖 인상을 전부 찌푸리는 구피를 억지로 끌고 [샤크 나이트 3D]를 보러 갔습니다. 이대로 귀차니즘에 사로 잡히면 9월 내내 무기력하게 보낼 것 같아서 스스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행동이었죠.
여름 다 지나서 왠 상어 영화냐고 투덜거리는 구피에게 '이 영화 재미있대.'라고 둘러댔지만 사실 저는 [샤크 나이트 3D]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상어 공포 영화의 걸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까지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도 레니 할린 감독의 [딥 블루 씨]정도만 되어도 정말 대만족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은 [딥 블루 씨]가 아니더라도 2010년 여름에 개봉했던 [피라냐] 정도만 되어도 눈요기라도 잘 했다라고 만족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대치를 최대로 낮추고 [샤크 나이트 3D]를 봤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가 끝나고 헛웃음만 지으며 극장을 나서야 했습니다. '딱 비디오용 영화네.'라며 제게 눈 흘기는 구피에게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묵묵히 집으로 돌아오며 제가 든 생각은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라는 의구심 뿐이었습니다.
화끈하고 섹시한 여름을 위한 젊은 그들의 여행
[샤크 나이트 3D]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프닝씬에서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7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여름 휴가를 위해 사라(사라 팩스톤)의 별장에 모여든 것까지...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법칙에 따른다면 성의식이 문란한 아이들부터 처참하게 죽어 나갈 것이며, 주인공인 사라와 닉(더스틴 밀리건)은 끝까지 살아남아 상어와 사투를 벌일 것입니다.
[샤크 나이트 3D]는 그러한 제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여자 아이들은 섹시한 비키니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남자 아이들은 복근을 자랑하며 여자 꼬시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쯤에서 한 커플이 무리를 이탈하여 섹스를 하다가 상어에게 잡아 먹히고 다른 친구들은 그러한 사실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하나둘씩 상어에게 당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가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상어의 존재가 너무 일찍 밝혀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별장이라는 든든한 은신처가 있기에 상어의 존재가 일찍 밝혀진 이상 상어에 의한 공포는 더이상 기대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상어가 무서운 것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상어의 존재도 모르고 물에 들어갔을때 뿐입니다. 상어의 존재를 안 이상 그들이 물에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해 졌고, 그만큼 이 영화는 상어에 의한 공포감 조성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순진한 관객이 아닌 이상 이쯤되면 이 영화의 공포가 상어가 아닌 다른 무엇임을 눈치챌 것입니다. 그리고 [샤크 나이트 3D]는 일찌감치 그 속내를 드러냅니다. '상어 따위가 뭐가 무서워? 얘네가 더 무섭지?'라며 상어의 공포를 만끽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제 둿통수를 강하게 내리칩니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쁘게...
상어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고? 농담하니?
그렇습니다. 저는 [샤크 나이트 3D]에게 당했습니다. 어린 시절 봤던 [죠스], 젊은 시절 봤던 [딥 블루 씨]의 추억을 되새기며 상어의 공포를 만끽하려고 귀차니즘도 물리치고, 상어 외에는 별 기대가 되지 않는 영화를 극장까지 행차해서 봤는데 데이빗 R. 엘리스 감독은 딴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어보다 더 무서운 인간을 보여주겠다는 헛소리를...
무서운 인간 따위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주 널려 있습니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TV 뉴스만 틀어도 미친 인간들이 날 뛰는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어는 아닙니다. 난 진정 상어가 보고 싶었고, 상어에 의한 공포를 만끽하고 싶었단 말입니다.
지구 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상어가 무시무시한 이유는 물 속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지 동물인 인간은 물 속에서는 아무래도 행동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어는 아닙니다. 물 속의 포식자로 완벽하게 진화한 상어는 물 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이고, 강력한 이빨을 통해 인간을 사냥합니다.
인간은 물 속에서 움직임이 둔해질 수 밖에 없기에 상어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죠. 저는 그것이 무섭습니다.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두려움. 도망칠 수도 없고, 맞서 대항하기도 힘든 상대. 물 속에서 상어가 최강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샤크 나이트 3D]는 기껏 상어로 분위기만 조성해놓고 막상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미친 인간들을 내세웁니다. 그들이 무섭다고요? 아뇨... 돈에 눈이 멀어서 별의별 짓을 다하는 더한 인간들이 세상엔 널려 있는데 도대체 왜 저런 찌질이들을 무서워해야 하는 거죠?
모르겠으면 [죠스], 아니 [딥 블루 씨]라도 본 받아라.
데이빗 R. 엘리스 감독은 [샤크 나이트 3D]를 만들며 상어 가지고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 듯이 보입니다. 하긴 [죠스]가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 1975년이니 35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죠스]같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딥 블루 씨]라도 보고 참고했어야 했습니다. 레니 할린 감독 역시 1999년 [딥 블루 씨]를 만들며 데이빗 R. 엘리스 감독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죠스]가 나온지 25년이나 지나서 [죠스]와 비슷한 공포 영화를 만든다면 관객들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그는 [죠스]를 더욱 업그레이드시키기도 마음 먹습니다. 그리하여 유전자 조작으로 인하여 더욱 빠르고, 더욱 지능이 높아진 괴물 상어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상어에 대한 공포는 그대로 둔 채 상어를 업그레이드시킴으로서 관객이 느낄 공포감을 더욱 확대시킨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리한 전략이란 말입니까?
데이빗 R. 엘리스 감독은 이런 좋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어 영화에 상어는 뒷전으로 물리치고 찌질한 인간들을 정면으로 내세웁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가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공포심보다는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미친 인간들이 자신의 말도 안되는 동기 따위를 떠벌리는 장면에선 짜증이 나서 폭발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하긴 애초에 [딥 블루 씨]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제가 [샤크 나이트 3D]에 내건 마지막 커트라인인 [피라냐]와 비교해서도 [샤크 나이트 3D]는 한참 뒤떨어집니다. 1978년 조 단테 감독이 만든 [피라냐]를 리메이크하며 알렉산더 아야 감독은 [딥 블루 씨]가 택했던 방법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는 공포의 대상인 '피라냐'를 업그레이드시켰고, 등장인물들을 더욱 섹시하게 포장했습니다.
결국 [샤크 나이트 3D]는 섹시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무섭지도 않았던, 그 존재의 이유가 애매한 그런 공포 영화였습니다. 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3D는 꽤 괜찮다고 하네요. 하긴 상어가 큰 입을 벌이며 뛰어 오르는 장면 하나는 볼만 했습니다. 그 장면을 3D로 본다면 어쩌면 '우와!'했을지도...
이 영화 최대의 미스터리는 주인공인 사라가
위기의 순간에도 끝까지 고집한 비키니 패션이다.
아마 감독은 사라 팩스톤이 비키니를 입고 있다면
관객들이 '섹시하다'라고 환호할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이 얼마나 순진한 공포 영화 감독이란 말인가?
'영화이야기 > 2011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컨테이젼] - 두려움, 불안감이 나의 목을 조여온다. (0) | 2011.09.26 |
---|---|
[챔프] - 내 눈물의 8할은 예승이 때문이었다. (0) | 2011.09.19 |
[통증] - 더 큰 통증을 관객에게 안겨줄 수 있었을텐데... (0) | 2011.09.09 |
[콜롬비아나] - 내겐 너무 섹시하지 않은 그녀. (0) | 2011.09.02 |
[푸른소금] - 경배하라! 영상미의 대가가 돌아왔다. (0) | 2011.08.31 |